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발굴 기보.  패(劫)(怯)의 설명이 보인다)

오로 뉴스 난에 베트남 바둑 기사도 종종 보인다. 작년에 국내에 베트남바둑과 관련된 석사논문도 나왔다. 베트남 역사 속에 바둑이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한문을 공식 문자로 쓰고 11세기에 이미 국자감을 설치하고 과거제도를 통해 관료를 등용할 정도로 친중국 국가였으니 그 나라 역사에 바둑이 등장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베트남과의 관계도 우호적이다. 이수광과 월남 사신 '풍극관'의 만남, 수십년 후 베트남 앞바다까지 표류했던 조선인 '조완벽'이 베트남에 출간된 이수광의 시집을 목격한 기록담이 있을 정도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문자는 통했던 조선과 베트남의 지식인들의 교류라 하겠다. 이들 교류중에 조선과 베트남 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바둑이 논의된 기록이 한 점 있다.  1790년 7월19일 내몽고 부근 열하에 갔던 조선인이 있다. 조선인은 서호수( 徐浩修 1736-1799 )였고 베트남인은 '반희익'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팔순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서호수는 이 곳에서 '반희익' '문희진' 등 베트남 사신들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인지감을 느낀다. 서호수는 자신의 다른 기록 속에 '사해안에 기금서화를 아는 나라 몇이냐(四海何國碁琴書畵)' 묻는다. 서호수는 베트남 사신에게 시를 써주며 우호를 다진다.

나의 집은 동쪽 삼한의 동쪽이여

월남 소식 알지 못하지만

그대들 길 나설 때 남쪽별 움직였지요

천자 높은 곳에 있어 사해가 하나이고

몽고술 깊은 맛 밤을 새우게 하네

날아가는 수레 타고 바람을 헤치고 가야할 곳

그대 만리 귀국길 꿈만 같고

아직도 남과 북의 중간쯤에 있겠구나.

(家在三韓東在東. 日南逍息杳難通. 行人遠到星初動. 天子高居海旣同.
垌酒眞甚消永夜. 飛車那得朔長風. 知君萬里還鄕夢. 猶是釣陳豹尾中)

서호수는 베트남 사신에게 전별시를 써 준다. '일남'은  베트남이고 '진작'은 십자성과 북극성 사이를 말한다. 이백년 전 몽골의 한 평원에서 만났던 조선사람과 베트남 사람들의 교류가 아스라하다. 각자 고국을 떠나 만리길을 와서 수만 리 떨어진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반가움과 아쉬움의 기록이 찰지다. 서호수는 정조시대 조선 최고의 천문학이자 수학자였다. 그는 담헌 홍대용을 능가하는 과학적 지식과 탐구욕의 소유자였다. 한양에서 북경을 지나 내몽고의 열하를 갔던 서호수의 길은 10년전 박지원이 갔던 바로 그 길이다.

글로 통하고 바둑으로 통한다면 그 사람은 친구다. 말도 글도 통하지 않고 바둑으로 통한다면 그 사람도 친구다. 글과 말이 필요 없는 수담(手談). 그것으로 세계인의 소통구조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