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을까?

마태복음 5장 1절에서부터 7장 29절까지 예수의 저 유명한 산상교훈이 기록된 바 그 첫마디는 5장 2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로 시작한다. 어릴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도통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그때까지 내가 배워온 바와 너무나도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배웠다. 비록 집안이 가난하다고 해서 너의 마음마저 가난해서는 안 된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다 하여도 마음만은 부자가 되어야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이해될 턱이 없었다.

나중에 우연치 않게 다른 번역본의 성경을 읽으면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그것을 말하기 전에 이 구절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네이버 지식 검색 결과 몇 가지를 소개한다(원작자 이름은 생략).

① 마음이 가난-이라는 말은 마음이 낮아져있는(겸손한)-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거만한 이는 자기를 열심히 높이고 꾸미려는 자입니다.

②정작 필요한 것들은 하늘로 오는 그것(믿음,소망,사랑)이지만,그것이 내안에 없음을 깨닫는 것.....즉 우리의 한계와 본질을 깨닫는 그것이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③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입니다..마음이 깨끗한 자가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④심령이 가난한 자란 총체적인 가난한 자와 상통합니다.

⑤즉 마음이 가난한 자란 것은 마음에 돈, 명예, 권력, 집, 차, 여자, 옷, 먹을 것 등등에 대한 소유욕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대충 정리해보면 겸손함, 청결함, 소유욕이 없음 등이 되는 듯하다. 같은 구절을 놓고 제 각기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사실 나중에 이것이구나 하고 무릎을 쳤던 내용은 위의 열거내용 중 ②번과 유사하다. 가난한 사람은 청빈하고 고매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닐 것이다. 늘 주리는 자이니 하루 일용할 양식을 찾아 헤매게 되고 무언가를 얻으려고 부지런히 노력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굶어죽을 테니까. 따라서 어느 번역본에 「영적 빈곤을 자각하게 된 사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아하 이것이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겸손이나 청결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최소한 소유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즉 영적인 풍요에 대한 소망이 가득한 자 혹은 간절히 구하는 - 간구하는 자임에는 틀림없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것은 아닐지라도 정신적 소유욕에 대해서는 강렬하게 원하는 자일 것이다.

번역 유감

이렇게 어의가 분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곡해하게 되는 그 근본원인은 번역에 있다. 히브리 혹은 그리스(헬라) 원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나 영어번역본을 원전으로 해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오해할 소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전산학을 전공한 초기 세대였던 탓에 공부할 때 우리말 번역본이 없어서 거의 원서로 공부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관련 서적이 거의 영어 원전이었다. 전산실장께서는 일어에 능통하여 주로 일본서적을 참조하였다. 나에게는 영어로 된 제품설명서를 내주면서 해석해 오라고 하였다.

어느 날인가 「와프로」가 뭐냐고 물었다. 와프로? 듣다가도 처음 듣는 용어였다. 여기저기 온갖 책을 다 뒤적였고, 물어볼 만한 데는 다 알아봤으나 신통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때 우연히 워드프로세서를 일본식으로 축약하여 와프로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흔하게 쓰는 용어일 듯한데 로그인, 로그온, 로그오프, 로깅 등 Log라는 용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통나무라고 나온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글의 앞뒤 문맥상 통나무를 가지고는 어불성설이었다. 하다못해 IBM에 문의도 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었다. 오히려 남들은 아무 의문도 없이 잘도 쓰는데 그런 걸 질문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하였다. 이 용어에 대해서는 지금도 명확하게 답을 못 내렸으나 어렴풋이 Catalog라는 단어를 통해서 Log라는 말이 어디에 기록 또는 등재됨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전문분야를 말하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한데 안할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 공학에 「Abstrac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을 우리나라의 소위 공학박사님들께서는 「추상화」라고 번역하여 쓰고 가르친다.(혹자는 개념화라고도 한다). 따라서 「Abstraction Level」을 「추상화(개념화)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야 당연한데, 나 같은 경우는 그 용어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선뜻 와닿지 않았다. 부하직원이 열심히 그 용어를 설명하길래 내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더니 결국 제대로 답을 못하였다. 자기도 모르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사용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Abstraction의 사전적 의미는 압축, 요약이다. 나는 이 용어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나 우리말로 옮기기에 적합한 용어가 없다. 여하튼 이 용어에 대한 것은 이 정도로 하고 정작 하고픈 말은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우리말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90년 중반쯤 되니까 전산학 분야도 우리말로 된 전문서적이 제법 많이 출간 되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번역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할 수 없이 이해가 안가는 부문은 원서를 보았다.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나라면 이것을 이렇게 번역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즉 번역자가 우리말에 능숙하지 못한 경우였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기본 개념도 없이 번역된 것도 많았지만.

한자(漢字) 유감

얼핏 듣기로 한자라는 단어는 일본식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한자니 한문(漢文)이니 하는 용어가 생겼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까지도 한자를 선비들은 진서(眞書)라고 하였단다. 진서라는 게 뜻으로 보면 「참글」이라는 것인데 그것과 언문(諺文) 혹은 한글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어린 시절 형님들 책을 어깨너머로 제법 훔쳐 읽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깨쳤으니 그 당시 더구나 촌에서는 나름대로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도 좀 들었다. 바로 위의 형님이 4살 더 많으신데 4학년 국어책에 흥부전이 실려 있어 거기에 한자가 병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그것이 여간 신기하게 여겨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가 있다는 것과 생긴 것이 한글과는 영 다르니 기억에 남을 만도 하였다. 그때 생각은 어서 커서 학교에 가야겠다. 그래서 4학년이 되면 나도 한자를 배우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 들어가고 4학년이 되자 한글전용이라며 한자가 국어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때의 섭섭함이란.

그래도 우리세대는 중고교를 거치면서 대충 필요한 정도의 한자는 배운 것 같다. 신문을 읽거나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 세대 이후는 한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우리말의 70%정도가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라는데 한자를 모른다면 그 단어의 뜻을 바로 알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할진대 조어(造語)능력은 언감생심이리라.

김삿갓 시를 읽으면서 그러다 역사관련 서적을 보면서 처음에는 생경한 글자로 많이 당황하였으나 자꾸 도전하다 보니 그럭저럭 읽을 수 있고 뜻도 대강 짐작하는 바가 되었다. 원문과 풀이본을 같이 비교해서 읽다보니 이것 역시 엉터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경우는 저자의 무식으로 인하여 그럴 수도 있고 어느 경우는 한문이 갖는 특성으로 인하여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대학(大學)의 첫머리를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이라고 읽어 「큰 배움의 도는 밝은 덕을 밝게 하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고, 착함에 이르러 그치는데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띄어쓰기를 즉 방점을 다르게 찍으면 조금 다른 해석이 된다. 대학지 도재명 명덕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 道在明 明德在新民 在止於至善)이라고 한다면 「큰 배움이란, 도는 밝은 데에 있고, 밝은 덕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에 있으며, 착함에 이르러 그치는데 있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얼핏 비슷해 보이나 전혀 다른 뜻이다.

한편 삼일신고를 읽다가 원문과 비교해보니 이상하게 해석된 말이 있었다. 「성기원도 절친견 자성구자 강재이뇌(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라는 구절을 혹자는 「소리와 김으로 빌면 반드시 보일 것이니」 혹자는 「음성과 기운으로 원하여 빌면 친히 보이는 일을 끊으시니」로 해석하는 등 제 각각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전자로 알고 그렇게 읽으면서 뒤에 나오는 자성구자 운운과 연관하여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결국 원문을 보고서야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을 했다. 「소리 내어 혹은 기수련 등을 통해 간절히 원하고 기도해 봐도 (하느님을) 볼 수 없으니, 너의 성품에서 그 씨를 구하라. 이미 너의 머리에 내려와 있느니라.」

한시 유감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시라는 것이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며 중의적인 특성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시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러한 것 같다. 역사적 배경이나 고사를 많이 알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을 지칭할 때도 한 글자로 처리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듯하다. 그러니 읽는 사람이 그 정황을 다 알아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상산사호를 거론하면 보통 신선으로 알고 있으나, 상산사호가 세상에 출현했던 고사를 안다면 권위의 부여 내지는 권위에 기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삼청(三淸)이라는 것도 그렇다. 도교의 성전을 삼청궁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태극권의 본파라 할 수 있는 무당파의 초조 장삼봉을 모신 곳이 삼청궁이다. 신선이 산다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세 궁(宮)을 지칭한다. 한편 도교 내지 선가에서는 인체를 정기신(精氣神)의 세 요소로 보아 각각을 맑게 수련하는 것을 삼청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바둑을 난가지몽으로 빈번하게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 고사의 주인공이 왕질인가 그럴 것이다. 왕질이 어느 때인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두 노인이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였다. 바둑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도끼를 들었더니 자루가 썩어있었다. 집에 와보니 다 낯선 사람들만 있더란다. 몇 백 년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에 기인하여 바둑을 때에 따라서는 난가로 때에 따라서는 도끼자루 썩는 것으로 때에 따라서는 질이란 이름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아래 글(2614) 서거정의 시에 「도끼자루 썩은 사람 그 누구냐 ?」로 되어 있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번역이다. 원시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나라면 「누가 도끼자루를 썩게 하였는가? 세월이 한 일이요,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이렇게 번역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모르긴 몰라도 원시도 이렇게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시를 감상하려면 역사, 종교, 일반상식 등 폭넓은 지식이 요구되니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문학 및 한자 교육 유감

우리의 고전을 우리글로 번역하여 당세의 우리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은 시급한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이를 통해서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해 나가는 주요 과제가 된다는 것에 100% 공감한다.

요새 불경의 한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집사람도 불교신자지만 반야심경을 외우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고서 외우냐고 가끔 묻는다. 대뜸 나오는 대답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만큼 신심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뭐 이런 식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기왕 외울 것이면 좀 뜻이라도 알고 독송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긴 한자로 된 그 어려운 것을 읽기도 벅찬데 뜻까지 알기를 원하는 것은 무리인지 모른다. 그러니 불교신자들이 기복신앙에 매달리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다. 마치 중세 기독교가 우민화 정책으로 성경을 라틴어 원전으로 읽어댄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경우 한글을 언문이라 하여 천한 글로 여겨서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을 어떻게 그런 글로 나타낼 수 있느냐 하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인식이 바뀌어서 한글화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글로 번역만 하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문제는 올바르게 되어야 한다. 둘째는 읽어야 하는 것이고. 읽는 것이야 개인의 선택권이니 뭐라 할 바가 없겠으나 올바른 번역은 중요한 것이다. 앞서 성경의 예를 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고전과 선현들의 문집 및 문화재에 대한 기록도 역시 올바르게 번역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접근하기가 용이한 것이리라. 그런데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할까? 한글화가 되면 문제가 없을까?

나는 여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원전을 가지고 씨름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초중고에서 필요한 한자를 가르치고 이 바탕 위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더욱 깊게 한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원전을 얼마만큼 정확하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일설에 의하면 우리 국사 내지 동양사를 연구하는 학자 중 중국의 정사 25사를 다 읽어보신 분이 없다는 것이다. 읽고 싶어도 한문 실력이 딸려서 못 읽는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무슨 학문의 발달이 이루어지겠는가? 역사서를 못 읽을 정도라면 우리의 고전은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올바른 번역서도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한동안 미적분도 모르는 학생이 공대에 입학했다 하여 기초실력을 대학에서 별도로 가르친다는 보도가 났고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그렇다. 미적분을 모른다면 공대에서 수학할 능력이 안 된다. 영어를 모르면 글로벌 표준에 맞는 학문을 연구할 수 없다. 한자를 모르면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수능이니 등급제니 뭐 요상한 정책들을 개발하는데 힘쓸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기초학문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문화의 나라로서 대한민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