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명나라 때 출간된 왕창조 판각본은 원나라 판 현현집(현현기경)의 원래 본문(문자부)을 충실하게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제대로 살려냈을까?

현현집 전체 6권 중 제 1권 속에 들어있는 장의(張擬)의 기경십삼편(棋經十三篇), 피일휴(皮日休)의 원혁(原弈), 반고(班固)의 혁지(弈旨), 유종원(柳宗元)의 서기(序棋), 마융(馬融)의 위기부(圍棋賦), 여공(呂公)의 오기가(悟棋歌) 서종언(徐宗彦)의 사선자도서(四仙子圖序), 유중보(劉仲甫)의 기결(棋訣) 등등은  원전(原典)에서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니 논외로 친다하더라도, 현현집이 출간될 당시 (1347년~1349)에 살고 있었던 우집(虞集), 구양현(歐陽玄), 안천장(晏天章) 등이 써놓은 서문 내용이 문제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들의 서문은 명나라 때 왕창조의 판각본에서 원문의 본래 뜻과 취지에 맞게 거의 정확하게 아주 훌륭하게 번역되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던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元나라)에 나온 현현집(玄玄集)도 일반 대중에게 팔기 위한 영업적인 서적이 분명할진대, 그렇다면 일반 대중의 기호에 맞게 어려운 몽골 문자들을 빼놓고 써놓았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고…….

그러나 우집의 서문 본문 중에는 아래와 같이 황제(문종)가 물어오고 우집이 이에 대해 직접 답을 하는 부분이 있다.

 先皇帝~ 顧語臣集……. 臣謝曰 ~

 선황제(=문종)께서 ~ 신하(臣) 집(虞集)을 돌아보고 말씀하시기를 ……. 이에 신하 집(集)이 사례하며 대답하기를~

당시 통치자인 이민족 원나라의 황제가 직접 물어오는 말에 그 신하가 대답하는 대화의 내용을 일반 대중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한답시고 몽골어가 아닌 순수 한자어만을 사용해가지고 책자(현현집)를 발간했다고 치자. 과연 그 책자를 발간한 자들이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황제를 우습게 대하는 불경죄를 저질렀다가는 저 자신은 물론이요 자신과 관련된 십족(十族)까지도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았던 명(明)나라 초기의 학자 방효유(方孝孺) 꼴처럼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책형(磔刑: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신세는 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일부 식자층 이외엔 몽고족의 한인 억압정책에 의해 글자를 알지 못하는 문맹(文盲)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므로 서문을 몽골어로 써놓았든 한자어로 써놓았든 일반인으로서는 어차피 모르기는 매 한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바둑 모양과 수순들은 글자를 알고 모르는 것과는 상관없을 터이니 별개로 치더라도.

(우집의 서문 내용 등에 어려운 몽골 문자 등이 섞여있어서 후세 사람들이 다시 번역을 했으리라는 또 다른 증거는 왕창조의 판각본에서 우집의 서문 제목이 현현기경서(玄玄棋經序)라고 붙여 놓은 데에서 확연하게 또 드러난다. 우집은 본문에서 단순히 현현집이라고만 언급했지 기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중국에서는 우집이 쓴 서문에 붙어있는 제목 ‘玄玄棋經序’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하여 우집의 호 ‘소암(邵菴)’을 따가지고 ‘邵菴老人序’로 대신 쓰이고 있다.).

그런데 우집의 서문과 더불어 제 1권 문자부에 함께 실려 있는 구양현과 안천장의 서문은 후대에 번역을 거친 문장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격이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집과 구양현은 당대의 대 학자였기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안천장의 서문까지도 호평을 받고 있으니 이게 어인 일인가? 아니 그보다도 더욱 궁금한 것은, 분명히 어려운 몽골문자들이 섞여있었을 이들의 서문을 훌륭한 필치로써 후대 사람들이 크게 감탄할 정도로 어떻게 아주 자연스럽게 번역을 잘 해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일 것이다.

본디 번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끈질긴 정신력과 아울러 원문을 쓴 사람의 능력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요구된다는 말이 있다. 남의 사상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정확히 전달해야만 하는 번역이란 작업이 그만큼 어렵고 까다롭다는 말인데, 혹시나 그 당시에도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나 아니면 원나라 시대 언어를 알맞게 번역하는 활발한 작업이 명(明) 나라때 들어와 일시적이나마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원나라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던 잡극(雜劇)에서 의외의 단초를 찾을 수도 있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