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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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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일이 있습니다.
중견을 넘어 이젠 ‘원로’의 반열(?)에 들어 계신 듯한 노승일 위원님의 저서였을 겁니다.
사연인 즉 이렇습니다.
노승일 위원이 혈기방장했던 젊디젊었던 시절. 그러니까 한국기원 편집부의 수장을 맡고 있던 때의 얘기일 겁니다. 현재 책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있다한들 긴 내용을 여기에 전재하기가 무리스러워 양실짱이 간략하게 상황을 개악(改惡)해 보았습니다. ^^
… … …
 점심 무렵이었다. 외부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기원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고 있는데 때 마침 H사범과 마주쳤다. 그가 물었다.
“점심은 드셨나요?”
의례적인 인사겠거니. 이 맘이면 누구나 “식사는 하셨나요?”라고 묻기 마련이고 여기에 대한 답변은 “먹었습니다. 님도 드셨나요?”정도가 추천할 만하다고 외국인용 한국어 교본 32쪽에 실려 있다.(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은근히 장난기도 발동하거니와 평소 구태와 고루함을 피로연장의 취객 보듯 하는 나. 대답은 “안 먹었는데요.”였다. 어떤가. 이 솔직담백함.
그런데 H라는 이 사람, 얼핏 얼굴에 난감함이 스친다. 평소 워낙 말이 없는데다 뚱한 얼굴을 하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난 사람처럼 보이는 그이기에 웬만해서는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데.
“그럼 같이 하시죠.”
엇? 이번엔 내가 놀랐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가깝다. 그냥 해 본 소리인데 밥을 같이 먹잔다. H사범의 무뚝뚝한 성품 탓에 평소 그와 살가운 친분은 없는 편이었다. 하기사 그래봐야 밥 한끼.
그래서 그의 넓은 등판을 보며 계단을 거슬러 내려가게 됐다. 종로 관철동 한국기원 건물을 나선 H사범은 ‘황소’라는 별명답게 걸음걸이도 뚜벅뚜벅. 일견 느린 듯 보여도 거침이 없다.
좁다란 골목을 두어 개 돌더니 H사범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설렁탕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 없어서 못 먹지 ^^
그리하여 H사범과 나는 삼대를 이어 설렁탕만을 고집스레 고아왔다는 한 설렁탕 전문집에 들어서게 됐다. 휘장을 젖히자마자 쿰쿰한 탕내가 코를 찌른다. 샐러리맨들의 점심때를 살짝 비켜선 까닭에 식객들은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부지런히 탕에 만 밥을 수저로 뜨고 있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H사범이 주문을 했다.
“여기, 설렁탕 한 그릇만 줘요.”
먼저 종업원이, 그리고 내가 놀란 눈을 했다. 한 그릇이라니? 한 그릇을 가지고 둘이 나눠 먹자는 건가? 요즘 성적이 좀 떨어진다 싶더니 H사범의 형편이 그렇게나 어려웠던가?
놀란 눈을 대한 H사범이 씨익 웃는다.
“전 조금 전에 여기서 먹었거든요.”
 아아, 그랬던가.
설렁탕이 나오기까지, 그나 나나 말이 없었다. 그야 워낙 말이 없는 체질이지만 평소 다변인 나 역시 말을 잃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실내 가득 부유하고 있는 탕내와 향긋한 파 냄새를 맡으며 각자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먹었던 한 그릇의 설렁탕.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설렁탕이었다. 맹세컨데, 나는 태어나 이날처럼 가슴 저리도록 맛있는 설렁탕을 먹어본 일이 없었다.
마주 편의 H사범은 묵묵히 두 손에 뚝배기를 들고 뜨거운 국물을 훌훌 들이키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웃어 보이자 그도 웃었다.
오늘 만큼은, 세상이 모두 웃고 있는 것만 같구나.
… … …
대략 이런 스토리였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양실짱은 이 얘기를 다섯 번쯤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H사범님은 지금도 물론 현역 프로기사로 활동 중이시고 아주 가끔이지만 한국기원에서도 오다가다 뵙게 됩니다. 이 사건은 워낙 오래된 일이고, 그래서 그 분은 까맣게 잊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굳이 들춰 여쭤봐야 ‘그런 일이 있었나?’하며 머리를 갸우뚱 해보이곤 늘 그렇듯 뚜벅뚜벅 가버리시겠지요.
하지만 H사범님이 진짜 모르고 계시는 일이 또 있습니다.
그날 양실짱의 대선배가 되시는 노위원께서 가슴 저리도록 맛있게 먹었다던 그 설렁탕.
양실짱은 오늘날 설렁탕 국물을 대할 때면 언제나 그 일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평소 설렁탕을 좋아하지 않던 양실짱이,
왜 갑자기, 언제부턴가 설렁탕을 맛있게 먹게 되었는지, 그 냄새만 맡아도 좋아 몸서리를 치는지, H사범님은 절대! 알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양실짱도 결코! 알려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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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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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사범에 황소라는 별명 이라면 황원준 사범이겠군요. 의례적인 인삿말도 그냥 넘기지 않고 식당으로 모시고 간 황 사범님의 우직함이 마음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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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준 사범님이죠...3단 시절이던 황 사범님이 9단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적을 내던 때였죠...저도 그 글을 한 댓번 읽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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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수년전 황원준 사범님이 대전에 계실 때 지도기를 많이 두어주셔서 기력향상에 튼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매사에 성실하신 사범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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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고 계셨나봅니다. 앞으론 이니셜도 쓰지 못하겠네요 ^^; 독자님들의 눈이 이렇게 날카로우셔서야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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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는 노승일의 올인 소설 책에도 나옵니다. 올인엔 사실 바둑얘기가 더 많죠. 참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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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999 |
｜ 2004-10-01 오후 5:47: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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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이곳은 언제나 다스한 이야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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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실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