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한마디와 도마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한마디

문학게시판을 둘러보다가 육묘법문님의 <타락의 과정>이란 제하의 글을 읽었다. 아마도 요새 노자의 도덕경에 빠지신 듯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도폐유인의 지혜출유대위 육친불화유효자 국가혼란유충신

大道廢有仁義 智慧出有大僞 六親不和有孝慈 國家混亂有忠臣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서고, 지혜를 나타내니 커다란 거짓이 있게 되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와 자애가 있게 되었으며, 나라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된다.

▲노자상

이 글에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대도무인 대지무위 대화무친 대평무충?

大道無仁 大智無僞 大和無親 大平無忠?

큰 도에는 인(仁)이 없고, 큰 지혜에는 거짓이 없으며, 널리 화합하는 것에는 친함이 없고, 크게 태평하면 충이 없다.

이렇게 댓글을 다는 중 문득 도마복음서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14 Jesus said to them, "If you fast, you will bring sin upon yourselves, and if you pray, you will be condemned, and if you give to charity, you will harm your spirits.

예수께서 가라사대 만약 너희가 금식한다면 너희 자신에게 죄를 불러 올 것이요,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定罪) 받을 것이요, 또 너희가 자비를 베푼다면 너희 영혼에 해를 끼칠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기존의 공관복음서 즉 마태, 누가, 마가복음서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오히려 요한복음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경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죄는 본래 그 성품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나니 마음이 없어지면 죄 또한 없어지리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기분이다. 아마도 인간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각과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리라.

오병이어(五餠二魚)와 관련된 궁금증

도마복음서에는 예수가 행한 이적(異蹟) 등이 안 나온다. 거의가 문답식의 대화체로 산상수훈과 같은 교훈적인 내용이다.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써진 것 같다. 나야 어차피 기독교적인 신앙이 없는 사람이므로 도마복음서가 위경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다만 성경을 약간 읽었고 거기에 궁금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 중 하나가 오병이어의 이적이다.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하니까 대강 칠팔천 명은 족히 넘는 군중이 모였을 것인데, 떡(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하늘에 축사를 하고 나누어 주었는데,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을 거두게 하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는 것이 이 기적의 골자다.

여기서 첫째는 빵이야 그렇다고 쳐도 물고기는 생선인지 구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이 구운 것이라면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생선이었다면 날로 먹기도 그렇고 그걸 구워먹으려고 불을 피웠다면 아마 생난리가 났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많은 군중이 모였는데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 것인가이다. 마이크도 없던 시절인데 예수가 아무리 목청이 좋아도 바다나 호수가 보이는 산에서 큰소리를 친들 몇 명이나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 예수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을까?

또 산상수훈이라든가 여타 기록된 그의 어록을 보면 웅변대회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군대에서 호령하듯 고함쳐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사람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영적 언어들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를 추종하고 따라 다닌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예수를 실패한 열심당원으로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가 갈파한 내용을 보건대는 인류의 위대한 영적 스승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관복음서의 저자 특히 마가의 경우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였던가? 예수를 영적 스승으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으로는 마가복음보다는 도마복음서가 훨씬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니면 이렇게 조용히 영적 자각을 불러일으키게 말했을까?

차축시대 그리고 이분법과 중용(또는 중도)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6-4세기에 성인(聖人)이라 일컬어지는 자, 철학자, 사상가가 동서를 막론하고 동시에 다수가 출현했다. 서양에서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동양에서는 석가를 비롯하여 공자, 맹자, 장자 등이 나타났다. 이때에 이르러 철학과 사상, 인식의 기본 틀이 확립되었다고 보고 야스퍼스는 동서양의 근본적 사상이 탄생한 이 시대를 차축시대(Axial Age)라고 명명했다.

그 시대 이전에 인간의 정신은 신화적 정신이었으나, 이 차축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신화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들어선 이후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이나 내용에 있어서 신화적 시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다는 것인가? 용커(Nicholas J. Yonker)는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의 차축시대적 특성을 열거했다.

① 다신(多神)과 다존재(多存在)들을 묶는 하나의 존재의 힘은 무엇인가?

② 사물들에 편만(遍滿)해 있는 이 하나의 존재의 성격은 무엇인가?

③ 이 사물들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④ 인간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무엇인가?

⑤ 무엇이 정의(定義)인가?

⑥ 내면적 자아(Self)의 성격은 무엇인가?

⑦ 무엇이 자아의 운명인가?

또한 야스퍼스는 그리스에서는 자연의 근원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철학이 발달한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세상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동서양의 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만물의 공통요소를 찾는 그리스철학에서 시작한 서양철학은 인식론, 존재론 같은 순수철학을 낳았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출발한 동양철학은 치세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갖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본 모양이다.

인간 사유에 있어서 단(單, 一, One)과 다(多, Many)의 관계는 영원한 숙제인가 보다. 플라톤의 경우 잡다하게 많은 사물의 세계(Many)와 이것들의 보편적 하나(One)를 대립시켜 생각했다. 이것으로 그는 서양철학의 즉 이분법적 사유체계(철학)의 비조로 꼽히는 모양이다.

▲그리스에서의 철학 강의

그러나 이천년 넘게 이어져 온 서양철학은 결국 플라톤 철학의 주(註, footnote)에 불과하다고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지적했다. 즉, 單과 多의 관계에 대한 역사라는 것이고, 서양 철학자들이 발견한 관계라는 것은 양자 가운데 선택(either/or)을 하든지 변증법적 종합(both/and)을 시키든지 두 가지 방법뿐이었다. 전자는 키에르케골이 대표하고 후자는 헤겔이 대표한단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달랐다. 이미 차축시대에 벌써 單과 多의 관계뿐만 아니라 同(Same)과 中(Middle)까지도 정의한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를,  공자나 노자 같은 이는 중용(中庸)의 개념과 가치를 일찍이 설파했다. 사서삼경 가운데 중용이 하나의 독립된 책으로 편찬되었다는 것은 동양적 가치에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가를 입증하는 것이리라.

반면 서양에서는 상대성이론의 발견과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현대에 와서야 中의 개념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등 현대물리학을 응용한 과정철학에 이르러 비로소 이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다.

One become many and many become one.

불교에 있어서도 공과 색 또는 有와 無의 대칭적, 이분법적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기원후 1~2세기에 나타난 용수보살에 의해 진제(眞諦, 空, 無)와 속제(俗諦, 色, 有)의 대립이 부정되면서 그 가운데(中, Middle)를 진리의 자리인 공(空)또는 무(無)로 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세운 학파를 중관종(中觀宗)이라 한다. 이를 알기 쉽게 도식화 해본다.

제 1 명제        제 2 명제

--------   --------------

俗諦 - 有

                俗諦 - 有無

眞諦 - 無

                眞諦 - 非有非無

========================

▲어린아이로부터 흙을 공양받는 석가. 그의 발 밑을 보자.

우리는 흔히 대칭적 개념 예컨대 선과 악, 미와 추, 사랑과 미움 등 이분법적 사고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분법적 사고는 무오류의 절대주의와 귀속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립을 불러일으키면서 조화보다는 투쟁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노자의 한마디나 예수의 한마디에서 나는 대립 개념의 부정 즉 이분법적 사고의 파괴를 읽었다. 이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중용을 뛰어 넘는 그 어떤

용수의 중관사상이 구마라집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었는데, 이미 생활 속에서 중용의 가치를 잘 알고 실천하는 데에 익숙한 중국인들에게도 불교에서 말하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中의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중관종은 초기에 그 학설을 펼치는 데에 매우 많은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이때 혜성과 같은 이가 중국 장안에 등장하니 그는 고구려의 승랑(僧郞)이란 인물이다. 승랑은 장수왕과 문자왕 때 스님이라고 하는데 그 양반이 주창한 것이 이제합명설(二諦合明說)이란다. 핵심은 제 2 명제를 다시 부정하는 것이다.

제 1 명제        제 2 명제                제 3 명제

--------   --------------  ------------------------

俗諦 - 有

                俗諦 - 有無

眞諦 - 無                           俗諦 - 有無    非有非無

                眞諦 - 非有非無

                                        眞諦 - 非有無  非非有非非無

=================================================

제1명이 有無의 대칭일 때 제2명에서 非有非無라 한 것은 有無의 가운데(中)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中에도 머무르지 않고 그것마저 파괴시켜 버린(非中)이 非非有非非無이다. 즉 非中=非(非有非無)이라는 등식의 성립이다. 정리하자면 사실의 대칭→사실 속에 있는 대칭의 파괴→파괴하는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참선 : 참나를 찾아가는 길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그 어떤(不定, About)>이라는 모호한 것만 남게 된다. 얼핏 말장난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바가 없는 <不定>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렵게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념이고,  언어생활을 할 때 아주 흔하게 경험한다. 가령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에 <한 삼사십 분>, 얼마나 머냐에 <한 시오리>, 얼마나 되느냐에 <한 너대여섯 근> 이렇게 즐겨 말한다.

미국에서 어느 곳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었을 때 30분 정도 걸린다고 답을 얻게 되면 ±5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한 두어 시간>이라고 표현되었다면 아마 가는 사람에 따라서는 빨리 재촉하여 가면 두 시간 이내에, 가면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쉬엄쉬엄 가면 세 시간도 걸릴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같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不定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