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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40회(특집)/ 비금도와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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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傳 40회(특집)/ 비금도와 이세돌
2008-04-01     프린트스크랩
▲ 지금은 세계가 이세돌을 좇는 시대.


이 글은 [바둑傳 39회/ 해도(海島)에 왔던 바둑 신선](<=여기클릭)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2) 비금도의 전설

바둑은 기산검림(碁山劍林)이다. 바둑은 예능이면서 곧잘 검술의 그것과 비교되며 고수들의 탄생과 소멸의 드라마를 쓴다.
21세기 세계 최강의 바둑강국으로 군림하는 한국 바둑계의 정상은 이제 누가 뭐라해도 이세돌이다. 그는 지난해 실력으로 그것을 증명했고 2008년 벽두에 LG배 세계기왕전을 석권하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세돌의 앞에는 응씨배 하나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 또한 지금의 이세돌의 기세로 보아 막을(?) 사람이 없어 보인다.

LG배를 석권한 후 이세돌의 인터뷰는 나근나근했다. 까실하다는 세간의 평은 간데없고 겸손과 공손으로 시종여일한 모습이 주목이 된다.
지금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군에서 '이세돌 기념관'을 만든다고 한다. 기념관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내용은 소박하다. 이세돌이 어린시절을 보낸 신안군 비금도 내의 폐분교를 리모델링하여 이세돌 자료전시실과 바둑살롱을 만들고 어린이바둑대회를 창설하여 신안군의 자랑스런 이세돌을 기리고 덕분에 지역 홍보효과도 거두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우선 금년 예산을 3억 정도로 약소하게 시작한다고 한다.

이세돌 자료전시관 및 바둑살롱으로 리모델링하게 될 비금도 안의 한 초등학교.


이세돌은 엄밀하게 따지면 비금도 출생은 아니다. 이세돌이 비금도 소년이 된 것은 85년 목포에서 교직에 있던 부친 이수오(98년 작고)씨가 퇴직을 하고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이세돌을 비롯한 가족과 함께 고향인 비금도로 귀향한 것이 인연이다.

이수오씨는 아마 3단의 기력으로 섬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며 3남2녀의 자녀를 키웠고 그중 이상훈 이세나 이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친다. 이세돌은 대여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사활을 집중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교재였던 오청원의 '명국세해'가 기억난다고 했다.

그렇게 바둑에 입문한 이세돌은 이붕배 어린이바둑대회를 우승한 후 권갑룡도장에 들어가 95년 입단한다. 21세기 세계바둑의 정상 이세돌의 등장에는 부친 이수오씨의 절대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비금도의 전설은 목포에서 낙향을 결심한 한 아버지의 혜안과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남해와 바둑

이세돌의 고향 신안군은 서남해(西南海)의 일부다. 서남해는 보성 강진 신안 영암 나주를 말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국악, 서화, 바둑의 국수(國手)들을 배출해온 지방이다. 서편제니 보성소리니 하는 창과 호남화단의 종가인 허문(許門)과 김인 조훈현 이세돌로 이어지는 바둑계의 국수의 맥은 이 지역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서남해는 한국 현대바둑이 낳은 불세출의 세 명의 고수에 멈추지 않는다. 조선후기 천지를 뒤흔들던 조선 국수 정운창이 보성 사람이고 보면 우리는 한번 이유를 따져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영암에는 월출산이 있고 그 아래의 월출사지에 전해오는 석국(石局) 한 점이 있다.

월남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진각국사 혜소(1178-1234)가 창건하여 조선초에 파괴된 사지다. 절터에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가 외롭게 서 있는데 이규보가 지었다는 비문은 판독 불능이다. 다만 진각국사는 중국 유학을 한 승려로 전남 일대의 여러 사찰을 창건했고 그의 시문에 바둑을 노래한 시가 한 편 있어 월남사지에 있는 석국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월남사지가 있는 강진은 옛날 탐진이라 부르던 곳으로 바둑과 매우 밀접한 고장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바둑의 기록이 그것을 증거한다.

- '조정이 늙어 탐진에 내려와 있는데 어떤 노인이 매일 찾아와서 바둑을 두었다(曺精老居耽津有白頭翁日來訪圍碁). (동국여지승람 강진조)

이 기록을 '권문해'가 지은 '문집에는 매일 조정을 찾아와 바둑을 둔 노인이 남해의 용이었다는 것으로 발전(?)하여 이 지역의 전설이 된다. 조정은 고려사에 나오는 국수 '조정통'을 연상시킨다. 충렬왕 때 원의 쿠빌라이의 부름을 받고 원나라에 원정을 갔던 바둑 고수가 바로 조정통이다.

고려의 정사인 고려사는 중요한 바둑 기록을 몇 건 전한다.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인 기록이 충렬왕 1년의 기록이다.

- 무진일 리부(吏部) 원외랑(員外郞) 곽희분과 랑장(郞將) 조정통이 바둑을 잘 둔다 하여 황제의 소환을 받고 원으로 갔다(善碁被帝召如元).

충렬왕은 세자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왕이 된 사람이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른 직후 원나라는 고려에서 바둑 잘 두는 두 사람을 발탁해 간 것이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세조 쿠빌라이(忽必烈)다. 이때가 원 세조 지원(至元) 11년으로 고려 충렬왕 1년에 해당한다. 원사의 1274년의 기록에서 간추린 대 고려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월. 궁궐을 완성하다.

2월. 고려왕이 이익손을 보내와 하례하다.

3월. 장군 철목합을 보내어 일본 정벌에 합류케 하다.

5월. 공주를 세자(충렬왕)에게 시집보내다.

7월. 고려왕이 죽다. 사신이 오다.

8월. 세자 심이 고려의 왕이 되다.

9월. 고려왕이 왕숙을 사은사로 보내다.

11월. 이사손을 고려에 보내어 답례하다.

고려사와 원사의 기록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원사에 곽희분, 조정통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 해에 고려는 원에 사신을 두 번 보내는데 사신단 속에 곽희분, 조정통이 편입되어 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의 세조가 고려의 관원 중에서 바둑을 잘 두는 고수만을 특정하여 소환을 해 간 것이다.
바둑 시를 남긴 진각국사가 창건한 절에 석국이 있고 관찬지리지와 각종 야사에 바둑과 관계된 기록이 있는 것은 월남사 주변 강진 영암 일대에 바둑이 흥성했다는 반증이다.

동국여지승람은 담양에 있는 소년암(少年巖)을 기록하고 있다. 담양의 어느 산간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어떤 아이가 그곳에 갔다가 어떤 노인과 바둑(장기)을 두게 되어 날을 세웠는데 호랑이가 와 그것을 지켜보고 갔다는 내용이다. 호랑이 발자국이 지금(동국여지승람 편찬시)도 남아 있어 소년암이라 한다는 것이다.
쌍계사 근방에는 최치원과 진감선사(진각국사와 다른 인물)의 바둑 설화가 전한다. 귤 속에서 최치원과 진감선사가 바둑을 두면서 귤을 주워 까본 사람에게 지금이 어느 시대냐 물었다는 당나라 시대의 고송유수간(古松有水間) 설화와 비슷한 내용이다.

석국은 담양 구례뿐 아니라 예천에도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예천 청량산에 석국이 있는데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비금도의 인근 섬인 우이도에도 최치원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돌바둑판이 있다. 하나같이 신선담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학자이면서도 선학(단학) 계열에서도 추앙을 하는 인물인 것을 보면 최치원이 바둑 설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짐작된다.



고운 최치원이 바둑을 두었다는 우이도 산 정상의 바둑돌.


천재는 천재를 낳는다


예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도라 칭해지는 바둑 또한 결코 간단하게 고수가 될 수는 없다. 예술이나 예도는 기반이 중요하다. 기반은 예인이 태어나는 정령의 응결지다. 예인의 세계는 천재가 이끌어가지만 천재가 출현하려면 절대적으로 기반이 필요하다. 최치원, 조정, 정운창으로 이어지는 서남해의 바둑은 '주서'에 전하는 백제에 바둑이 특별히 성행했다'는 역사적 기록과도 맥이 닿는다.

서남해에서 조금 북진하면 익산 미륵사지에서 바둑알이 출토된 바 있다. 백제의 바둑알인 것이다. 사서(史書)는 기록으로 말하고 미륵사는 유물로 말한다. 조남철 이창호라는 두 인물도 이 근방에서 태어난 것도 결코 우연이라 할수 없다.
영암, 신안 등을 중심으로 바둑의 기반이 조정되고 있다. 바둑테마공원이나 대불대학의 바둑학과 설치 등이 그것이다. 신안군의 이세돌 기념관도 그런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세돌이 바둑도장을 연 것도 기반조성의 한 예다. 그의 도장에는 수명의 어린 기재들이 내일의 국수를 꿈꾸며 칼을 벼리고 있다. 가장 수를 잘 볼 때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이세돌이다. 과연 그의 손끝에서 자라날 내일의 국수는 누구일까. 올 여름 아름다운 섬 나주군도(신안군)를 돌아보며 그것을 생각해 볼 참이다. 160년전 매화사자를 그리워하던 한 늙은이의 노래도 들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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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stlsql |  2008-04-01 오후 9:14: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세돌은 비금도 출생이 맞습니다. 이세돌 부친의 고향이 비금도이고, 결혼하기 전부터 비금도에 살고 있었습니다.  
wjstlsql 당연히 5남매 모두 비금도에서 태어났구요..
李靑 함자에 오기가 있었군요 시정했습니다.
wjstlsql |  2008-04-01 오후 9:16: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두번째 사진 아래 세 단락의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이세돌 부친의 이름과 작고하신 해까지도...
의도는 좋지만 이세돌에 관한 자료 조사가 너무 미흡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을강 이세돌사범은 좋아합니다, 팬입니다.
노을강 응창배 꼭 먹기바랍니다.
술익는향기 |  2008-04-02 오전 8:49: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언젠가 이세돌, 이창호, 조훈현 프로의 스토리를 한번 깊게 다루셔서 책으로 내주시길 부탁드리고싶습니다... 여지껏 알려지지않았던 그분들의 내면, 사상, 생각 등에 좀더 세심한 조명을 하여 글을 써주시면 바둑사에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청님의 깊이있는글 항상 잘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비만석 |  2008-04-06 오전 6:31: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이세돌...이세돌....쎄돌이.....역시 ....이청님 고생하셨우...  
팔공선달 |  2008-04-07 오전 5:44: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는 다른것보다 더 획기적인걸 발견했다 !!!
이청님의 글에서 사진을 보았다
그것도 3장씩이나 !!!
나는 이부분에 더 관심이간다
글의 전체 분위기도 바뀐것 같고 (밝아진것...)
내용을 떠나서 훨씬 정겹고 화사하다
이청님이 봅기운을 타셨나보다...^^* 나는 조오~타  
팔공선달 오타는 새겨 읽으시요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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