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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리포트 …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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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은 호텔 로비에서 열렸다.
꽤 많은 인파가 몰렸다. 보아하니 낯익은 인물들이 많다. 선수단 외에도 일본기원 소속의 기사들이 대거 참석한 모양이다.
알고 보니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주최 측에서 프로기사들을 꽤 초청했고, 더군다나 가족동반의 배려를 해주었단다.
CSK사의 아오조노 회장이 단상에 오르더니 마이크를 잡는다. 꽤 길고 유창한 일본어(당연하다 -_-; 일본사람이다)로 연설을 했다. 양실짱 옆에 섰던 김현정 3단이 들려준 내용에 따르면.(註. 양실짱 각색)
 “본래 이 대회는 첫 해에 한국에게 일본이 오대빵으로 깨지는 바람에 김이 팍 새서 안 하려고 했다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딱 한 번만 더하자 했는데 작년에 일본이 우승을 해 올해에도 대회가 열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강 한국팀이 양보를 한 것 같은데 올해에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흐음, 흐음 하며 취재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남이 커피를 흘려놓은 의자에 걸터앉은 듯한 껄적지근한 느낌이 든다. 두리번 두리번 좌우를 돌아보니 저어기 사람들 틈에서 한 험상궂은 사내가 양실짱을 매우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를 째려보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도 못지않게 험악한 사내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아하,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군. 괜히 뜨끔했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내 하나가 인상을 팍팍 쓰며 다가오더니 통역을 맡은 김현정 3단(아시는 분은 아시죠? 김효정 2단의 친언니로 일본기원 프로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뭐라뭐라 귀엣말을 한다.
이윽고 김현정 3단이 와서는 양실짱에게 말한다.
“가슴에 리본을 달라고 하네요. 그거 없으면 안 된다고.”
 엥? 리본? 그러고 보니 참석자들이 모두 가슴에 리본(… 이라기 보다는 조화 꽃 한 송이지만)을 달고 있다. 그게 참석자 표식이란다.
“저 사람들이 누구죠?”
“오늘 이 자리에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이 왔는데 아주 힘이 있는 사람이래요. 저 사람들은 그 의원의 보디가드들이랍니다.”
그랬다. 하지만 좀 억울하다. 그 누구도 양실짱에게 리본을 달라마라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미리 말도 안 해줬는데. 보세요. 바둑TV 권PD도 안 달고 있잖아요.”
하고 볼멘 얼굴로 권PD를 돌아보니, 허걱! 권PD 가슴에는 예의 리본이 달랑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양실짱 : 앗! 치사하게 혼자만 달고 있다니!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
권PD : 나도 몰랐어요. 그냥 서 있었는데 누가 와서 달아 주길래 …
양실짱 : -_-+++++ 찌리릿(배쉰자!!)
3월 21일.
 드디어 첫 대국의 아침이 밝았다.
한국의 첫 상대는 대만이다. 아침 10시가 되자 일본기원 담당자가 단장실로 한국팀 오더표를 받으러 왔다.
한국팀은 협의를 통해 일단 첫 판은 나이순대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다만 주장은 이창호 9단을 내세우기로 한다.
그런데 대만의 주장은 장쉬다. 의외다. 느낌상 린 하이펑 9단이나 왕 리청 9단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쪽도 머리를 쓴 티가 팍팍 난다.
간밤의 술이 과했나 보다. 맥주와 일본술까지는 좋았는데, 기분이 좋으신 양단장님께서 따신 발렌타인 17년산이 심했다. 두통으로 머리가 쿡쿡 쑤신다.
유창혁 9단의 두통 소식은 한국에서 대서특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관심 있게 언론에 소개된 모양이던데 양실짱의 두통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꺼이 ~ ㅜ.ㅜ 서럽다.
일요일. 이틀 내내 구름에 가리웠던 하늘이 비로소 파랗게 웃는다.
해변에는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크롤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말로만 듣던 스쿠버다이빙족들도 눈에 띤다. 이를 보던 이세돌 9단이 한 마디 한다.
“뭐 저렇게 번거롭게 하죠? 그냥 물안경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우리 형은 아예 물안경 없이도 잠수 잘 해요.”
과연. 비금도 형제다운 말이 아닌가. ^^
그런데 일이 터졌다. “걱정 마쇼. 다 준비해 놨소.” 하던 야구치 씨가 원망스럽다.
일단 프린터가 안 된다. 오로에서는 생중계 시간이 되었으니 빨리 기보를 보내달라고 난리다. 어찌된 거냐 물으니 ‘토너가 없어서’ 지금 막 사러 갔단다. 30분이면 된단다.
으으 … 할 수 없다. 일단 기다려야지.
30분 후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프린터에 토너를 끼운다 … 이면 좋겠지만 끼우기 위해 매우 애를 쓴다. 이거 ‘아구’가 안 맞는 것이다. 그 옆에 선 채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선 양실짱.
이윽고 토너가 무사히 삽입됐다. 희희낙락한 얼굴의 사내가 양실짱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양실짱도 후유 ~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런데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여전히 프린터는 요지부동. 최고로 비싼 프린터라더니 … ㅜ.ㅜ
결국 기다리다 지친 양실짱은 일단 대국실로 달려가 중간 기보를 빼내 복사를 한 뒤 오로로 팩스 전송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10분마다 기보를 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로에 확인해 보니 오늘 메인 중계판은 이창호 대 장쉬의 주장전이란다. 어쩔 수 없다. 양실짱은 검토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기보를 뜨기로 했다. ㅜ.ㅜ 이 무슨 석기시대 ….
 다행히도 한국팀의 승전보가 속속 들려왔다. 결과는 오대빵. 1회 대회의 재판이다. 놀라운 것은 한국팀이 오대빵으로 이겨 전원 대국실에서 퇴실할 때까지, 일본 대 중국은 단 한 판도 끝난 판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호, 과연 무적의 한국팀답다.
야구치 씨가 어두운 얼굴로 오더니 케이블이 없어 시내로 사러 나갔단다. 오늘 중으로는 해결이 되냐고 하니 걱정 말란다. 음, 믿어도 될까.
문제는 인터넷. 호텔방에서 모뎀으로라도 쓸까 싶어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왔는데 역시나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로비에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세 대가 놓여 있다는 것. 이거 작년에는 없던 거란다.
하지만 있으면 뭐 하나. 메신저도 불통이고 메일도 안 된다. 이게 되야 사진을 전송하지 -_-+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인 끝에 이유를 알았다. 설마 했는데 컴퓨터 옆에 조그맣게 일본어로 씌어 있었다.
‘메일은 안 됩니다.’
야구치 씨가 또 왔다. 얼굴이 밝다. 엔지니어가 와서 고치고 있단다. 곧 출력이 될 테니 아무 걱정 말란다. “하아! 소 데스까? 아리가또 고자이마쓰”하고 보지만 글쎄올시다 ….
결론적으로 말해, 이날 프린터는 우리를 매우 실망시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양실짱을 찾아온 야구치 씨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에에 ~ 양상! 배드 뉴우~ 스.”
“왓? 0.0”
“프린터 프라블럼 이즈 …”
야구치 씨는 오른 손을 들더니 앞으로 주욱 내밀어 보이며 말한다.
“콘티뉴우드 …”
오키나와의 하늘이 이처럼 컴컴한 줄 처음 알았다. 분노 반 허탈 반에 부득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럼 내일은?”하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아이 해브 노 아이디어. 베리 쏘리.”
저녁식사는 꽤 근사하게 하기로 했다.
일식당에 미리 데판야끼(철판구이)를 예약해 둔 것이다. 선수들이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하자 단장님이 쾌히 응낙하신 모양이다. 하긴 오대빵 아닌가, 오늘!
데판야끼는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다. 두툼한 오징어가 특히 눈에 띄었는데, 거의 사람만한 크기의 오징어에서 잘라낸 부위로 오키나와 근해에서만 잡히는 명물이란다.
고야라는 것도 특이했다. 오키나와는 장수국 일본에서도 장수 노인이 특히 많은 지역으로 유명한데 이 고야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단다.
고야는 오이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으로 오이 껍데기에 두툴두툴 튀어나온 돌기가 보통 오이보다 두 배 이상 크다고 보면 된다. 맛은 … 음, 매우 쓰고 떫다. 데판야끼 조리사 아저씨가 심혈을 기울여 양념과 함께 구워 내놓았지만 대부분 한 입 먹어보고는 스윽 밀어내고 만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하면 이 고야를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유명한 놈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사방에서 이 고야를 캐릭터로 한 인형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루가 갔다. 어휴 … 일이 꼬이고 꼬여 몸과 마음이 녹초지만 그래도 오키나와의 시계는 거꾸로라도 간다.
한화증권 안 사장님이 오늘 오대빵 바둑을 보고 기분 완전 UP이시라며 호텔 바에서 한 잔을 사셨다. 바 한 구석을 보니 요다 9단이 머리가 허옇게 센 한 노인 한 분과 대작을 하고 있다. 누군가 싶었는데 요다 9단의 아버지시란다.
유창혁 9단이 “요다는 아버지가 응원을 오면 불패라더라”는데, 과연 오늘 승점을 올렸다.
내일은 일본과의 일전. 한국팀의 주장은 유창혁 9단으로 바뀌었다. 일본팀의 주장이 요다라면 피곤한 일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주장이 되었다는 말을 전하자 유창혁 9단이 씁쓸하게 웃는다.
“나는 어차피 희생번트니 … 좋은 작전이네요.”
오키나와 리포트 이틀째. 여기서 접습니다.
사요나라 ~~~ !!! 마따 아시따 아이마숑 !! (내일 만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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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구리7 |
｜ 2004-04-08 오후 12:04: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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