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벗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구 한 판 어떠신가?” 불감청이면 고소원이라던가.

국제식 대대에서 3쿠션 두 게임을 치고 난 후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

“집으로 가지.”

“뭐 좋은 것 있나?”

“손두부에 불고기 안주삼아 막걸리나 한 잔 하세나.”

집에 도착해서 자리 잡고 앉았는데 주섬주섬 상을 차려 내온다.

그런데 별미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송이버섯이었다.

단양에 사는 친구가 직접 채취해서 보내왔단다.

집에서 한 잔 하자는 그 속내가 비로소 읽힌다.

공연히 눈가에 물기가 번진다.

송이버섯은 칼로 썰면 안 된다며 손으로 잘기잘기 찢어서 불고기 위에 얹는다.

입안에서 향긋하게 퍼지는 내음이 보통이 아니다.

얼큰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한 잠 잔 후 새벽에 일어났다.

좋은 글귀를 하나 얻었다.

棹穿波底月(도천파저월) 노는 물결 아래 달을 뚫고

船壓水中天(선압수중천) 배는 물 속 하늘을 누르네

거참! 기가 막힌 글이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고려 때 문신 박인량이란 양반의 시 구절이다.

塔影倒江蟠浪底(탑영도강반랑저) 탑 그림자 강물에 거꾸러져 물결 밑에 꿈틀거리고

磬聲搖月落雲間(경성요월낙운간) 풍경소리 달을 흔들어 구름 사이에 떨군다

대단한 상상력과 풍류 감각이다.

지난 9월 말경 가든파티에 초대 받았었다. 고3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친구가 제법 사업이 흥해서 한창 잘 나가고 있다. 영빈관인가 뭔가를 지었다는데 정원에서 바비큐에 와인이나 마시자는 것이었다.

산 밑에 위치하여 제법 멋지게 조경을 해놓았다. 향나무 한 그루에 10억 가량 한다나? 이래저래 나무 값만 30억이 들었단다. 작은 폭포가 내를 이루도록 꾸며놨으니 제법 볼만했다.

조촐한 자리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야외 뷔페식이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와인이 성에 차나? 양주 없나? 이래저래 고주망태가 되었다. 이놈 저놈 서로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통에 또 요즘 근황이 어떠냐는 상투적 대화들에 도통 술맛이 안 났다. 결국 흥이 안 찬 놈에 흥에 겨운 놈에 우르르 몰려 2차를 해치웠다.

이제는 육류가 멀어진다. 소찬이 좋다. 기름진 것 보다는 담백한 것이 더 입에 맞아간다. 왁자한 것보다는 은근한 것이 술맛을 더 돋운다.

취흥이 가시기 전에 겁 없이 한 번 읊조려봤다.

松栮香灠房(송이향남방) 송이버섯 향기 방안에 가득하고

三笑情冪夜(삼소정멱야) 허물없는 벗의 정 밤을 덮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