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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리포트 …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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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위해 로비로 나오니 웬 시장이 서 있다. 이른바 아침시장(潮市).
무얼 파는가 둘러봤지만 딱히 살 만한 것은 없다. 대부분 오키나와 특산물로 야채와 밑반찬들을 팔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수식으로 각광받고 있다지만 그다지 젓가락이 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침은 일식당의 정식. 식권을 내고 한 상을 받는다.
아참, 식권 얘기를 빼놓을 뻔 했다.
주최 측에서는 선수단이 도착하자마자 대회 기간 동안 쓸 식권을 개개인에게 나누어주었다. 근방 수 km 내에 식당이란 것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고로 무조건 의식주는 모두 호텔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식권은 밝은 노란색과 누리끼리한 색, 그리고 파란색의 세 종류인데, 노란색은 아침식사용, 누리끼리는 점심, 파란색이 석식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 식권에 한도 액수가 정해져 있어 그 이상 사용하면 개인 부담이다. 쉽게 말해 식권을 내고 반주로 생맥주 한 잔을 추가하면 맥주값은 얄짤없이 개인이 내야 한다는 소리. 과연 일본인다운 깔끔함(-_-)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한일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늘은 어제와 달리 일이 슬슬 풀려나간다.
먼저 프린터가 시원하게 뚫렸다. 최고로 비싼 놈이라더니 과연 스타트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쾌변(?)을 좍좍 쏟아낸다.
어제 중국에 2:3으로 패한 뒤 일본팀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오늘, 이들은 작심을 하고 나선 참일 테다. 오키나와판 가미가제일지도 모른다.
인터넷도 그럭저럭 풀렸다. 모뎀 연결은 실패했지만 아쉬운 대로 로비 컴퓨터로 메신저가 연결됐다. 언제 또 끊어질지 몰라 오로에 현지 사진부터 전송하고 본다.
꽤 느리다. 사진 한 장에 무려 15분. 사진이 슬금슬금 기어가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웬 남자가 서성이고 있다. 아마도 차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빈 컴퓨터가 두 대나 있는데 왜 이러시나 싶었는데,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만 사진 전송이 된단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호텔 측에서는 컴퓨터에 메일이나 메신저가 안 되도록 블록 같은 것을 걸어놓은 모양인데 양실짱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만 그게 풀린 모양이었다. 흐흐흐 … 먼저 자리 잡는 게 임자지.
내친 김에 명함을 주고받는다. 중국 바둑전문 격주간지인 위기천지의 기자 왕동(王東) 씨. 위기천지의 전설적인(?) 기자 이철용 기자를 아느냐고 했더니 모른단다. 자신은 일본 주재원이므로 본사 기자들과는 안면이 없다나 -_-ㅋ
간만에 메신저에 연결하니 기다렸다는 듯 서울발 쪽지가 사방에서 무더기로 쏟아진다.
“오키나와요? 현지는 어떻소?”
“유창혁 9단 컨디션은 좀 어때요?”
“하이룽! 우리도 사진 보내줘요.”
“최철한 사범한테 시상식 날짜 좀 전해주쇼.”
사진 전송 중 자칫 응대하다간 연결이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다 어차피 한글 타이핑이 안 되는 일본어 시스템인지라 모두 묵살한다 ^^; (죄송)
아차차, 기보 보낼 시간이다. 그런데 사진은 여전히 전송 중. 자리를 떴다간 누가 와서 메신저를 확 꺼버릴지 모른다. 이걸 어쩐다.
왕동 기자한테 부탁하기로 한다. “나 먼저 갈 테니 이거 끝나면 당신이 쓰쇼.”하고는 검토실로 날듯 달려간다.
음 … 유일하게 프린터가 되는 컴퓨터를 중국팀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팀 단장이자 중국기원 부주석(맞나? -_-) 화이강 8단이 모니터 앞에서 열심히 주변 사람들한테 대국 해설을 하고 있다.
조금 기다려보지만 이 분의 해설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려운 강아지마냥 서성이다 어쩔 수 없이 비켜달라고 청한다. 멀뚱히 나를 바라보던 화이강 8단이 설명을 듣자 ‘아이고 미안’하는 표정으로 비켜준다. 후닥닥 5장의 한국팀 기보를 출력한 뒤 다시 팩스로!! 아이고 바쁘다.
 이번엔 공개해설장으로 가보기로 한다. 보통 일본에서 공개해설이 열리면 수백 명 인파가 몰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수십 명 수준.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대 인파가 구경 오기는 버거울 것이다.
해설은 왕년의 컴퓨터 이시다 9단. 그리고 미녀기사로 소문난 우메자와 여사(얼마 전 프로축구선수와 결혼을 했다)가 맡았다. 예전에는 꽤 이쁘다고 봤는데 그녀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꽤 잔주름이 늘었다. 원체 마른 체형이었는데 어쩐지 이젠 와리바시가 서 있는 느낌마저 준다. (미안합니다 꾸벅)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왕동 기자가 달려왔다. 뭐라 뭐라 영어로 떠드는데 횡설수설이다. 차근차근 들어보니 내용인즉슨 이렇다.
내가 자리를 뜬 뒤 사진이 전송되는 것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 저절로 접속이 끊어졌다. 자신은 손가락 하나 댄 것이 없다. 나보고 뭐라 하지 마라.
뭐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보내면 그만이다. 노 프라블럼이라 해주었더니 그제서야 안도의 얼굴을 한다. 짜식~ 소심하긴 ^^
 한국팀의 승전보가 속속 올라왔다. 결과는 4:1. 유창혁 9단만 일본팀 주장 요다에게 졌다. 과연 아버지 불패신화는 만만한 게 아니었나 보다.
오후에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섬의 날씨는 과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여자의 마음과도 같도다.
드넓은 창문으로 파도가 일으키는 흰 포말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꽤 거친 파도임에도 몇 척인가 카누를 띄운 사람들이 있다. 전문가들인지 쓰윽쓰윽 파도를 헤치며 노를 젓는데, 여자들도 보인다.
반짝반짝 은종이를 뿌려놓은 듯한 바다와 낮은 구름떼. 모니터와 창밖을 번갈아 보며 간만의 커피타임을 갖는 양실짱.
삼 년째 대회를 열어오고 있는 CSK는 한국에는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꽤 알아주는 대기업이다.
많은 이들이 오키나와에서 대회를 개최하니 오키나와에 근거지를 둔 회사로 오인을 하고 있는데 사실인즉 도쿄에 본사가 있는 IT회사. 주업은 기업체 전산망 관리로 도쿄 증권거래소 1,500여 업체의 전산망을 담당하고 있단다. 많은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개중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게임회사 ‘SEGA’가 포함되어 있다.
이 CSK가 몇 년 전 오키나와에 큰 공장시설을 지었단다. 오키나와는 사실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낙후된 곳인데 CSK가 오키나와 실업률을 낮추는 데 상당히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CSK측에서는 이 대회를 진즉 한국으로 옮겨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실제로 추진을 하기도 한 모양인데, 오키나와 쪽에서 극구 만류했다는 설도 있다.
창밖을 보니 낯익은 뒷모습을 한 사내가 홀로 해변을 걷고 있다. 유창혁 9단이다.
오늘 한국팀 중에서는 유일하게 패점을 기록한 그. 사실 최근 상처를 한 그로서는 대국에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닐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는 동안 유창혁 9단은 드넓은 해변을 쓸쓸히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센 바람과 태고의 파도소리. 그리고 바닷물을 해면처럼 빨아들이며 도드라지는 모래의 촉감이 그를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힘내세요, 유 사범님. 다 잘 될 거에요.
일정 사흘 째.
드디어 석식 식권이 바닥났다. 이유는 양실짱 몫의 식권으로 바둑TV 권감독과 나누어 쓴 탓이다(-_- 양실짱이 한 번에 두 그릇씩 밥을 먹은 것이 아님). 호텔 측에서는 권감독이 예정된 인원이 아니라 하여 식권을 배부하지 않았었다.
뭐 곤란할 것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슬슬 일식당의 들척지근한 정식에 물리는 판. 1층 슈퍼에서 야식거리를 한 아름 사 들고 와 호텔 방에서 단둘이 오붓한 저녁식사를 한다.
양실짱은 간장 사발면, 권감독은 된장 사발면.
여기에 권감독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고추장과 풋고추, 멸치, 구운 김이 식탁에 올랐다.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일본산 오리온 캔맥주를 따서는 건배를 외친다.
한창 즐겁게 먹고 있는데 딩동 ~ 벨이 울린다. 나가보니 유창혁 9단이 문 앞에 서 있다.
“앗! 유 사범님이 어쩐 일로?”
“식권이 좀 남아서요. 이거 쓰세요.”
 유창혁 9단이 식권 몇 장을 내민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운운의 핑계를 대고 슬쩍 빠졌는데, 유9단은 우리가 식권이 떨어져 따로 먹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고마웠다. 참으로 마음 씀씀이가 넓은 유창혁 9단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유창혁 9단이 합세해 맥주캔 비우기 본격 작전에 돌입했다. 안주로는 역시 권감독이 가져온 스팸이 합류했다.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은 어느덧 11시. 양상국 단장님의 안위가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옆방에서 두런두런 단장님의 음성이 들린다. 슬쩍 도청해 보니 김현정 3단과 대작 중이신 모양이다.
아참, 김현정 3단과 양 단장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양 단장님은 잠실에서 수십 년 간 바둑교실을 운영해 오고 계시는데 김현정 3단이 어린 시절 양 단장님께 바둑을 배웠단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한국에서 프로기사로 활동 중인 김효정 2단과 함께 자매가 모두 양단장님의 제자인 것.
이번의 만남은 그러니까 약 15년 만의 해후란다. 김현정 3단이 이번에 통역을 맡았다고 하니 매우 흡족해 하셨다 ^^
(☜사진 : 한국팀 단장 양상국 8단 뒤로 통역을 맡은 김현정 3단의 모습이 보인다)
12시.
슬슬 파장을 하려는데 또 다시 딩동 ~ 벨이 울린다.
이번엔 얼큰하게 한 잔 걸치신 양단장님의 등장.
이래서 길어진 술자리가 무려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중도에 초조해진 양실짱이 다음날 대국을 이유로 유창혁 9단을 보내려 했지만 스스로 있고 싶다고 하여 그냥 함께 하게 됐다.
무르익는 대화와 비어가는 맥주캔.
오키나와의 네 번째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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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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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가 너무 기다려 지는군요... 빨리 올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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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사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