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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구] 땀에 젖은 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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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끝이었습니다.
장장 8개월의 여정.
때론 좌절하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온 몸을 떨고.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 같던 그곳에도
끝은 있었습니다.
결국 동그란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2004 한국바둑리그.
8개 팀, 32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우승컵을 놓고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밤 8시면 홍익동 바둑TV 스튜디오에 모여
자신과 팀원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경합해 왔습니다.
정규리그 112판, 포스트시즌 13판.
예선 선발전을 제외해도 도합 125대국의 처절한 강행군이었습니다.
을유년 새해 2일 밤 10시 30분.
2004 한국바둑리그는 최강의 팀에 한게임바둑팀이 등극하며
그렇게 막을 접었습니다.
저녁 6시, 이세돌과 목진석 주장전의 첫 수가 놓인 지 4시간 30여 분이 지나고,
2 : 2의 상황에서 마지막, 설마 그렇게까지야 싶었던 연기대국으로
결정지어진 승부였습니다.
마지막 연기대국의 대국자는 이세돌 9단과 홍민표 4단(한게임바둑),
그리고 목진석 8단과 이영구 3단(파크랜드)이었습니다.
연기대국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날 반상은 집중과 투혼, 땀방울로 번들거렸습니다.
4시간째의 생방송 진행으로
해설자 양재호 9단과 김지명 캐스터의 눈가에도 피로가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양재호 9단이 ‘아!’하고 탄식을 합니다.
누군가가 내려놓은 흑돌 하나.
그것은 까만 눈동자처럼 조명을 받으며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착수자의 손에서 묻어나온 땀으로 인해
돌의 표면이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땀이 모두 마르기까지 TV에 비친 바둑판 위에서
돌 하나는 내내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그 땀이 모두 말라 다른 돌들과 구별할 수 없게 될 즈음
승부는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10시 30분 종국.
백 1집반승.
이십 여 명 가까운 동료, 선후배 기사,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네 명의 승부사는 탈진한 모습으로 복기를 하였습니다.
이윽고 방송 관계자가 다가와 조심스레 ‘인터뷰 준비를 …’이라 말합니다.
네 사람은 주섬주섬 돌 통 속에 돌들을 담아 넣었습니다.
그리고 우승팀 한게임바둑 선수들의 인터뷰, 축하 케이크 자르기와 팬들의 꽃다발 증정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한해원 2단이 오늘따라 더 이뻐 보입니다.
그 사이.
스튜디오 밖, 2위팀 파크랜드가 있었습니다.
정규시즌 4위로 겨우 겨우 포스트시즌에 올라
3위 보해, 2위 범양건영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던
파란의 팀이자 포스트시즌의 핵과도 같았던 팀.
챔피언결정전에서 한게임바둑에 초반 2연승을 거둘 때만 해도
파크랜드의 전설은 꼭 만들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응원을 나왔던 파크랜드의 나이 지긋하신 관계자 분이
‘모두들 잘 두어 주었다. 정말 고맙다’며
선수들의 등을 토닥입니다.
이영구 3단이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패한 것에 대한 분함도
실수에 대한 아쉬움도
준우승의 설움도 모두 인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이 위안을 받고 있다는 이 순간이
못 견디게 아팠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승팀이 한국기원 근처 횟집에서 새벽까지 떠들썩한 축하연을 벌이는 동안
파크랜드팀도 가까운 맥주집에서 조용히 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4년 한국바둑리그의 마지막 밤은
소리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마지막 연기대국에서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돌을 내려놓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영구 3단이었습니다.
2004 한국바둑리그.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었지만
이날 볼 수 있었던 이영구 3단의 눈물과 땀만큼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또 하나의 보석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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