홍대용은 청나라의 좋은 점을 배워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북학론은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에 이어져 북학파라는 실학파를 태동시키지만 조선의 굼벵이 걸음은 두고 두고 안타깝다. 홍대용은 북경의 한 상점인 유리창(廠)에서 서양의 온갖 과학 기기를 보고 충격을 받고 잠자는 조선의 현실을 알고 이를 깨우려 노력 한다. 그러나 조선의 청에 대한 뿌리 깊은 야만 인식이 이를 방해한다.

그러나 청은 조선과 전혀 반대였다. 청은 조선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고 대우도 잘 했다. 청의 황실은 조선이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청태조 누르하치는 자신의 할아버지 함보가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했고 청사고에는 한때 함보가 신라의 경주 김씨의 후손이란 기록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조선과 여진은 세종대왕 이후 형제국가 이상으로 서로 잘 지냈다. 여진은 조선을 통하여 명의 문물을 습합하고 습득했다. 사소한의 국경 충돌은 있었으나 상층부의 관계는 항상 원만했다.

이 속에서 누르하치라는 인물이 출현한다.

청을 세운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치가 청 태종이다. 그는 조선에 출병하여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준 사람이다. 청 태종은 황태극이라고 한다. 그는 북경에 입성하지 못하고 6살 먹은 아이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사망한다.

어린 황제 순치를 보위하여 섭정왕으로 군림하며 북경으로 진격하여 명을 멸망시킨 사람이 도로곤이다. 도로곤은 조선 정벌의 선봉장이었다. 도로곤과 순치의 모후 장비는 연인 관계다. 여진족은 형사취수가 일반적이었기에 별다른 흉도 아니다. 도로곤은 북경에 입성한 후 만주족과 한족의 차별을 하지 않는 정책을 펼쳐 청국의 기초를 다진다.

도로곤은 만주 8기군 중 두 기의 군단을 직접 통괄했고 그의 친동생인 아제격, 다택 등이 두 기를 통괄하는 실력자였다. 언제든지 황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던 힘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도로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청나라의 진정한 정치가로 그가  손꼽히는 이유다.

도로곤은 조선에 대해서 아주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가 조선 출정에서 호남의 한 조선 여인을 첩으로 삼은 것이다. 도로곤은 조선 여인이 충청도까지 왔다는 전갈을 받고 연산까지 마중을 나가 그녀를 맞이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어 청나라를 연구하는 중국의 학자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한다. 도로곤은 영웅이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도로곤은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의 도움을 받고 황제에 오른 순치도 불교를 동경하다 8살 먹은 복림에게 황제를 물려 주고 명을 마감한다.

도로곤은 조선에서 데려온 여인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문과 바둑을 해득하던 조선 여인이 도로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도로곤은 신기했던 모양이다. 청의 황실이 갖고 있던 조선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은 바로 이런 인연이 있은 탓이다.

우리 역사는 청과의 관계를 많이 오해하고 있다. 오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조선은 아예 청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를 않았다. 청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고 약한 조선을 연구하고 분석할 때 조선은 그저 옛글에 불과한 성리학의 공리에만 몰두하여 이단이니 뭐니 하며 극한 논쟁에서 헤맨다.

짐은 그대 나라와 그동안 털끝만큼도 원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그대 나라가 기미년에 명나라와 서로 협력해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를 해쳤다. 짐은 그래도 이웃 나라와 지내는 도리를 온전히 하려고 경솔하게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동(遼東)을 얻고 난 뒤로 그대 나라가 다시 명나라를 도와 우리의 도망병들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치는가 하면 다시 저 사람들을 그대의 지역에 수용하여 양식을 주며 우리를 치려고 협력하여 모의하였다.

그래서 짐이 한번 크게 노여워하였으니, 정묘년에 의로운 군사를 일으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때 그대 나라는 병력이 강하거나 장수가 용맹스러워 우리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나 짐은 생민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끝내 교린(交隣)의 도를 생각하여 애석하게 여긴 나머지 우호를 돈독히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 10년 동안 그대 나라 군신은 우리를 배반하고 도망한 이들을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명나라 장수가 투항해 오면 군사를 일으켜 길을 막고 끊었으며, 우리의 구원병이 저들에게 갈 때에도 그대 나라의 군사가 대적하였으니, 이는 군사를 동원하게 된 단서가 또 그대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명나라가 우리를 침략하기 위해 배[船]를 요구했을 때는 그대 나라가 즉시 넘겨 주면서도 짐이 배를 요구하며 명나라를 정벌하려 할 때는 번번이 인색하게 굴면서 기꺼이 내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특별히 명나라를 도와 우리를 해치려고 도모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신이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여 국서(國書)를 마침내 못보게 하였다. 그런데 짐의 사신이 우연히 그대 국왕이 평안도 관찰사에게 준 밀서(密書)를 얻었는데, 거기에 ‘정묘년 변란 때에는 임시로 속박됨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의에 입각해 결단을 내렸으니 관문(關門)을 닫고 방비책을 가다듬을 것이며 여러 고을에 효유하여 충의로운 인사들이 각기 책략(策略)을 다하게 하라.’고 하였으며, 기타 내용은 모두 세기가 어렵다.

이 기록은 인조실록에 전한는 홍타이치의 조선 정벌의 이유다. 이 기록은, 하지 않아도 될 전쟁을 아무 명분 없이 치르며 결과적으로 조선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냐는 아픈 내용이다. 조선은 이 칙서를 받고도 계속 설왕설래였다.

순치의 8살 먹은 아들이 강희재다. 강희재는 60년간이라는 장기간의 통치를 통하여 명청 양간의 최고의 성군이 된다. 강희재는 할아버지 홍타이치가 친정했던 조선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한다. 그는 재위기간 중 여러번 조선을 배려하기도 한다. 그는 재위 45년 되던 해 1706년 조선에 대한 각별한 유시를 토로하기도 한다.

 외번중에 오직 조선만이 문물에 밝으니 중국과 가깝다. 우리 태종께서 조선을 친정하실 때 8도와 여러 섬까지 천군이 다 들어가 조선은 그때에 온전히 망했는데도 오늘날까지 이르도다. 조선이 태종이 주둔하던 곳에 비석을 세워 오늘날에도 전하도다. 그러나 진정 조선이 가상한 것은 명나라 말기에 명의 모든 번국이 자청 하여 항서를 쓰는데도 조선만이 신절(臣節)을 고수하고 지키려 한 그 마음이다.

강희재는 삼전도에서 끝까지 저항을 하다 온갖 수모를 다하던 조선의 충의 정신을 높게 평가한다. 강희재는 북쪽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몽고를 완전 제압하고, 오랫동안 독립국을 유지해 오던 대만을 복속시키고, 러시아와 네르친스키 조약을 맺어 그들의 남하를 막는 등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자랑하는 제국을 건설한다.

이때에도 청은 아직도 배청사상을 버리지 못하는 조선에 선무를 청한다. '청사고'의 기록이다.

 예부의 신하들에게 조선에 사신으로 갈 때 향흥과 접대를 받는 것이 과도하니 지금의 반으로 줄이고 이를 법으로 한다.

오히려 대국인 청이 조선에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조선은 겉으로 응하며 속으로 배청하는 마음을 계속 유지한다. 배청 감정만 유지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청에 들어온 서양의 문명까지도 외면하는 외골수로 변질하여 역사에 천추의 한을 남긴다. 조선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간파한 홍대용은 이런 토로를 한다.

 10여 세부터 고학에 뜻을 두어 문장의 가로 세로만 따지는 우매한 유학자는 되지 않겠다 작심하였고 겸하여 나라의 경제 사업도 마음에 두었었다.

홍대용의 이 선각자적 인식을 북학파가 이어받기는 했으나 그 또한 조선의 주류 사상은 되지 못한다. 이 당시 또 한명의 선각자 조수삼이 북경의 유리창과 책걸상(서점가) 거리에서 중국의 학자들을 만난다. 조수삼도 중국 학자들의 고문에 대한 지식보다는 백화쟁명한 사상에 마음을 빼앗긴다.

조수삼은 이곳에서 바둑을 잘 두던 소제남을 만난다. 소제남은 '조선국수' "조선수도"라는 조선의 물길을 세세 하게 적은 책을 낸 사람이다. 소제남은 청나라 사신과 더불어 조선을 여러번 와본 사람이다. 조선수도에 나오는 8도의 큰 강과 작은 지류들의 자세함이 놀랍다.

청이 조선의 물길과 산천 등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을 이유가 궁금할 정도다. 소제남은 조선에 무척이나 호감을 갖는다.

  군자의 도를 알고 여자들이 바둑을 안다.

소제남의 평가는 당시 청국이 갖고 있던 조선의 인식이다. 청은 조선을 작은 한족으로 치부했다. 한족들보다 더 한족으로 보았다. 한족들보다 한문을 더 자유자재로 쓰고 여자들까지 바둑을 두는 조선을 보고 일종의 경외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한족을 점령한 오리지널 만주 고위층들은 한족의 고급 문화인 한자와 바둑에 대단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북경에 들어온 조선의 선비들은 청의 학자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는다. 한족이나 청족의 학자들에게 볼 수 없던  실력과 곧곧한 덕성을 갖춘 조선 선비들이 그만큼 빛나보였던 것이다. 홍대용과 깊게 사귄 '엄성'은 죽을 때 홍대용이 보내준 서찰을 끌어안고 조선의 선비를 그리워하며 죽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북학파 학자들 대부분이 청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한양에 돌아오면 즉시 위험 인물이 된다. 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식 이상으로  조선에 대해 좋은 인식과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려고까지 한 나라다. 아직도 청나라에서 조선을 연구한 책이 수백 권이나 북경의 여러 연구기관에 존재하는 것이 증거다.

그러나 조선의 청에 대한 연구서는 변변한 것이 한 권도 없다. 무조건 오랑캐 야만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송명의 관학인 성리학에만 매달려 공자왈 맹자왈 세월만 보낸다. 청이 조선을 군자의 나라, 여인들이 바둑을 두는 아름다운 나라라며 연구하고 기릴 때도 조선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오직 외면만 하다가 구한말을 맞는다.

결과적으로 서세동점의 타이밍을 놓쳐 무너진 왕조가 되기는 했으나 조선은 도와 바둑이 조화를 이루던 동양사 속의 아름다웠던 나라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