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부터 9세까지 2년간 하루 3시간씩, 아버지와 아들은 사활문제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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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③
[기획/특집] 정용진  2025-05-04 오전 00:22   [프린트]
▲ 위대한 아들 뒤에는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


손흥민 선수가 그러하듯 신진서 九단 또한 아버지의 존재를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신진서를 만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가르치고(敎) 길렀을까(育).

이 글은 [월간바둑]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에 걸쳐 실은 '신진서 九단의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를 5월 황금연휴를 맞아 다시 소개하는 것입니다. 본문 중 언급하는 기록과 일시는 원고 게재 당시 기준 그대로 전재했음을 밝힙니다. 신진서 九단의 어릴 적 자료사진은 신상용 씨로부터 제공받은 것입니다. 매달 25일에 발행하는 [월간바둑]에도 관심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註


○● ‘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① 아들에게 부담감을 내려놓고 즐기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 1편 보기 클릭
○● ‘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② 아버지는 아들의 바둑을 보면 안다! ☜ 2편 보기 클릭



- 그러면 그때 이미 이런 얘기들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부산에 바둑 신동이 한명 있다, 물건이 하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때고, 그러면 서울의 유명 바둑도장이나 뭐 이런 데 얼른 보내서 다듬어야 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너무 어려서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겠으나 그런 쪽에서 제안도 있었을 것 같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듯이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요?

“항상 그렇게 생각했죠. 이거 어차피 빨리 보내야 되는데…. (- 근데 그때 안 보내시고 일단 계속 가르치셨잖아요?) 장수영 사범님이 진서를 워낙 잘 봐주셔서 초등 1학년 때부터 보내라 그러셨고 또 기린아바둑도장 김항 원장님은 실행에 옮기기까지 하셔서 한번 보낼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어요. 그런데 또 한편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객지로 보내는 건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 갈등했지요.

옛날에 조치훈 九단이 여섯 살인가 일본에 건너가 겪은 경험담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고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도장 분위기, 그런 것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바둑이 이제는 사양산업이라는데 과연 올인해도 괜찮나, 이런 것도 아직까지는 풀리지 않은 숙제였고. 무엇보다 바둑을, 승부의 길로 나선다 했을 때 또 승부사로서 심장 이게 강하냐? 이런 부분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지요. 맹수들이 부모에게서 배우게 되는 사냥법이 있잖습니까. 인성, 대인관계 이런 것 또한 실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걸 좀 더 데리고 있으면서 가늠을,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바둑 둘 때 기합을 넣어서 딱 때리고…. 긴박한 순간에서도 사석 3개를 동시에 들어내고 이런 모습을 보니까 이 부분은 됐다. 손이 떨리면 사실 하나도 들어내기 힘들거든요. 이런 부분 심장은 됐다 싶어 걱정이 없었고, 그 다음은 인터뷰나 대인관계 이런 부분에서 부모품에서 떨어져서 어떨 것이냐,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느냐 이런 걸 헤아려보니까 아무래도 여섯 살 때는 좀 이르다 싶더군요. 여섯 살 때인가 인터뷰 하라니까 뒤로 질질 빼더만요. 형들과 게임하러 간다고 울고불고 그래서 ‘야, 너 인터뷰는 안 되겠다. 아빠를 닮아서 그렇게 잘할 리가 없다’ 이랬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 신진서의 어릴 적 귀여운 모습.

- 그렇지만 워낙 신동이다 보니까 서울에 빨리 보내서 키워야 한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도 일찌감치 제도권에 넣어 교육하지 않고 손수 가르치면서 ‘독고다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신진서 九단도 입단할 때까지 홈스쿨링, 독학을 한 거 아닙니까?

“다행히 진서 시대는 인터넷이라는 게 있어서 여러 고수들한테 배울 수 있었죠. 운이 좋았죠. 그때 딱 인터넷이 활성화되니까. 물론 인터넷바둑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게 이전 세대하고 다른 환경, 천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대국만 하면 실전이 약하니까 진서가 어느 정도 실력 갖춘 다음에 온 사방 다니면서 실전경험을 쌓아주었죠. 예전 이창호 국수 할아버지께서 손자 손을 잡고 전국의 고수를 찾아 젖동냥하듯이 실전 공부를 시킨 이상으로 했어요. 아마추어 바둑대회 위주로 다니면서….”

- 어린이나 학생대회, 성인대회도 나가고 그랬을 테죠? 그런데 유창혁, 박영훈처럼 초등시절 학초배(성인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물론 애들 대회는 어느 정도 섞어 나가기는 했습니다만 몇 번 우승하고 난 다음에는 애들 대회에 계속 나가기는 좀 그렇잖아요. (2010년 초등4학년 때 10회 대한생명배에서 열세 살의 초등6년생 오유진 등을 꺾으며 우승했다. 오유진은 여자 연구생 1조의 실력파였다. 당시 꼬마 신진서는 정현산배, 조남철 국수배, 이창호배, 전국체전 어린이부까지 모두 휩쓸며 5관왕에 오른 바 있다.)

전국규모 성인 아마대회에 한두 번 나갔다가 조민수 씨한테 반집을 이기고 이런 거는 있어도 우승을 한 적은 없었고, 대신에 그때 방향을 잘 잡은 게 아마바둑사랑회 리그에 참여해 실전 위주로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역시 한국기원 연구생 틀에 들어간 것이 지금 평가하라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서가 가장 발전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한 과정이었어요. 센 연구생 애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전국을 전전하며 대회에 다닐 필요가 없었지요.”

▲ 2010년 초등4년 때 10회 대한생명배에서 초등6년 연구생 누나 오유진(현 9단)을 이기고 우승했다.

▲ 이때 신진서는 이미 '꼬마무적'으로 군림했다.

▲ 우승상금이 무려….

부산 집과 학원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하다

- 그럼 한국기원 연구생에 들어가면서 서울로 가족이 이주한 건가요?

“아니요. 주말에 열리는 대회는 물론 아마바둑사랑회에 가서 실전연습을 하는 내내 계속 데리고 부산-서울을 왔다갔다 했어요. 2011년 여름까지 한국기원 부산지역 연구생으로 있다가 9월에 서울 연구생 선발전에 출전해 공동 1위로 들어갔고 다음해 2월, 바둑부가 있는 충암초등 6학년생으로 전학하기까지, 그러니까 서울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서도 6개 월여 주말 토요일에 상경해 하루 묵고 일요일에 내려가고 그런 생활을 한 거죠.

서울로 이주한 것은 입단하기 5개월 전이었어요. 부산집 팔아봐야 서울에 전세도 못 얻으니까 바둑학원도 정리를 해야 되고, 또 진서 할머니가 내 가면 운다 막 이러셔서 한두 달 설득하다 보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죠. 충암초 6학년생으로 전학한 그해 7월 중순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됐어요. 입단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장이라는 데에 몸을 담은 게 충암도장이었고, 그게 한 반 년도 안 된 것 같은데….”

- 맹모삼천(孟母三遷)인데, 완전 올인을 하신 거네요. 부산집까지 다 파시고…. 바둑 신동 아들 조훈현의 앞날을 위해 목포에서 운영하던 지물포를 싹 정리하고 줄줄이 딸린 식솔을 이끌고서 성북구 미아리고개 꼭대기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판잣집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그 옛날의 조희아 씨가 떠오릅니다. 제가 신진서 九단의 책을 보니까 아버지는 자기를 데리고 다녀야 되니까 엄마가 하루 10시간씩 돈을 번 적도 있다며 짠한 마음을 밝혀 놓기도 했던데, 먹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오해입니다. 그건 진서가 어린 아들의 눈으로 그렇게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그렇진 않았고요. 진서엄마가 일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부산에서 정리한 걸로 돈을 조금 비축해 놨기 때문에 그 정도로 궁하진 않았습니다. 옛날에 바둑학원이 100명 이상 되다가 내가 진서한테 올인을 하니까 아무래도 애들이 조금조금 줄어들잖아요. 50명으로까지 줄어드니까 이제 기사 한 사람 두고 내 혼자 다 해도 될 정도가 되다보니 그때 부산에서도 진서엄마가 조금 일은 했지만은….

지금도 애 엄마는 그런 말을 해요. 그때는 진서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일이지 원래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일을 한다고 그러면 자기는 서글퍼서 못했을 것이다. 한번도 고생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때가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기쁨을 맞는 순간이다,라고요. (그래도 남편의 처지에서 보기에는) 원래 했건 안했건 간에 진서엄마가 애를 뒷바라지하던 그 시기에 나섰다는 것, 그 자체가 나는 크게 보이거든. 진서도 아마 그런 마음에 한 말일 겁니다.

게다가 돈이 떨어질 때쯤 LS산전 구자홍 회장님께서 장학금을 한 3년 또 주셔서 엄청 도움이 됐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이셨죠. 회장님 돌아가셨을 때 진서가 조문도 가고 했잖아요. 잊지 못할 겁니다.

애초 충암도장에서도 장학금을 준다는 걸 마다했어요. 무척 감사한 제안이었으나 공짜로 배우면 제대로 공부 안 된다, 받을 거 다 받고 하셔라 정중히 거절했지요. 그 뒤에 프로가 되면 충암도장은 도장비를 안 내도 되는 그런 게 있잖아요. 왜냐하면 진서가 입단한 뒤에도 계속 충암도장에 나가면서 실력을 키워야 되니까 엄청 혜택을 많이 입은 거죠. 응암동에 거주하게 되다보니 마포에 자리한 장수영도장에 입문하진 못했지만 거기에서도 실전을 쌓는 등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입단 직전까지 독학이었다지만 바둑공부란 게 어디 그런가요? 세상에 저 홀로 크는 나무는 없습니다.”

2022-23시즌, 트레블 우승을 달성하며 축구사에 남을 역사를 쓴 맨체스터시티 FC를 다룬 다큐멘터리-<투게더: 트레블 위너>에 나오는 한 대목이 절로 떠오른다.

“위대한 업적은 혼자서 절대 이룰 수 없다. 만약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있다면 그것은 영광스럽지 않다.”

▲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12년 제1회 영재입단대회에서 12전 전승을 거두며 영재입단 1호로 프로관문에 들어섰다. 만 12세 4개월의 나이였다. 왼쪽은 2위로 함께 입단한 신민준 九단. '양신' 등장의 서곡이었다.

▲ 입단 무렵의 신진서.

- 충암도장에서 가르친 한종진 九단은 “바둑에서 지면 화장실에서 한참 나오지 않던 아이”로 신진서 九단을 기억합니다. 영재입단을 하기 한해 전 2011년 6월 입단대회에서는 2차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그날 응암동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매일 한 마리씩 먹던 닭을 반 마리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마리를 다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라고 책에 썼더라고요. 모든 시대, 모든 분야에서 일인자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거 같습니다.

“자기가 질 수 없는 사람한테 졌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이길 수 없는 사람한테 지면 그렇게 ‘꼬장’ 안 부려요. 아무한테나 져서 울고 이건 아니고…."

- 청년이 된 지금에야 울진 않겠으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날이면 잠을 잘 못 자겠네요. 1975년 열여덟 살의 조치훈이 일본기원선수권전에서 사카다 에이오 九단에게 도전했다가 2연승 후 3연패로 좌절하던 날 자기가 사는 아파트까지 분루를 삼키며 걸어서 귀가했다는 일화처럼요.

“진서가 잠은 잘 잡니다. 옛날부터 잠은 잘 잤고. 그런 중압감을 자기가 돌파하는 기본적인 생각은 있죠. 또 음악을 듣는다거나 자기 사무실(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마련한 개인연구실)도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자기조절을 하더군요.”

대국에 나서는 아들에게 해주는 말

- 대국하러 나가는 날 아침에 아들에게 특별히 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까? 집을 나설 때 주로 어떤 식으로 배웅하는지요?

“대국이 있는 날 아침에 나가는 아들한테 특별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평상시에 코치를 좀 하죠. 주로 카톡으로 하는 편이에요. 말로 하면 그게 오래 남지 않으니까…. 예를 들어서 부담을 좀 떨어뜨려라든지…, 또 중국에 가 있으면 아침에 밥은 잘 먹었냐, 오늘 네 스타일대로 움츠러들지 말고 니 자신만의 대국을 두기 바란다. 건투를 빈다 그 정도….”

2023년 12월 4일 25회 농심신라면배 2차전 마지막 대국에선 한국의 유일한 생존자 신진서 九단이 출전했는데 상대는 중국의 셰얼하오 九단이었다. 상대전적에서 7승 2패로 앞서 있기는 했지만 두 판의 패점이 근래 연속 당한 것이어서 아버지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들에게 보낸 카톡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과거의 전적일 뿐. 최정상급 기사들 사이의 격차는 종이 한장 차. 많이 이겼다는 것은 승률 확률상 질 때도 됐다는 것. 더군다나 이때까지 신진서 九단은 22회 대회 이래 농심신라면배에서 10연승을 달려왔다. 아버지는 너무 자주, 많이 이겨도 피로감이 있어서 승률이 떨어지니까 그거 조심해라고 당부했다.

또 구쯔하오 九단과 지난해(2024년) 8월 2회 란커배 결승3번기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그 1년 전 6월 결승에서 어이없이 진 걸 상기시키며 "그런 식으로 지게 되면 이게 상처가 마음에 상처가 되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상처가 되지 않으려면 좀 신중해라"고 카톡에 남겼다.

애스턴 빌라 원정경기를 하려면 토트넘은 버밍엄까지 올라가야 한다. (중략) 버밍엄으로 가는 흥민이에게 평정심을 갖도록 이번에도 “우리 욕심 버리고 마음 내려놓자”는 말로 다독였다.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싶어 안달하는 흥민이 마음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것 말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흥민이에게 짧게 핵심만 전달하려 한다. 미주알고주알 훈계하거나 훈수 두지 않는다. 프로에서 뛰는 햇수가 차츰 쌓이면서 점점 더 내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즌 도중에 흥민이는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를 통제한다. 먹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철저히 차단하고 오로지 축구 생각만 한다. 그런 이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건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 손웅정 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중.


▲ "진서가 다행히 재능을 잘 발휘해 괜찮게 됐으니까 지금 부자관계가 이렇게 남아있는 거지 그러지 못했다면 다들 지금처럼 봐주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는 내려놓기를 잘해야 될 것 같아요.”

신상용 씨 또한 아들 신진서의 그림자 같았다. 자기 전에는 거의 1시간을 떨어져 있지 않았으니까. 자식의 성공 이면에는 본인의 의지 플러스 부모의 지도가 있다. 아무리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라도 앞에서 북돋우고 뒷바라지한 존재가 부재했다면 완주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손웅정 씨는 끊임없이 애들한테 니가 행복하면 된다, 니 선택이고 니가 행복하면 된다,라는 얘기를 끊임없이 했다지만 신상용 씨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원론적으로야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가르치고 키울 때는, 굉장히, 뭐라고 그럴까…, 딱 그 선에 젖어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못해요. 손흥민이 같은 업적을 이룬 대선수들이 있고 그러한 선수를 봤기 때문에 아빠가 아이에게 그 정도 할 것을 (걔가 아직 그렇게 될 줄도 모르는데)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애한테 부담이거든요. 다행히 손흥민 선수 같은 경우에는 그런 DNA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성장해서 좋았는데, 결과가…. 진서도 만약에 따라오지 못하고 아빠 싫어 이래 했다면 그게 애한테 공부가 되겠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한 70~80% 달성을 했기 때문에, 따라왔으니까 이게 좋은 이야기로 남아있는 거지 그게 몇 사람이 되겠어요?

진서에게 항상 말했어요. 아빠가 이렇게 가르쳤는데 니가 성공하지 못하면 니하고 내하고는 완전히 적이고, 니가 성공하면 내가 그래도 니한테 보탬을 준 사람으로 기억된다. 만약에 손흥민이가 못했으면 그 아빠는 아들에게 가슴 속 원망을 사는 원수가 되지 않았을까?

그게 성공과 실패의 차이거든요. 진서가 다행히 재능을 잘 발휘해 괜찮게 됐으니까 지금 부자관계가 이렇게 남아있는 거지 그러지 못했다면 다들 지금처럼 봐주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는 내려놓기를 잘해야 될 것 같아요.”

운동장 땡볕에서 훈련할 때는 흥민이는 나무그늘 아래 세워놓고 나는 반대쪽 땡볕 아래에 서서 공을 패스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손가락질했다. 엄하게 혼낼 때는 “저거 아비도 아니다”라며 욕을 했고, 또 한편으론 “저렇게 혼자 감싸고 돌면서 무슨 선수를 만들겠냐”며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고 품에 끼고 돈다고 흉을 봤다. 집도 가난한데 애들이랑 운동장에서 공이나 차고 있다며 한심한 미친놈 소리는 늘 따라붙었다. (중략)
이제는 아들을 위해 헌신한다고 추켜세우며 그 세월 힘들지 않았느냐 묻는다. 나에 대해 누가 뭐라 하든 마음에 담아두고 신경 쓸 일도 아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손흥민이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볼보이라고. 내가 아들과 축구를 한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라고. - 손웅정 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 한다」중.


아들을 세계바둑 일인자로 키운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의 신진서를 좀 더 알아볼 ‘거울’과 같기에 가급적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다음 편에서는 명색 ‘신공지능’이기에, AI바둑에 대한 신진서 九단의 생각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더해 보겠다. [4편에 계속]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바람별★ |  2025-05-06 오후 5:03:00  [동감0]    
인구 10억이 넘는 중국보다 항상 한국에 천재 기사가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치즈 |  2025-05-04 오후 4:13:00  [동감3]    
월간바둑에서보고 또 보는데도 새롭게 느껴지네요. 손흥민과 신진서는 분야가 다르지만 성장기가 비슷해 보이네요. 상당한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와 열정적인 아빠의 교육이 더해져 최고의 선수가 된 지금의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두 선수 모두 끊임없는 성장과 지속적인 최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晴天亂流 |  2025-05-04 오전 10:23:00  [동감3]    
신공지능이란 세계 1인자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겠죠. 수많은 담금질을 거쳐 검이 만들어지듯. 노력과 열정에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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