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음악가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가야의 우륵(于勒), 신라의 옥보고(玉寶高)를 들 수 있다. 삼국통일을 전후해 음악을 중흥시킨 옥보고와 왕산악이 거문고를 풍토음악에 맞게 개조한 반면 우륵은 가야금(伽倻琴)을 만들었다.

오열하는 듯한 소리를 토하는 이 악기는 일본의 ‘고도(琴)’가 단조로우면서 유량한 음조를 내는 데 반해, 가야금은 그 농현(弄絃)의 신비로운 오열조(嗚咽調)가 망국의 음이라고 할만큼 비창하다. 구성지게 넘어가는 마디마디는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가야가 망한 지 천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패망한 가야국 악사(樂師)의 한을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삼국의 악(樂)은, 처음엔 호악(胡樂) 계통의 마상악기(馬上樂器)를 주로 했다. 즉, 간단한 현악기나 타악기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중국과 교류하며 진보된 현악기가 들어오게 되었다. 고구려에 있어서는 진(陳)나라로부터 칠현금(七絃琴)을 수입해 왕산악 등이 많은 악곡을 지어 나중엔 현악금(絃樂琴)이라 고쳐불렀다.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의 것과 같은 게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불교의 기악(伎樂)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 음악의 근간이 되었다. 신라 음악은 대금 · 중금 · 소금의 삼죽(三竹)과 삼현(三絃)을 주로 했다. 특히 가야금은 발전을 거듭해 나중엔 교방(敎坊)에서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우륵의 출생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삼국사기> 등의 옛 기록엔 그가 성열현(省熱縣) 사람이라 했으니 고령 · 거창 지방 사람으로 고령가야(古寧伽倻) 출생이었을 것이다. 그의 부모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고려 시대의 예로 보아 창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악사로서 금(琴) · 가(歌) · 무(舞) 세 가지를 잘해 가야연맹체의 인정을 받아 악공이 되었다.

가실왕 밑에서 중국 악기를 다듬다가 우리나라 지방 음곡을 올리고 열두 곡을 지어 왕의 교방음악으로 편성해 흥을 돋구었으나 가야 운명이 위태롭자 신라에 투항해 충주에 터를 잡은 채 후학들을 가르쳤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무관랑은 충주에 들려 우륵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실왕의 아들 무력(武力)이 우륵을 찾아와 하림궁(河臨宮)에서 연주하게 한 적이 있었다. 소문을 들은 우륵의 제자 이문(尼文)이 합세해 하림조(河臨調)와 눈죽조(嫩竹調)를 지어 격찬을 받았으나 신라 대신들은 망국의 음이라고 물리칠 것을 간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왕마마, 난세의 정치를 펼친 은(殷)나라 악사가 연주한 망국의 음과 비슷하오니 삼가 거두워 주옵소서!”

그러나 진흥왕은 보존할 마음으로 계고(階古) · 법지(法知) · 만덕(萬德)에게 우륵을 찾아가 가야금을 배우게 했다. 우륵은 그들의 장기를 살려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겐 노래, 만덕에겐 춤을 가르쳤다. 이들에게 전한 신운(神韻)은 신라의 대악서(大樂署) · 음성서(音聲署)를 통해 전통을 잇고 있다.

가야국 정벌을 목표로 사다함이 출정한 사흘 후, 지소태후는 무도연(舞蹈宴)을 베풀어 세종(世宗)의 짝을 지어주려 생각했다. 진흥왕도 세종을 막내 동생처럼 대했지만 왠지 의기소침하고 매사에 의욕을 보이지 않자 다소 신경이 쓰였다. 지소태후의 고심은 연회에 나온 고관대작의 아름다운 딸을 골라 세종의 짝을 정하려는 속셈이었다.

당시 왕궁은 신라를 건국한 세력들에 의해 여섯 부락의 명칭을 지방행정기관으로 고치고 중앙관제를 17등급으로 정한 상태였다. 양산부(楊山部)를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이씨(李氏)를 성으로 삼았으며, 고허부(高虛部)를 사량부(沙梁部)로 고쳐 최씨(崔氏)를 성으로 삼았고, 대수부(大樹部)를 점량부(漸梁部)로 고쳐 손씨(孫氏)를 성으로 삼았으며 우진부(于珍部)를 본피부(本彼部)로 삼아 정씨(鄭氏)를 성으로 삼았고 가리부(加利部)를 한지부(漢祗部)로 삼아 배씨(裵氏)를 성으로 삼았으며 명활부(明活部)를 습피부(習比部)로 삼아 설씨(薛氏)로 성을 삼았다.

그렇다보니 궁 안 요처에 앉은 이들은 한결같이 여섯 부락의 전인들이었다. 내명부 약사 설추경(薛秋鏡)은 명활부 사람으로 일찍이 지소태후 눈에 들어 왕실에 들어와 태후를 측근에서 모시는 약사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제 마흔을 넘긴 상태였으나 혈색 좋고 맡겨진 임무에 뛰어났는데  그는 한 달 전부터 대단한 구상을 하여 태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태후마마, 세종 전군(殿君)이 열일곱 나이가 됐음에도 색을 취하는 일에 인색한 것은 어색(漁色)의 오묘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군의 마음에 불길을 놓자면 태후궁으로 오는 길에 미묘한 복도를 만드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복도라?”

“예에 마마. 중원에서 오월(吳越)의 명승부를 연출하던 오부차가 관와궁에 설치한 것이옵니다. 궁엔 특별한 곳이 있었사온데 향섭랑(響屧廊)이란 복돕니다.”

섭(屧)은 나막신이고 랑(廊)은 복도다. 관와궁의 복도 아래를 파 큰 옹기를 집어 넣고 위에 널빤지를 덮어 평탄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소리 나는 복도다.

궁녀가 나막신을 신고 복도 위를 걸으면 맑고 경쾌한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사내들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몇 배나 웅장한 경궁요대를 지었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경궁요대를 능가했다고 후대에 남긴 시가 증명한다.

관와궁의 관와각은

기둥 끝이 구름을 뚫었지만

그래도 높이가 모자라

월병(越兵)이 오는 걸 보지 못하는구나

그런 것처럼 일단 그런 복도를 만들어 무도연(舞蹈宴)에 뽑힌 고관대작의 따님들로 그 위를 걷게 하면 전군(殿君)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주청했다. 표면적으로는 진흥왕을 시중들 여인들을 뽑기 위해서였지만 남달리 세종을 사랑한 지소태후는  은밀히 공사를 추진해 지난 삼월삼짇날 닷세 전에 완공을 보았다.

자신이 그 복도를 걸어보거나 반대쪽에서 소리마디를 들어보고 한시라도 빨리 무도연을 열어 세종전군의 짝을 찾아주고자 조바심을 쳤다. 그의 짝을 찾는 데엔 설추경이 앞장섰다.

여인의 등급을 상중하로 나누고 평점을 줄 때엔 다시 상중하로 나누었다. 상이라 하여도 등급은 상의 상이나 상의 중으로 갈릴 수 있었다. 설추경은 상의 등급을 받은 여인들만이 소리 나는 복도를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무도연은 시합을 한다기보다 상류층의 유연으로 보는 게 옳았다. 아무런 격식없이 즐겁게 놀 수 있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지소태후가 굳이 무도연을 연 데엔 이유가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노래와 춤은 방사(房事)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소리마디를 길거나 짧게 이끌 수 있는 가창(歌唱)은 호흡과 관련있기 때문에 역대 제왕들이 잠자리 시중으로 노래 부르는 여인을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엔 허리가 가늘은 세요미인(細腰美人)을 알아주었는데 그녀들은 식사량이 적어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처녀 때엔 그런 대로 성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나 아이를 가지면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어 단명했다. 그 점이 문제였다.

춤 추는 무희(舞姬)들은 균형을 위해 식사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발이 작은 ‘초승달(新月)’ 미인을 찾다보니 전족(纏足)이란 걸 사용하게 돼 여인들은 뒤똥뒤똥 오리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몸이 셋으로 나뉜 채 걷게 돼 방사(房事)를 치르면 곡도(穀道)를 움츠려 자궁을 조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날 설추경의 계획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세종은 노래와 춤엔 관심없고 일행들과 떨어져 창가에 선 채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는 소녀에게 향해 있었다. 청조였다.

▸전군(殿君) ; 정비가 아닌 후궁 소생이거나 정비가 왕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통하여 낳은 왕자

▸오월(吳越) ; 오나라와 월나라

▸관아궁 ; 월나라 구천이 상납한 서시(西施)를 위해 금은 주옥으로 만든 궁전

▸곡도(穀道) ; 항문

▸기악(伎樂) ; 가면희(假面戱)

▸용 장식 깃대는 궁중행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