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큰 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 크게 보아서 두가지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내게 닥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었던, 아니 덮어 둘 수 있었던 바둑을 배우게 된 이야기 입니다. 그 때 시작했던 바둑에 얼마나 심취를 했던지 제법 자신 있는 취미 중의 하나가 되었으니 인생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 하고 노는 것 만큼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 줄까?"
터울이 많이 나지 않아 형제처럼 지내는 외삼촌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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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다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니까요 .

혹자는 아름다왔던 추억, 혹자는 두려웠던 추억, 또는 그도 저도 아닌 추억들...

그렇지만 개에 대한 어떤 기억이나 한가지 정도는 다 있겠지요

저는 개에 대한 아름다왔던 추억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추억들 모두 다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이었나 봅니다.
마당이 한 서른평 정도되는 일반 단층집으로 이사를 하고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때 인 것 같습니다. 

그 때 몇가지 채소를 키우는 자그마한 텃밭도 있었고 
귀퉁이에 닭도 몇마리 있는 닭장, 현관문 귀퉁이를 뚫어놓은 개집
얼기설기 만들어진 토끼집도 기억이 납니다.  
아침이면 닭장쪽으로 햇볕이 들고 낮에는 따가운 햇살이 담벼랑을 부비는 작은 집이었습니다. 
 

개라는 동물은 고양이와는 달리 주인을 무척이나 따릅니다.
주인이 가난해서 잘 못먹여도 주인을 보면 항상 반갑게 맞이 합니다.
심지어 괴롭히더라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따릅니다.

마지막 자기가 죽을 때까지도 주인에 대한 신뢰를 갖고
"설마 죽이지야 않겠지!"라는 심정을 갖고 주인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학교 갔다오면 개집을 발로 툭툭차는 것으로 시작해서 한참 인기가 높았던 프로레슬러가 되어 헤드록을 건답시고 머리통을 조르기도 했고, 아우슈비츠의 독개스 얘기를 읽고 실험한답시고는 성냥 알맹이를 까서 병에다 넣고 안에서 불을 붙혀 생기는 유황개스를 강제로 들여 마시게 하여 토하고 뒹굴게 만들어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큰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니 개가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매일 보는 개가 없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도로 건너편의 담벼랑을 보았습니다.
순간 놀라서 숨이 멋는 것 같았습니다. 죽어서 메달려 있었습니다.

부친과 친구분들이 복날이라고 집에 있는 개를 잡았던 것입니다.

이사를 와서 얼마되지 않아 별다른 친구도 없었기에
개와 둘이서 뒷산에 올라가서 이쪽 묏등과 저쪽 묏등을 뛰놀던 기억,

캄캄한 골목을 몇개나 지나서 있던 외갓집에서 놀다가 늦은 밤길을 혼자 오면서 무서움에 떨고 있다보면 어느틈엔가 달려와 앞서서니 뒷서거니 하면서 무서움을 잊게 해주던 일 말처럼 타고 다니다가 녀석이 꾀를 부려 엉덩이를 내리는 바람에 뒷통수를 깬 일이며, 멸치 한마리로 꼬셔 두발로 걸어오게 만들었던 일이며
 

부친이 술에 취해 한길도 넘는 고랑에 빠져 있는 것을 모친을 데리고 가서 모시고 왔던 기억이며 ... 넝마 주의의 갈구리 손에서 구해준 것도 그 녀석의 공이었는 데

요즘같은 애완견도 아니었고, 족보도 없이 귀가 축 늘어진 전형적인 변견으로
누군가의 손에 죽어질 운명이었지만 얼마나 섭섭하고 야속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기르던 강아지의심정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재미있는 놀이감이 없어졌다는 섭섭함으로 그랬겠지만
한동안 부친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말 안듣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한참이 지난뒤 부친이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면 내 손으로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원래는 몽둥이로 두드려 패서 잡아야 고기가 연해지는 데 먼저 죽이고 몽둥이로 두드려 팼다" 

온갖 고초를 겪기 보다는 고통을 적게해서 죽였다는 말씀이었지만
어리디 어린 제가 그말을 이해나 했을 것 같습니까?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은 내내 사그라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삼촌이 가르쳐준 오목으로 시작된 바둑으로
그 아팠던 기억이 점차로 가슴속 깊이 숨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강아지를 봐도 무심한 아이로 변했습니다.
속으로는 가서 만져 보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고는 싶었지만...

여지껏 개를 기르지 않은 이유도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가,  정이 듬뿍 든 개가 먼저 죽을 때 받을 스트레스를 애들이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지요

"날도 더운 데 탕이라도 한그릇 하자"라는 친구들과 탕 집에는 같이 가도 삼계탕으로 대신하는 이유가 비록 몇달 같이 있지는 않았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어린 영혼의 친구였던 그 개 때문이라는 사실, 내가 그들보다 바둑이 조금 나은 이유가 그 개를 잊기위해 바둑에 일찍 심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

내가 힘들 때면 가끔 한번씩 가슴속에서 뛰어나와 묏등에서 뛰어놀던 기억으로
내 영혼을 정화해주는 그 추억 때문인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