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조선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 학문이다. 그러나 유교는 조선을  망치기도 한 학문이기도 하다. 조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선하다. 언제나 정이 넘치고 너그럽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외골수였다. 외골수가 때로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는 안다.

유교는 외골수로 학문을 판다. 그들은 유교를 사림(士林)이라 했다. 그러나 사림은 사팔이(?)였다. 눈먼 장님이나 한가지였다.

아량이 없는 신분차별과 남녀유별이 다 그 속에서 나왔다. 실용적 학문이나 여타 종교 등은 그들 눈에 오직 잡스러운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교는 성종 시대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연산군 시대를 거쳐 더욱 고착화 된다.

광폭한 연산군의 행패에 정신이 번쩍 든 사림은 더욱 군왕을 유교의 맹신자로 만들기에 분골쇄신한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서 훈고니 사림이니 하는 동맹을 만들어 당파라는 세력을 키우게 된다. 연산을 몰아내는 과정은 세조의 친위 쿠데타보다는 단순하고 조잡하다.

반정의 두령은 무장 출신인 박원종이다. 추종자는 박영문 신윤무 장정 등의 무장들과 유자광 성희안같은 모사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연산의 총신들이다. 유자광은 임사홍과 같이 연산의 간신 적자라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유자광의 간계에 죽은 남이가 있다.

바둑에 특히 애정이 많았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세조 때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일이 묘당에서 일어난다. 예종 1년 10월 24일 유자광이 느닷 없이 반역죄를 고변해 온 것이다. 예종은 경험이 없던지라 황망히 그를 맞이한다. 유자광이 고변한 사람은 놀랍게도 남이였다.

지난번에 신이  궁안의 병조에 입직하였더니 남이(南怡)도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입직하였는데, 남이가 어두움을 타서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세조께서 우리들을 대접하는 것이 아들과 다름이 없었는데 이제 나라에 큰 상사(喪事)가 있어 인심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우니, 아마도 간신(姦臣)이 작란(作亂)하면 우리들은 개죽음할 것이다. 마땅히 너와 더불어 충성을 다해 세조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臣有急啓事, 克增等與子光, 進閤門外, 令承傳宦官安仲敬以啓。 上召見子光, 子光啓曰 “曩臣入直內兵曹, 南怡亦以兼司僕將入直, 怡乘昏來語臣曰: ‘世祖待吾輩, 無異於子, 今國有大喪, 人心危疑, 恐姦臣作亂, 則吾輩浪死。 當與汝盡忠, 以報世祖之恩。’ 臣答曰: ‘有何姦人爲亂? 怡曰 ‘金國光專政貪婪, 如此輩誅之可也. 실록)

유자광이 예종에게 와 고변을 한말은 놀랍게도 남이에 대한 역모의 고변이다. 유자광은 후대의 사가들이 한명회와 김좌근의 나쁜 점만을 모아 놓은 사람이란 평가를 내릴 만큼 희대의 간웅으로, 세조의 눈에 들어 출사를 하고는 당대의 신진 기예였던 남이를 재물로 삼아 역모라는 청룡열차를 함께 타고 남이를 찍어내려 하고 있다.

유자광은 남이와 바둑을 두기 위해 자주 그의 집을 드나들었는데 이때 남이가 세상을 갈아엎자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예종은 즉시 남이를 잡아와 이 일을 묻는다. 남이가 곧바로 대답할 턱이 없다.

예조는 남이에게 곤장 30대를 때리며 살살(?) 추국을 한다. 역모자에게 곤장을 치는 것은 봐주겠다는 것이다.
유자광은 제3의 증인도 있다고 삼자 대면을 청한다. 남이의 처삼촌 남유다.

그러나 남유의 말이 아리송하다. 남이의 집에 갈 때마다 김창손 등의 무신들이 와 바둑을 두고 놀더라는 것이다.

(問怡孽叔南愈, 對曰: “日者, 臣往怡家, 有金昌孫、李仲淳者先到, 相與碁奕, 射小的, 餘無聞。” 杖二十下不服。 又問怡曰: “南愈言汝射的奕碁, 汝何卒哭前射的奕碁乎. 실록)

예종은 고변의 직접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았으나 남이가 부왕의 시신이 식지도 않은 터에 그의 총애를 받던 총신이 집에 사람을 불러모아 바둑을 두고 놀기를 일삼았다는 것에 반감을 갖는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일이 꾸며진다. 예종이 사태를 파악하기에 그는 너무 경륜이 부족하다. 거기다 한명회 등 권신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평소 남이의 처신이 발단이었다. 28세에 병판을 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젊은 무장이 비정한 정치의 장에서 은퇴를 종용받고 있는 것이다.

조선 정치판에는 두 가지의 정치 모략술이 있다. 탄핵과 고변이다.

탄핵은 정적간에 약간의 인정이 있지만, 고변은 개인을 일거에 제압하는 살수(殺手)다. 한번 고변이 일어났다 하면 고변자와 피고변자 둘 중 한명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간교한 유자광과 우직한 남이의 이 싸움은 애초에 결판이 난 것이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적의 강한 곳으로 진격한 대마가 귀로가 없다면 결말은 정해진 것이다. 역사의 한 장에서 조우했던 유자광과 남이의 전말이다. 그들 사이에도 바둑이 존재했다.

어제의 동지들이 오늘의 적이 된 중종반정은 시작부터 무엇인가 잘못된 반정이다.

이들의 반정은 너무도 쉽게 끝난다. 반정 1등 공신 이들 7명의 몫이었다. 그중 2등 공신 8명 중에 미륵, 당래라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서강과 김포의 폭력단의 두령이다. 이들을 반정에 끌어들인 사람은 박영문이다.

반정이 최초 모의된 곳은 박원종의 집이다. 무장들의 신망을 받는 박원종의 집에 무장들이 무상으로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바둑 때문이다. 바둑으로 큰 도박을 하며 주변의 이목을 피한 것이다.

무장들은 야밤에 다른 무장의 집을 왕래할 수 없는 것이 조선의 법이다. 그러나 도박에 빠져 정신 못차리는 무인들에 한해서는 금오(의금부)나 포청도 눈을 감아주는 편이었다.

조선시대 바둑은 기본적으로 내기바둑이었다. 당시 바둑에 친선바둑은 없었다. 궁녀들이 바둑을 둘 때도 왕은 지나치지 못하고 옷가지 하나라도 걸게 하고 구경하던 때였다. 이 모습을 본 어떤 간관은 임금을 따라다니며 반성하라고 촉구(?)한다.

미륵, 당래는 형제다. 그들은 반정 2등 공신으로 출세의 줄을 잡았다가 곧바로 토사구팽 당한다. 정치권에 줄을 댄 주먹의 쓴 맛을 본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이들의 기록은 이자의 음애일기와 실록에도 보인다. 실록의 한 대목이다.

또 미륵(彌勒) 당래(當來) 일을 흔히 ‘말하지 않았다.’고 하나, 그 사이에는 반드시 말이 있었을 것이니, 역시 상산령(常山令)을 신문하는 것이 가하다.”

하매 아뢰기를,

“이미 상산령을 신문하였는데, 곧 ‘미륵·당래 같은 일은 신이 농담(弄談)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흔이 만약 신실한 자라면, 역시 윤을 끝까지 신문해야 하겠으나, 흔은 언사가 실답지 못하여 신 등이 그 허실(虛實)을 알지 못하겠기 때문에 감히 보고 합니다.

또 윤과 복중이, 이미 흔과 면질할 때에도 오히려 승복하지 않았는데, 지금 비록 두 사람을 면질시킨들 누가 자복하려 하겠습니까?

대체로 흔의 초사에 의거하여 죄를 논한다면, 윤(潤)이 주범이 될 것 같으나, 흔의 말이 실답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나의 생각에는 아직 면질(面質)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대로 조율(照律)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종친(宗親)과 사귀어 결탁하는 일은 본래부터 금령(禁令)이 있고, 내관(內官)은 더욱 외부 사람들과 사귈 수 없는 것인데, 근자에 내관 서후갑(徐厚甲) 등이 신창령(新昌令)과 더불어 서산(西山)에서 돼지 사냥을 하였고, 그 뒤에도 역시 서로 찾아다녔으니, 추문(推問)하여 그런 조짐을 방지하시기를 청합니다.

더구나 재상들이 종친(宗親)과 사귀며 결탁함은 더욱 불가한데, 황맹헌(黃孟獻) 윤순(尹珣) 등은 광망(狂妄)한 종친들과 더불어 더러는 사냥하고 더러는 바둑을 두었으니, 추고(推考)하여 죄를 다스리며, 사귀어 결탁[交結]하는 금법을 거듭 밝히시기를 청합니다."

미륵과 당래는 처단된다. 박영문 신윤무도 반역사건으로 참수를 당한다. 어쨌든 미륵의 등장은 이 땅의 조직 폭력사의 한 페이지를 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후부터 평양 의주 동래 등에 만단, 채단, 유단 등의 이름을 사용하는 폭력단이 나타난다. 이들의 면모는 상상불허다.
구한말 충청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맹사진 부대는 충청도를 무대로 경상도 전라도를 무상으로 누비며 많을 때는 1천 명의 무리를 이끌었다는 기록이 있다. 맹사진에 습격을 당한 관아는 연산 홍주 회인 태안 비인 옥천 상주 인천 통진 등 수륙 양면이다.

맹사진은 활빈당 대의기를 내세우고 의적 홍길동의 후예를 자처했으나 그들의 단훈을 보면 의적과는 동떨어졌다. 구한말의 추안(형조 조서)에 나타난 활빈당 발영(훈)을 보자.

우리는 다음 세가지를 잘한다.

갑) 돈 안주면 불놓는다.

을) 돈 안주면 유부녀를 겁탈한다.

병) 돈 안주면 묘를 파 버린다.

이들이 활빈을 내세워 관아와 지역 토호들을 습격하고 재물을 빼앗은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재물을 백성들과 나누어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가져가기 쉬운 재물 외 곡식 등을 남겨 놓아 백성들이 그것을 가져갔다가 관군에게 곤혹을 치르는 장면은 있다.

구한말의 활빈당은 의적을 앞세우기는 했으나 결국은 도적의 무리에 불과했다. 그나마 같은 시기 이 지역에 들끓었던 동학교도와 혼동을 일으켜 관군에 의해 활빈당과 동학이 공비로 몰리는 과오만 있었다 할 것이다.

이처럼 바둑은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이래로는 궁녀들의 도략이자 시골 향리 머슴들의 여기로도 적당했고, 초동들의 놀이로도 궁합이 맞았다. 물론 폭력단의 노름의 수단으로도 금상첨화였다.

변화무쌍하며 천변만화하여 모든 사람의 도략의 욕구를 담아 낼수 있었기에 바둑은 조선의 가장 사랑받는 오락이자 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