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영화 한편을 보고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소설을 기초로 한 유명한 영화이지만 처음 영화를 볼 때 재난영화의 한 종류인 줄로만 알았다.

배우나 감독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주연배우가 유명한지, 조연으로 나오는 배우가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제목 때문인 데 월척이 낚였다

소설을 극찬하는 사람들은 바이블에 버금갈 정도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하는 소설이었지만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뛰어 댕기는 무식한 산꾼이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중에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턱도 아닌 이야기라는 것이 아니라 오분 십분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로 영화의 내용이 깊어지고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가볍게 재난 영화 한편을 볼려고 하다가 철학서적을 읽는 기분이 들어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는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예전 도올선생은 혹평을 했지만 내게는 감동적이었던 일본영화 '철도원'에서 본 삶의 이유보다 한발자욱 더 나아간 것 처럼 느껴졌다. 앞으로의 길 끝에 절망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그저 나아 가야만 된다는 존재의 숙명을 말하는 것 같았다. 

감상을 쓰기전 다른이들의 생각을 훔치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평론이나 감상이 서로 다 다른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한편의 얘기가 이렇게 다양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는 것이 원작 소설을 읽어 보게 만들었다. 

몇 페이지를 읽어 가다 보니 중간 중간 나타나는 구절들이 읽는 이의 기억의 창고에 채워진 자물쇄를 여는 열쇄의 기능을 가진 시의 특성을 가진 것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린 산문시의 느낌이랄까?  

맨 마지막을 마무리 하는 아주 서정적인 문장 "한 때 산의 냇물에 사는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 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 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러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같은 문장이 있었다.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송어가 사는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 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 거렸다"   

마지막에 대한 암시라던가, 한가닥 희망이라는 것은 보여 주지는 않지만 인간이라는 종을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눈을 통해 개인적으로 살아가며 늘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내게 작가가 주는 메세지는 그 어떤 메세지보다 더 희망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아래는 컬러 영화이지만 흑백, 종말의 느낌이 나는 영화의 몇 장면들

쇄약해진 몸으로 남쪽으로 가던 어느날

"더 이상 너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아 ... 혼자서 남쪽으로 가야해 ..." 

(영화는 이 장면 다음에 아이와 아버지를 따르는 가족? 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으로 끝이난다)

어떻게 보면 슬픈, 또 어떻게 보면 잔혹한 현실, 또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특별한 존재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내려 놓음으로 인간이면 끊임없이 찾아야 되는 삶의 의미 내지는 삶의 부담감으로 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희망의 메세지와 인간 존재의 의미가 다른 존재의 의미와 다름이 없다는 절망의 메세지를 동시에 주는 영화

영화 포스트에 인류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물론 그 말 보다 더 나은 말도 찾기가 힘들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