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활용에 대해

바둑이란 무엇일까? 어떤 게임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합니다. 혹자는 집을 다투는 게임이다. 혹은 싸움의 게임이다. 주장이 여러가지 입니다.

저는 바둑을 <돌의 효율을 다투는 게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같은 돌수로 누가 더 집을 많이 차지하는가, 혹은 누가 더 강한 세를 구축하는가 등 돌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려고 하는 사고 방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응수를 타진할 경우가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상대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다가는 지는 길로 가겠죠? 이것을 프로들은 소위 <잽>이라고 합니다. 잔매 한 대야 별거 아니지만 여러 대를 맞아 누적되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아집니다. 잽이 쌓이면 그대로 직전낙하입니다.

오늘은 상대가 활용하자고 할 때 거꾸로 되받아치는 사고와 그 감각에 대해 조훈현 국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장면도>

제1기 LG배 4강전 바둑으로 (백)유창혁九단, (흑)최명훈五단의 바둑입니다.
지금 ▲한점이 축으로 몰려있는데, 흑1은 축머리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백은 2로 귀에 얄궂은 수를 들고 나왔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실전진행1>




실전에서 흑은 흑1의 맥점을 구사했습니다.

백은 2로 내려뻗고 백4로 먼저 우상귀를 걸쳐

갑니다. 우변 일대를 전쟁터로 삼겠다는 의도

라고 봐야겠죠?


기세상 흑은 5로 기어나오고,

백은 기다렸다는 듯이 6으로 호구를 치며

일전 불사를 외칩니다.


사실 흑1은 맥점이기는 하나,

고지식한 수였습니다.


계속해서 실전을 보겠습니다.






<실전진행2>


흑은 기운차게 흑1로 꼿꼿하게 빳빳하게

섯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선수가 아닙니다.

어설프게 맥점을 구사하는 바람에 백이 △로

뻗어져 있어서 백2로 막을 때

A의 단점이 노출되어 결국 흑5로 보강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중앙전은 상대방보다 한발이라도 더 먼저

나가려는 다툼이 치열한 법인데 전진하다가

후방을 돌아봐야된 셈이 된 것입니다.


우상귀 한칸 높게 걸처져 있는 점과 백4와의

유기적 연관성!  느껴지나요?  유창혁 사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 할 모습이.

사실 흑은 여기서의 접전으로 참혹한 꼴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후 진행은 차차로 살펴보기로 하고. 자! 그러면 흑은 어떻게 응수했어야 했을까요?


<포인트>






흑은 백1의 응수타진에 신경쓰지말고

축이 안되는 흑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축이 안되니 백3으로 이을 수 밖에 없을 때

이번에는 거꾸로 흑이 4로 젖혀 응수를 

물어봅니다.



백은 바로 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빈삼각으로 꼬부려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계속되는 변화>




백1로 막으면 흑2, 4 연타가 기분 좋습니다.

그리고 흑6으로 두텁게 이으면,

백은 7로 귀를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백△2점이 고립되어서 흑의 두터운

세력 안에 갖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상대가 활용하고자 던진 응수를 되받아쳐

성공한 훌륭한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들죠. 백7로 변의 한점을 잡고

살면 어떻게 될까?  다음 변화를 보실까요?








<하변 한점을 잡는 변화>

 

백이 흑 한점을 잡는다면

흑은 4, 6의 최강의 응수로 A의 패가 됩니다.


A패를 흑이 이긴다면 B와 C가 맞보기라

흑은 전혀 불만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백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국면이 되는거죠.



그렇다면 백에게 다른 응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흑을 중앙 쪽으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 변화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귀를 버린다>



즉, 백1로 단수쳐서 일단 흑을 무겁게 만듭니

다. 그러나 결국 백도 3으로 이을 수 밖에 없습

니다.



흑4로 중앙 쪽을 밀어가면 백은 귀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흑은 6으로 젖혀 백을 압박해갑니다.

백은 7이하 2선을 길 수 밖에 없겠죠?

이것은 누가 봐도 흑이 우리합니다.

귀의 맛이 만만치 않으니 백은 몇 번을 더 기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다시 실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십시요. 흑은 연결하기 급급합니다. 백은 중앙 일대에 막강한 세를 쌓았습니다. 이미 승부가 초반 접전 단 일합에 끝난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프로바둑에서 단 한번의 어설픈 맥점으로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지?

이제 이 바둑의 형세를 판단해 봅니다. 사실은 감상의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너무 일방적이라서...그러나 한번 검토해볼까요.


<형세판단>

 

흑

좌상 22.5 +
상변5 +
우하8 +
하변19
합 = 54.5

백
좌변23 +
중앙12 +
우변일대18 +
상변5
합 = 58.5

반면 4집을 백이 앞섭니다.

이후 끝내기는 백의 안전운행으로 3집반 승







<조훈편 국수 어록>

포인트의 흑2, 4는 일종의 받아치기입니다. 권투에서도 왜 그냥 가격하는 것보다 받아치는 것이 더 강력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와 비슷한 원리지요. 아마추어 여러분들께서도, 상대가 활용하려 할 때 잠깐 호흡을 가다듬으며 뭔가 받아치는 수단이 없을까를 연구하는 습관을 들이시면, 바둑의 묘미를 더욱 만끽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현의 생각>

한 판의 바둑을 두어가다 보면, 간혹 욕심나는 장면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 수  활용수를 던지므로서 상대방 말을 좀 더 무겁게 한다던가, 때로는 상대방 행마를 꼬이게 만든다던가, 상대의 모양을 무너뜨리고 싶은 경우도, 혹은 상대의 약점에 대해 어떻게 받는지 그 응수를 물어봄으로써 향후 일어나게 될 전투에 대비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수가 미리 반면에 놓여있게 만드는 것이라던가...일종의 기교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둑이 될 때는 주변의 돌들이 다 우군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지는 바둑은 주변 돌들이 오히려 자유로운 행마의 걸림돌이 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한 수 묻는 것! 특히 들여다 보는 수가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때도  잇는 것이 당연하다고 무심코 응수하는 습관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아마추어는 허초가 많은 편입니다. 상대방의 수에 반발하고 되받아치는 수를 연구한다면 상당히 묘미있는 바둑이 될 것입니다. 단, 이 경우 거의 전투 바둑으로 치닫게 될 경우가 많으니 전투가 약하신 분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의 바둑도 그 응수타진 한 수로 인하여 한집 혹은 반집 정도 불리할 것 같으면 즉시 반발합니다. 그 반발은 속수무책의 전투로 확전되게 되고, 판은 아수라 장으로 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적당한 타협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만방으로 종결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둑다운 바둑 아니겠습니까?

<피할 수 없거든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