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본능
Home > 컬럼 > 문용직手法
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본능
2018-11-12     프린트스크랩


바둑의 본능

(이 글도 예전에 써두었던 것이다. 곧 이어 올릴 알파고 분석과 관련해서.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에 써두었던 거 같다. …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찾아내고 애용한 것이라 해서, 그 수법이 우리의 이성이나 감성에도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


삭감과 관련해서 바둑의 본능을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본능.
바둑의 본능.

처음 써본다. 문득 ‘본능’에 손끝이 머물렀다. 손끝에서 터져 나온 단어다. 다행히 삭감과 관련해서 괜찮은 개념 같다. ‘몸이 곧 의식’이라는 것이 맞는 듯싶다.

바둑의 본능은 무엇인가? 있긴 있는가?

있다. 둘러싸고 누르는 것에 있다.
둘러싸고 누르는 것이 바둑의 본능이다.

둘러싸는 것은 중국에서 애초에 바둑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圍棋(위기)가 그것이다. ‘위’에는 ‘둘러싸다’ ‘사냥하다’의 뜻이 있다.

누르는 것은 곧 한자로 鎭(진). 중국의 바둑을 보면 유별나게 ‘鎭’이 많이 쓰였다. 『四子譜(사자보)』인가, 『官子譜(관자보)』인가,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忘憂淸樂集(망우청락집)』이던가. 鎭神頭(진신두)라는 이름의 정석 변화가 100개 넘게 기록된 책도 있는데 초점은 鎭(진), 단 한 글자다.

▼ (1도) 진신두

1도
상변 흑4를 두고 진신두라 부른다. 그 유명한 ‘진신두의 묘수’라는 것은 흑4 이후의 변화 중 하나에 붙인 이름이다. 하변 흑2도 많이 애용된 수법. 역시 누른다.

▼ (2도) 진신두의 묘수-1

2도
1선에서 한 칸 뛰어 수를 한 수 늘리는 묘수. 그것이 진신두의 묘수다.
현현기경에 나온 묘수인데, 그 과정은 이렇다. 하변이 먼저, 그리고 상변. 상변 흑세모는 하변에 이은 수순으로 멋진 맥이다.

▼ (3도) 진신두의 묘수-2

3도.
상변 백2는 부득이한데, 이제 수상전이다.
흑도 세 수, 백도 세 수.
하변이 다음 수순인데, 절대적인 수순이다. 초점은 흑15. 멋진 맥점으로 이로써 흑의 수수는 네 수가 되었다. 흑15를 ‘진신두의 묘수’라고 칭한다. 일반화된 묘수이니 이제는 맥점에 해당한다.


자, 진신두는 그런 것이고, 또 진신두의 묘수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중국의 고전은 왜 그리도 ‘鎭(진)’에 공을 많이 들였을까?

바둑은 전쟁. 상대를 위압할 필요가 있다.

초점은 위압하는 방법.

『삼국지』를 보면 장수가 단신으로 적진의 장수와 대적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영향력. 장수가 패배한 군대는 멀쩡했다가도 곧 오합지졸로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백마대전에서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베니 기세등등했던 원소의 군대는 도망치기 바빴다.

어린 시절의 그 의문을 뒷날 프로이드(S. Freud)의 이론에서 풀었을 때엔 정말 유쾌했다. 답은, 가톨릭과 군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고전 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Ego(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에서 찾았다.

무리를 누르는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무의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호소가 먹히면, 또는 호소가 자연스레 먹히는 조건이 구비되면 의식이 무너진다. 장수를 쓰러뜨리면 곧 무의식을 압도하는 것. 의식의 기반을 잃은 군대는 우왕좌왕, 오합지졸로 변한다. 신의 위엄은 높은 곳에 임하는 데에서 온다. 성스러운 당(堂)의 장중함은 아주 좋은 효과음이다.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점(点)’ 하나로 모이는 엄숙함,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앞으로 나서는 것, 말투만 들어도 정신 나간 것이 분명한 히틀러지만, 그에게 수 십 만 군중이 이성을 잃고 압도당하는 것, … 등이 그런 것의 좋은 사례다. 그대는 좁다. 자신은 안다. 하지만 대중 앞에 자신만만하게 나서라. 태연할수록 대중은 넋을 잃고 그대를 따르리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압하는 방법은 우리의 본능에 합치되는 경향이 있다. 의식의 일부를 누르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바둑의 본능과 우리 인간의 본능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랬다. 둘러싸고 누르는 것이었다.
바둑의 본능을 잘 살리고 있었던 고대 중국의 바둑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둘러싸고 누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르는 것은 어디서 가능한가?
아래(下)인가 위(上)인가.


여기서 문제가 하나 등장한다.

삭감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삭감은 누르는 것인가?
바둑의 본능에 가까운 것인가?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만 돌아보면 삭감할 때 상대를 둘러싼다거나 공격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실제로 수법의 효과도 그렇고.

삭감이 처음 발견된 중세 일본에서, 삭감은 고대 중국이 찾아냈던 바둑의 본능과는 거리가 먼 수법이었다.

싸움보다도 상대의 집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두기에 그러하고
상대의 공격을 받지 않는 적당한 선을 찾아내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승부를 장기전으로 본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삭감은 효율을 중시하는 수법이었다.

문제는 효율.
효율의 방식과 관념의 너비 확장.

지난 백 년, 국수 명인들은 효율의 관념을 넘어서서 삭감의 수법을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슈사이 명인은 특히나 삭감을 잘 활용했는데, 그의 삭감은 전국적으로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슈사이 명인의 삭감 수법만 갖고도 책을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좋은 책을. 다소 아쉽긴 하다. 앞선 강의에서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선보여 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다행히 마침 알파고가 왔다.
알파고가 최근(2017년 1월 경) 바둑에서 고맙게도 삭감의 감각을 많이 선보여 주었다. 다음 글에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연상시키는 것을.

여하튼, 알파고가 삭감을 잘 쓰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삭감하는 마음은 본능보다는 효율. 그러니 알파고와 삭감은 죽이 잘 맞는다. 알파고는 감정이 없으니까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효율은 승부를 다루는 방식의 하나.
그러니 삭감의 응용은 대국자의 재능에 많이 달린 문제가 된다.

다음 글에서는 그것을 일부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의 삭감 수법에서 우리는 명인들의 예리하고도 넓은 삭감의 감각을 아울러 다루게 될 것이다.


삭감과 효율.
효율과 본능.

본능은 감정에 치우친다.
진화 과정의 후기에서 인간은 - 본능을 넘어서서 - 숙고하는 능력, 돌아보는 힘, 희생하는 의미 등을 키워왔다. 바둑에서 ‘효율’에 상당하는 것은 그런 것과 관련이 깊다. 그와 달리 본능의 대부분은 진화 과정의 초기에 발달했다.

그러니, 고대 중국이 발달시킨 ‘상대를 내리누르는 수법’은 기실 그다지 추천할 만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하지만 우린 둔다.
두고 싶어 둔다.

때로는 감정을 격하게 발산하면서 속기 한 판 하고 싶기만 하다.

다음 글부터는 알파고의 바둑을 보면서 삭감의 감각을 폭넓게 감상하자. 물론 삭감만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삭감은 반상을 넓게 바라보는 것.
넓은 것은 모든 것을 담을 테니, 본능적인 추구 또한 담지 않을까 싶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하이디77 |  2018-11-19 오후 4:59: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 사범님의 글 계속 기대됩니다. ^^*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
위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