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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겨울에 본 노사초 생가
포토/ 겨울에 본 노사초 생가
[노사초배] 김수광  2021-12-05 오후 05:47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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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초 생가.


일제강점기 말기 전설적인 천재국수였던 사초 노석영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고 30세가 지나 바둑을 접했다. 당대 최고수였던 백남규 선생에게 6점접바둑으로 배우기 시작해 한나라의 최고수 즉 '국수'가 됐다. 천재성을 미뤄볼 때, 유년시절부터 배웠다면 더 굉장한 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패싸움과 절묘한 바꿔치기를 즐겨 ‘노(盧)패’ 또는 ‘노상패’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식 바둑인 순장바둑으로 실력이 다져진 사초 선생이었지만 1944년엔 일본 여자기사 혼다 가즈코(本田壽子) 초단과 일본식 바둑으로 겨뤄 만방으로 이긴 바 있다.

함양군은 노사초의 생가가 있는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에 노사초 사적비를 건립한 뒤‘노사초배 전국바둑대회’를 해마다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로 14기를 맞았다. 코로나19 탓에 연기를 거듭한 탓에 노사초배가 여름이 아닌 겨울에 열리고 있어 선생이 살던 마을의 겨울풍경을 볼 수 있었다.

▲ 노사초 선생이 살던 개평마을은 함양의 대표적인 양반마을로, 정여창 고택 등 100년이 넘게 이어온 크고 작은 고택들이 모여 있다.

▲ 노사초 선생의 생가.
선생은 성품이 온화하고 검소하였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재산을 내주었다 한다.

이 집은 선생의 증조부 감모재 노광두(1771~1859) 공이 만년에 낙향하여 기거한 곳으로서 공은 벼슬이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매우 청렴하였다. 특히 이 지방에 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임금께 조세를 감면해 주도록 상소하여 탕감을 받게 된 인근 주민들이 그 고마움으로 재물을 갖다 주었으나 받지 않아 사랑채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 마루 한켠에는 이처럼 바둑판과 바둑통이 놓여 있었다.




▲ 고양이들이 장독대 근처에서 게으르게 울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산 속 짧은 계단을 오르면~

▲ 노사초 선생의 사적비가 나타난다.


▲ 사적비는 넓고 멀게 마을을 바라다 본다.

▲ 앙상한 가지에 떵그러니 남은 모과가 겨울 하늘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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