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바둑은 다시 둘 수 있지만 동천홍의 하늘에 두번 우는 닭은 없는 법. 우리는 한판의 바둑에 이 한수를 생각해야겠지요."

"이 한수?"

"금릉위 그리고 동지들...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 한판 바둑에서 죽은 대마는 판을 다시 하기 전에는 살 수 없지않습니까? 서대장이 양영의 군을 동원하는 것 말고도 한가지 할일이 더 있소이다. 규완이...그거..."

김옥균이 좌중을 돌아보며 이규완이 품속에서 꺼내 놓은 동봉된 서찰을 개봉했다.

"보시지요?"

"이게 뭔지요?"

박영효가 김옥균이 주는 서찰을 펴 보고는 두눈을 질끈 감고는 옆자리로 돌렸다.

"오? 이건 살생부군요?"

서광범이 그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백지 위에는 십여 명의 제거대상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었다.

(민태호, 민영익, 조영하...유재현....)

"그런데 이들 중 유재현은?"

박영효가 살생부의 명단 중에서 유재현을 지적했다. 그는 군왕을 지근에서 모시는 내시부의 수장이었다.

"금릉위께서 그 자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나 그를 제거하지 않고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고균?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권자도 아닌 사람을 죽일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박영효의 진면모다. 박영효는 두번의 정변에 깊게 개입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것은 원수도 별거(?) 아니라는 그의 인생관 때문이었다. 박영효는 말한다. '사야기략'은 그가 남긴 책이다.

(인생은 한번이다. 바둑이라면 판을 거듭할 수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 남과 척질 일 없다.)

박영효는 군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다. 군왕이 철종의 양자로 입적된덕분에 그들 사이는 처남매부지간이다.  박영효는 일찍 아내를 잃었다. 군왕의 부마는 아내가 죽어도 재혼할 수 없는 국법 탓에 박영효는 홀아비(?) 신세였다. 군왕은 박영효의 이런 처지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