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우상은 필요한가?

오늘 날 우리 인류사회는 신화를 잃어가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이 그 직접적 원인이 될 것이다. 신화를 잃어가니 거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도 마음으로 숭앙하는 대상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의 비유쯤으로 해석해서 교훈을 얻는 정도의 장치 정도로 격하되는 것 같다. 그 대신 대중매체의 확산에 기인하여 연예인이나 대중가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것 같고, 여기에 일부 정치인도 편승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은 장래의 꿈도 소박하게 꾸는 것 같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적어도 우리 세대는 대통령, 장군, 판검사 등이 주였건만, 지금은 디자이너, 아나운서, 가수 등 제법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직업을 댄다. 실천적 의미에서는 바람직하나 야망 또는 대망이라는 발전 지향적 관점에서는 그게 좋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어옴으로 인해서 그만큼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되었고, 무엇을 하든지 대충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서 그런가, 부모들도 굳이 애들의 꿈을 높여 주려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어디 가서 사고나 치지 말고 잘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클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상(偶像)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목석(木石)·금속 따위로 만든 상(像)」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상징물」과 「대중적인 인기가 있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존경하는 대상」등으로 의미가 외연확대 된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인간 사고의 중심에 있는 상징 내지 인물」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창세기 10장 8절에서 13절에 니므롯이라는 의미심장한 인물과 그의 행적이 나온다. 키워드만 보면 「~세상에 처음 영걸~~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냥꾼~~레센(큰 성)을 건축~」이 그것인데, 당시는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자손이 한창 번성해 갈 때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11장에서는 저 유명한 바벨탑의 설화가 나온다.

아마도 <영걸>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으로 보아서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고, <여호와 앞>이라는 것은 <여호와에게 맞서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하니, 신성의 권위에 도전을 했던 위대한 인물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론의 여지는 있겠으나 상당수 성경학자들은 바벨탑 건축의 주동인물로 이 니므롯이라는 자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11장 4절에 나온다. 「~우리 이름을 내걸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가 성경적으로 표현된 그것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정도의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을 내걸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니므롯은 아마도 무리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유태교를 서양의 종교로 보기에는 다소간 무리가 따르나 그리스의 종교 및 사상과 결합하여 기독교로 발전한 모태가 되었으며, 기독교 정신이 중세를 거쳐 현대 서구를 이끌어 온 것은 틀림없으므로 서구 정신문명 혹은 사상의 기반으로 보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니므롯은 차라리 솔직하다. 도전적이고 자기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무리를 규합하여 성과물을 이루어 냈다. 그러한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나폴레옹과 히틀러에 와서는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의 신 여호와는 인간이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정죄한다. 모든 영광은 유일신 자신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사고다. 모세조차도 기적의 영광을 본인에게 돌린 죄과로 그의 하느님으로부터 일정기간 배척받는다.

내가 사막의 종교인 유태교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중 하나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이다. 물론 첫 번째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함께 두 번째도 질투의 하느님 운운하는 배타적 신관이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상이나 상징을 배척하는 것은 형이하학적 신앙관에서 형이상학적 그것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의한 것으로서 신을 숭배하라는 것이다. 인간정신의 위대성을 믿은 유태인들의 정신문화적 산물인 것이다.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시나이 산으로 올라 오래 동안 내려오지 않자 유태인들은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고 신으로 떠받든다. 광야에 내 던져진 존재로 그들의 지도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그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금송아지를 숭배하고자 했는지 모르나, 이미 유태인들은 이집트에서부터 그러한 신앙관에 길들여져 있었고, 주변의 모든 족속들도 그랬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들의 역사를 보면 우상과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혜의 왕으로 유명한 솔로몬조차 후반에는 우상숭배에 물들었음이랴. 아마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총명함도 흐려졌거니와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회환 혹은 허무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믿는 바를 굳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하느님이 그렇게도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계하였건만,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 유폐까지 당한 그 모든 기록이 그들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건만 중세로부터 지금까지 천주교는 예술작품이란 미명하에 수많은 성화(聖畵)와 조각상을 남겼고 십자가도 남겼다. 개신교는 십자가에 예수의 못 박힌 모습만 생략한 채 그 신앙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내건다.

어릴 때부터 천주교 모태신앙으로 방에는 항상 십자가가 걸려있었다. 믿지 않는 냉담자였기에 천주교 교적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략 이십대 후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방에 걸린 십자가도 내렸다. 우상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불 아궁이 속에 던져 넣었다.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낱 이따위 우상에 떠는 미약한 존재임을 발견하고는 화가 치밀었다. 불속에 타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찜찜했다. 그런데...아무런 일도...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우화 한마디. 어느 운수납자 둘이 밤늦게 어느 절에 도착하였다. 주지가 보니 형편없는 걸객승인지라 대충 허름한 방을 내어주고 불도 지펴주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해도 너무 추워서 잘 수가 없었던 두 중은 불당에 있는 불상이 목각으로 되어있는 것을 알고는 불상을 짊어져와 도끼로 쪼개서 불을 지폈다. 방바닥이 뜨뜻해오고 잠을 청하려고 누웠는데 주지가 고함을 지르며 헐레벌떡 뛰어온다. 불상을 때면 어떻하냐고 난리가 난 것이다. 두 중은 말없이 나가 아궁이 앞에서 재를 긁어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뒤적뒤적하는 것이 아닌가! 주지가 어이도 없거니와 궁금하여 물어봤다. 대체 뭔 짓들을 하고 계시나? 이 불상이 부처님이면 사리가 있을 것이 아니요? 사리를 찾고 있는 중이올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단군상의 목이 떨어져나가거나 불상이 훼손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져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를 근절시키겠다고 저지른 어이없는 행동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들에게는 우상철폐가 또 하나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일부 의욕에 찬 인사들이 하느님 운운해가며 대한민국이 하느님의 나라로 선정되었다는 등 웃지 못 할 주장을 하고, 거기에 편승한 일부 과격 신도가 벌린 일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대통령 자리에 계신 분도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 무슨 봉헌이니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더니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 휘장을 기드온의 나팔을 형상화했다고 해서 다시 한 번 사단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상이라는 것이 대략 종교적 숭배물, 인간, 자신의 신념 등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종교적인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고, 니므롯을 비롯해서 나폴레옹 또는 히틀러까지 그들을 숭앙한 대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마이클잭슨이라는 가수가 타계함으로써 그 장례식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나는 보지도 않았지만 열광하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김수환 추기경과 두 전직 대통령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연예인도 떠났다. 어제도 어느 여자 탤런트가 죽음을 맞이했다. 아울러 그 분들을 잃음으로 인해서 상당한 정신적 상실감을 느끼시는 분도 많은 듯 하다.

신과 영웅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연예인이 되었던 정치인이 되었던 혹은 자신의 믿는바 소신이 되었든 그런 인물 내지 신념 등을 앉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절대적 신권주의에 의해 또 절대 왕권의 강화를 위해 혹은 사회적 윤리규범의 적용을 위해 인간의 불안 심리에 이런 것들을 주입시킴으로써 일정한 목적 달성을 꾀했고, 대중은 그 우매성으로 인하여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대중매체의 발달로 충분히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는 것에 대해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