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러디] 운영자21
|
|
|
|
|
※ 이 글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란 책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를 굿모닝오로에 맞게 각색한 것입니다.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여러 이웃들 중에서 거의 첫 번째로 초고속 인터넷을 깔았다. 까만 모니터 아래 놓인, 고른 치열처럼 보기 좋았던 키보드. 책상 밑에서는 아빠의 여행가방보다 우람해 보이는 컴퓨터 본체가 웅웅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하드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책상 위에 손이 닿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의자에 앉아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모습만큼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엄마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출장 중이신 아빠와 채팅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마술, 그 자체였다!
이후 한 살 쯤 더 먹으면서 나는 한글을 뗄 수 있었고, 또 한 살을 먹었을 즈음에는 두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키보드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날의 마술이 나를 이끈 덕이었다.
어느 날.
나는 이 경이로운 장치 속 어딘가에 굉장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의 이름은 ‘오로 운영자’였다.
아빠는 저녁 시간이면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신중한 얼굴을 한 채, 검고 흰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에 열중했고, 종종 컴퓨터 속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누구냐고 묻자 아빠는 한 눈을 찡긋 하며 “아빠 애인”이라고 답해 주었다.
이 컴퓨터 속의 요정과 내가 첫 번째로 대화를 나눈 사건은 엄마가 이웃집에 놀러간 사이에 일어났다.
지하실에서 연장통을 갖고 놀던 나는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후려치고 말았다. 그리고 집에는 내게 동정심을 표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빨며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방까지 이르렀다. 그때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아, 그렇다!
나는 재빨리 의자 위로 올라가 컴퓨터를 켜고는 늘 아빠가 하던 대로 동그라미가 잔뜩 나오는 그림을 마우스로 눌렀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꾹 참으며 키보드에 더듬더듬 글자를 쳐 나가기 시작했다.
‘운영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정이, 그가 정말 내 부름에 답을 해온 것이다.
‘운영자21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도 펑펑.
‘지금 엄마가 없는데 손가락을 다쳤어요.’
잠시 후 운영자가 물었다.
‘엄마 어디 나가셨니?’
나는 계속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나 혼자 있어요.’
‘피가 나니?’
‘망치로 손가락을 때렸어요.’
운영자가 다시 물었다.
‘집에 얼음 통이 있니?’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얼음 한 조각을 깨서 네 손가락에 대고 있으렴. 그럼 아픔이 가실 거야. 얼음 깰 때 조심하구.’
그러면서 운영자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이제 그만 울어. 괜찮을 테니까’
그 사건 이후, 나는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컴퓨터 속의 ‘요정’을 찾았다. 내가 지리 숙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 운영자21은 예천이 어디쯤 있고 강원도 동강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 낭만적인 강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꼭 그 강을 탐험해 보겠노라고 결심했다. 또 그녀는 내 산수 공부를 도와주었으며, 전날 내가 공원에서 잡아 온 얼룩다람쥐가 과일과 열매만을 먹는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도 나는 운영자를 불러 그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어른들이 흔히 아이들을 달랠 때 하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나는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로 온 가족에게 기쁨을 주던 새가 왜 갑자기 깃털이 수북이 빠진 채로 새장 바닥에 죽어 있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큰 슬픔을 눈치 챈 듯 조용히 말했다.
"얘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다소 진정이 되었다.
다른 날도 나는 컴퓨터에 매달렸다. ‘운영자입니다’. 이젠 익숙해진 글씨였다.
나는 물었다.
"<붙이다>를 어떻게 써요?"
"벽에 붙이는 걸 말하니? 아니면 편지를 부치는 걸 말하니? 벽에 붙이는 것일 때는 <붙-이-다>라고 써야 해."
이 모든 일이 충청남도 서해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은 목포로 이사를 갔다.
나는 내 가정교사를 잃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운영자21은 옛날에 살던 집의 고물이 되어버린 컴퓨터 속에만 살고 있었다. 나는 웬일인지 새로 이사 간 집의 테이블 위에 놓인 날렵한 새 컴퓨터를 시험해 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어서도 어렸을 때의 그 대화에 대한 기억들이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종종 인생에 대한 의심과 불안과 순간들이 닥쳐올 때면 나는 오로 운영자21에게서 올바른 해답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과 마음의 평화를 회상하곤 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인내심과 친절한 마음을 갖고 한 어린 소년을 대해 주었는가를 깨닫고 나는 뒤늦게나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입대를 앞두게 된 나는 모처럼 고향에 살고 있는 누나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 집에 머물며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며칠 뒤.
누나 집을 나선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발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떠나기까지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터미널 PC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모니터 속의 낯익은 아이콘을 클릭했다.
오로에 접속한 나는 ‘운영자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기적처럼, 나는 다시금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문구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운영자21입니다.”
미리 그럴 계획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붙이다>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한참 동안 침묵이 있었다. 그런 다음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쯤 손가락이 다 나았겠지?"
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아직도 옛날의 당신이군요. 그 시절에 당신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아마 당신은 모르셨을 거예요.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시절에 네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넌 아마 몰랐을 거다. 내게는 아이가 없었지. 그래서 난 언제나 네가 말을 걸어와 주기를 기다렸단다. 내 얘기가 참 바보처럼 들리지?"
그렇지 않았다. 전혀 바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그녀를 생각했는가를 말했다. 그리고 이제 곧 입대를 하게 되는데 첫 휴가 때 다시 접속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네가 접속하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를 찾으면 돼."
운영자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들렸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님."
난 말했다.
"다음번에 또 얼룩다람쥐를 만나면 과일이나 열매를 먹으라고 말해 줄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하렴. 난 네가 동강을 탐험할 날을 기대하고 있으마. 잘 지내라. 안녕."
정확히 석 달 뒤 나는 다시 누나 집으로 돌아왔다.
"운영자103입니다."
그녀가 아니었다. 나는 운영자21, 아니 ○○○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 씨의 친구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네, 아주 오래된 친구죠. 저는 ○○이라고 합니다만."
"그럼 안 좋은 소식이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그녀는 지난 몇 해 동안 시간제로만 여기서 일을 했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 ”
"잠깐만요. 지금 님의 성함이 ○○이라고 하셨나요?"
"네."
"그녀가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메시지를 남겼군요. 짤막한 메모를 남겼어요."
나는 얼른 알고 싶어 물었다.
"무슨 내용이죠?"
"이렇게 적혀 있군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이 접속을 하면 이렇게 전해 주세요. 나는 아직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믿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이게 전부군요."
나는 고맙다고 말한 뒤 접속을 끊었다.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양실짱의
블로그
|
|
|
|
|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十年積功 |
｜ 2005-02-14 오전 11:07: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ㅠ_ㅜ;} 으~~아~~~앙
|
|
|
읔!!!! 아름답고 슬픈~ 문명의 상징인 컴 , 그 속에서도 보석알 같은 사랑이 아픔이 우정이 은하처럼 흐르고......
|
|
|
우와아....감동 그자체.... 잘 읽었습니다.
|
|
 woldlim |
｜ 2005-02-18 오전 10:37: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감동적인 한편의 동화군요!
|
|
|
아~~~~눈물이 앞을 가리네......
|
|
|
가슴이 저릿하네요...
|
|
|
|
|
|
.gif){kind=logo}
굴초
즉결심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