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후 15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입에 풀칠을 해야 하것기에 오퍼를 한답시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 때 알게 된 분이 있었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시다 공장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집요한 설득에 그만 넘어가서 친구 회사에 전무로 취직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나 같은 모난 성격도 잘 받아주고 어울러 주면서 벌써 10년 가까이 우정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분이 3년전 친구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중국으로 가서 공장을 차리고 독립을 하였는데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얼마전 전부 정리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조그맣게 자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고민으로 얼굴이 핼쓱해 보였습니다. 그 힘든 심정이야 말 하지 않아도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런 준비없이 나와서 사회 경험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와이프의 얼굴을 뒤로하고 몇달간을 무척이나 힘들게 지냈던 경험이 있는지라 그 심정 헤아리고도 남았습니다.

"사장님, 힘내셔요"

"힘 내고 있잖아!"

"국내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 사장들이 돈은 많이 벌지는 몰라도 우리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는 없을 겁니다"

"시간만 많으면 뭐해! 돈도 많이 만지면서 활개치고 살아야지!"

"그 까짓거, 벌면 죽어서도 가지고 간답니까? 적당히 멀고 살 정도 벌고 짧은 인생 자유롭게, 하고 싶은거 남의 눈치 안보고, 사는 것도 값어치를 따지면 엄청날겁니다. 대기업 회장조차도 우리처럼 하고 싶은거 맘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지 못한다니까요"

제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었는지 그분 말이 없더군요...

그 날 점심을 같이 먹고 내려오는데  병원이 있는 3층에서 엘레베이터가 서더니  누가 탓습니다. 50 중후반 아주머니 한분과 30대 초의 젊은 남자였습니다. 남자는 휠체어에 타고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픈 모양이다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안녕하셔요"

저에게 그 젊은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지?? 처음보는 사람인데?)

그러더니 제 옆에 있던 그 분에게도 똑같이 인사를 하고 또 함께 있던 일행 한명에게도 목례를 하면서 같은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세사람은 1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속의 엘레베이터에서 갑자기 누구라 할 것 없이 무거운 침묵이 내리면서 적막감이 물씬 흘렀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었는지 목에는 호수 구멍을 냈던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고 눈동자는 여느 같은 나이 때의 젊은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큰 사고의 휴우증으로 지적능력까지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그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내리고 난 후 저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건강하게 먹고 사는 것만도 행복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