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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리포트 …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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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한국선수 중 단 한 명을 빼고는 지난 대회의 구면이다. 그 단 한 명은 최철한 7단. 지난 해 연말부터 천원과 국수를 연달아 꿰차며 단박에 국가대표 자격을 거머쥔 탓이다.
조치훈 저리 가라의 근성에다, 황소 힘줄 끊어 먹는 뒷심.
심해를 걷는 듯한 깊은 수읽기와 ‘번기의 제왕’ 이창호와 맞짱을 떠 이긴, 섭씨 100도의 펄펄 끓는 자신감!
그 이름도 반짝반짝 빛나는
최. 철. 한 !!!
그런데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 눈에 수십 수를 뚜루루 내다보는 이 바둑의 귀신이, 일주일 전 슬쩍 보았던 기보를 오늘에 이르러 한 수의 오차도 없이 척척 늘어놓는 이 기억력의 화신에게도 의외의 ‘구멍’은 있었던 것이다.
일본 관서공항에서 오키나와 행 국내선을 갈아타기 위해 대기실에 머물던 선수단. 드디어 게이트에 기다리던 빨간불이 반짝인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카트를 끌고 게이트로 부지런히 향한다. 비행의 시간이다.
그런데 ‘앗!’ 누군가 외친다.
“이 여권 누구 거야!”
대기실 의자 위에 덩그마니 놓인 여권 하나.
수행원 양실짱은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 해외여행에 있어 여권은 곧 생명권. 지갑은 잃어도 남의 돈 빌리면 그만이지만 여권을 잃으면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열어보니 최철한의 얼굴사진이 떡 붙어있다.
“여권 간수 잘해.” -_-+
양실짱은 별 말 없이 일단 최철한 7단에게 여권을 건넨다. 최철한이 민망한 듯 슬쩍 여권을 받아 든다.
 여기서 끝이라면 참으로 허망할 일이겠다.
우리의 최철한 동지는 과연 우리를, 그리고 이 양실짱을 실망(?)시키지 아니 하였으니 이번엔 기내.
딩동!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착륙했다는 신호가 들어오고, 모두들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차례차례 줄을 서서 내리던 중 혹시나 싶어 빈자리를 계가하던 양실짱의 눈에 초록색 수첩 한 권이 번쩍 띈다.
“으악! 이거 누구 겁니까?”
경악의 순간, 슬그머니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여권을 집는다. 손목에서 팔꿈치로, 어깨로, 다시 목으로 … 따라간 시선 끝에는 역시나 희죽 무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최철한의 얼굴이 있다.
-_-; 최 … 사 … 범 … !!!!
이리하여 양실짱은 오키나와 공항에서 전 선수단의 여권을 일단 일괄 압수(?)하여 보관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안심이다.
이제 반격의 시간.
이후 양실짱은 틈만 나면 최철한 사범을 놀려주었다.
양실짱 : 어이! 최 사범. 여권 어딨어?
최사범 : 엇! 여권! (주섬주섬, 뒤적뒤적)
양실짱 : ^_______^
최사범 : 에이! 양실짱님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깜짝이야.
3월 20일. 원정 이틀째.
저녁 6시 개막식까지는 공식 일정이 없다.
일단 이번 기간 동안 양실짱이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재차 점검하고 업무 환경 조사에 나선다.
자칭 일당백의 양실짱. 하지만 이번엔 일당삼이다. 말이 일당삼이지 썩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일당삼이라 하니 하루 일당이 삼만원이냐구요? -_-;
자, 여기서 일당삼이란 …
1. 선수단 수행원
혹자는 인솔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나 겸손한(?) 양실짱은 수행원이란 말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수행원의 주요 임무는 선수단이 지극히 평온한 가운데에서 대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마련하는 한편 단장님을 매우 안 심심하시도록 자알 보필하는 것이 되겠다.
2. 월간바둑 취재기자
양실짱이 수행원으로 간다니 월간바둑 편집부에서 ‘거, 잘 됐다’며 카메라를 둘러메어 주었다. 다녀와서 ‘이모저모 기사’도 부탁해~ 했지만 글쎄 …
그 이모저모, 여기 굿모닝오로에다 미리 좌악 풀어버린다 -_-;
3. 오로 오키나와 특파원
이게 참 중요하다. 오로에서 도일을 앞둔 양실짱에게 부탁한 것은 아래와 같다.
- 대국 생방송을 위해 기보 좀 팩스로 자주 넣어주세요 ~
- 해설이 들어가는 메인 대국은 더욱 자주 넣어주세요 ~
- 사진도 꼬옥 전송해 주세요 ~
- 가능하면 현지 리포트 기사도 보내 주세요 ~
대충 이렇다. 음 … 모두 가능할지.
사실 오키나와 현지의 업무 환경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그 악명을 익히 듣고 왔기에 양실짱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수행원을 맡았던 요원(?)이 서울에서 미리 귀뜸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전직 요원 : 양실짱. 이번에 고생 좀 할 걸. 거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양실짱 : 인터넷도 안 되나?
전직 요원 : 인터넷은 무슨 …. 팩스 하나 덜렁 가져다놨더라고. 그것도 일본기원에서.
양실짱 : 호텔에 비즈니스센터 같은 게 있을 것 아닌가?전직 요원 : 아무 것도 없어. -_-;
사실이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대국장으로 쓰인 만자비치호텔은 비즈니스맨들의 숙박을 위한 시설이 아닌 철저한 레져용 리조트의 성격을 지닌 곳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여기 와서는 일은 다 잊으시고 푸욱 쉬세요’하는 곳.
그래도 예년보다는 환경이 매우 좋아졌단다. CSK쪽 한국팀 담당자인 야구치 씨가 오더니 “(영어로) 걱정 마세요. 올해는 준비가 완벽합니다.”란다.
야구치 씨가 따라오라 해서 가보니 쾌적한 대국장과 검토실이 보인다. 검토실에는 책상마다 노트북이 좌악 깔려 있다.
“앗! 이거 인터넷이 되나요?”
반겨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대신 대국장에서 기록자가 노트북을 이용해 기보를 입력하면 검토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최고로 비싼! 프린터를 설치해 놓아 즉석에서 프린팅이 가능하단다. 호오~ 일단 생중계를 위해 기보를 전송하는 일은 해결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상국 단장님이 외출을 하자신다. 무료함 탓도 있지만 내일부터 대국이 시작되고 나면 외출 한 번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선수들은 휴식을 원하는 만큼 호텔에 남겨 두기로 하고, 양 단장님과 양실짱, 바둑TV 권감독 이렇게 셋이 무작정 호텔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무려 도보로 20분. 우리의 숙소는 이처럼 지독히도 외진 곳에 있는 것이다. 사실 그리 외진 곳도 아니지만 워낙 넓다보니(내부에는 미니 골프장도 있다 -_-) 호텔 건물에서 리조트 입구까지 무려 15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일단 버스를 타고 본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운전기사 아저씨 이하 손님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음 … 외국인 티가 그렇게 나나?
하지만 그 이유는 곧바로 알게 됐다. 덜렁 자리부터 잡고 본 우리와 달리 다른 승객들은 승차하면서 뭔가 기계에서 종이 한 장씩을 받아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은행 창구에서 대기표를 받듯 말이다.
아하! 이제 알았다.
우리도 한 장씩 뒤늦게나마 꺼내보니 숫자가 적혀있다. 우리 것은 16.
버스 전면 유리창 위에 증권사 전광판 같은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각 숫자 아래 요금이 표시되어 있다. 점점 멀리 갈수록 숫자도 늘어간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버스도 미터기가 있는 것이다. 아아, 신기하다. ^^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것이고, 막상 미터기 수치가 쑥쑥 올라가니 좀 억울하다. 한국에서는 한 정거장을 가나 스무 정거장을 가나 요금이 똑같은데 … 이거야 택시하고 다를 게 뭔가 -_-; (실제로 세 명이 타니 택시 값과 맞먹었다)
어쨌든 류쿠무라에서 모두 내린다. 류쿠무라는 오키나와판 민속촌. 양실짱은 “오키나와에 오면 이곳은 꼭 들러봐야 하는 곳입니다. 제가 미리 다 조사해 두었지요.”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운이 좋았다. 무작정 탄 버스가 마침 류쿠무라행이었다니 ^^
민속촌 관광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정이었다. 토속빵도 맛보고(하나 사서 셋이 나눠 먹었다), 오키나와산 민속주도(한잔 사서 둘이 나눠 마셨다 -_-) 마셔 보고.
술 한 병에 우리 돈으로 50 만원 이상 하는 것들이 있기에 보니 병 자체가 고색창연하기 이를 데 없다. 술병 겉에는 진흙인지 오물인지가 덕지덕지 묻어있어 마치 고분에서 갓 발굴한 300년 전의 술병같이 생겼다.
오키나와 토속주로 해저 깊이 수년간 묻어 두었다가 꺼낸 것들이란다. 그 맛이 궁금했지만 너무 비싸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다.
삐리리 삐리리 ~ 소리에 가보니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원주민들이 해조(海鳥)를 부를 때 쓰던 피리란다. 집에 두고 온 다섯 살 박이 아들놈 생각에 하나 구입했다. 삐리리 삐리리 ~~
수만 년에 걸쳐 오키나와 천혜의 자연이 만들었다는 홍염(붉은소금)도 신기하고, 모래로 만든 ‘짝퉁’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재미있었다. 따님 주신다며 단장님이 목걸이 두 개를 사신다.
 딩가당 딩가당 소리에 끌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역시 기대대로 민속공연이 한창이다.
비파 비스무리한 악기를 든 두 남자가 딩강 딩가당 연주를 하며 우리의 서도민요를 닮은 노래를 부른다. 그 옆에는 진한 화장에 민속복을 입은 여자가 북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고. 이어서 붉은 옷차림의 여자 셋이 나와 타닥타닥 캐스터네츠 비슷한 악기를 손에 쥐고 민속춤을 보여준다.
그런데 비파를 퉁기는 한 남자 얼굴이 매우 낯익다. 그러고 보니 개그맨 박수홍을 이리 닮았을 수가. ^^ (내내 웃었다)
공연의 피날레는 관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추기. 양실짱도 기립하여 평소 갈고 닦은 유연한 몸짓을 선보인다. 공연이 끝나자 기념촬영. 아까 춤을 추었던 여자 하나가 예의 비파 하나를 들려준다. 뭐라 뭐라 일본말로 하는데 아마도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제일 잘생긴 분에게 드리는 겁니다.”
오후 6시.
드디어 개막식이 시작됐다.
엇! 그런데 지면이 벌써 …!!
개막식 얘기는 내일 들려드리죠 ^^
사요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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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열렬한 팬중 한명입니다^^ 바둑보급에 정성 다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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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