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았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죠"
"받았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죠"
어린이대회 만든 홍시범-맑은샘 부자 인터뷰
[맑은샘배] 정용진  2013-08-16 오후 08:02   [프린트]


프로기사의 이름을 건 바둑대회는 보통 두 가지 경우에 만들어진다. 업적을 기리거나 회고, 또는 추모하는 경우다. 김인 국수배나 예전 응씨배 우승 직후 선보인 조훈현배가 전자이고 정현산배가 후자의 예다. 본인이나 가족이 손수 대회를 만든 예는 찾아보기 힘들고 지자체나 단체, 개인 후원자와 같은 제3자가 나서 창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이창호나 이세돌처럼 세계를 제패한 스타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잘나가는 기사도 아닌데 ‘보은(報恩)’하는 마음을 앞세워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어린이대회를 만들었다. 지난주말 1회 대회를 마친 맑은샘배 어린이 최강전 말이다. 프로기사인 아들과 마찬가지로 바둑계에 몸을 담고 있는 아버지이긴 하지만 프로가 된 자식의 이름으로 바둑대회를 만든 사례는, 기억하는 바, 없다. 대회 탄생 배경도 그렇거니와 방식도 여타 대회와 다른 점이 많아 눈길이 갔다.


▲ 제1회 맑은샘배 어린이 최강전은 또하나의 대회로 넘겨버리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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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홍사범! 이런 대회를 선보인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니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시작부터 좀 아픈 얘기를 끄집어내는 꼴이지만, 고국서 입단좌절을 겪고 일본으로 건너가 곡절 끝에 관서기원 프로가 되어 거기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국의 기사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감회가 남다를 텐데?

“한국기원서 제 이름이 걸려 있는 대회를 한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기사로서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아직 낸 것도 아닌데 이름 석 자를 단 대회를 만든다는 게 혹여 주제넘게 비칠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제가 한 것보다 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이 해주시는 거니까 감사하고...어릴 적 제가 많은 바둑대회를 통해 성장했듯 아이들을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 용기를 낸 걸음이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버지의 덕이 9할은 되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는 단 한마디 감사의 메시지가 없군요. ^^

“네...그렇죠.”
(홍시범) “그건 할 필요 없으니까. 부끄럽고 겸연쩍어서 그런 거지요.”

-하하. 농담을 진지하게 받으시니...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아빠의 역할이 9할이라한들 자식이 ‘프로기사’가 되지 못했다면 빛을 보지 못할 대회였겠죠.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대회창설인데 구상하게 된 배경이나 내막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홍시범) “뭐 기회가 없었죠. 아들놈이 돈도 못벌고...성적도 못내고...저희도 먹고살기 급급한데...하지만 제가 바둑일을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을 장돌뱅이마냥 돌아다닌 보람이죠 뭐. 샘이의 이름을 건 바둑대회를 하나 만들 생각을 갖고는 있었는데 애엄마가 어느날 대회행사를 마친 뒤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꺼낸 말이 생각지 않은 촉매제가 되었지요. 우리 아들놈도 돈 좀 벌고 유명해지면 이런 대회 열어야 하는데..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자리에 계셨던 한 분께서 전화를 하신 거예요. 내가 한 1천만 원 상금을 보태면 할 수 있을까, 하시는 겁니다. 쓸데없는 데 돈 쓰시는 겁니다, 했더니 그럼 쓸데없는 짓 한번 하지 뭐, 그러시더라구요. 해서 제가 나머지를 대 만든 거지요.”

-제 눈대중으로도 이런 대회 하나 하자면 최소 2~3천만 원은 들 텐데요. 후원자의 존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홍시범) “절대 익명으로 해달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참 고마운 분이죠. 이 대회 시상부문을 보면 아바사(아마바둑사랑회)가 선정하는 지도자상이 있습니다. 수상자에게 김옥수 명장의 도자기 작품을 드리는데 이 또한 그 분께서 선뜻 내놓으신 겁니다. 한 1천500만원은 호가할 겁니다. 본선을 벌인 송추 인근의 개인저택도 소개해 주셨고요. 평소 제게 대회장 딸린 건물을 지어주시겠다 노래를 부르시는 분인데 매물로 나온 그 집을 보시고는 절 딱 떠올렸다고 합니다. 홍감독이라면 이런 데를 잘 활용하겠구나, 생각하셨다네요. 한번 행사를 해보고 판단해 보자는 거지요.”



-홍사범의 일본에서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홍도장은 날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거 같던데, 유망한 제자를 꼽는다면?

“8년째 일곱 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습니다. 거쳐간 도장출신까지 합하면 열 명이네요. 얼마전에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 출전했던 이치리키 료는 이미 본선멤버이고 신인타이틀을 두 개나 땄습니다. 올해 다승랭킹도 4~5위에 올라있는 강자죠.
작년에 입단한 요오치토는 대만출신으로 자유로운 발상에 힘이 아주 셉니다. 올해 다승랭킹 9위를 달리고 있어요. 제 제자라서가 아니라 눈여겨볼 일본 신인들입니다.”

-1년에 딱 6명만 뽑는 일본의 입단제도에서 8년 만에 열 명의 프로기사를 키웠다는 건 대단한 성적이군요. 바둑전문 도장이 일본에도 많이 있나요? 이방인이라 은근히 견제를 받았을 법도 한데요?

“바둑인구의 구성을 보면 피라미드 구조죠. 꼭짓점에 수가 적은 프로가 자리할 테지만, 전 아마가 위고 프로가 아래라는, 역피라미드 구조로 생각하고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봅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견지하려 노력하며 처음 일본기원 앞에 도장을 냈고 프로도 여럿 배출하면서 실적을 내기 시작하니까 이방인으로서 알게 모르게 설움과 보이지 않는 견제를 겪기도 했습니다. 학생대회에서 제 도장 아이들이 섭렵하니 어디 마음에 쏙 들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꾸준한 모습을 보이니까 인정해 주더군요. (왜 하필 일본기원 코앞에다 학원을 냈나요?) 연구생 위주로 하려고 하니...제가 어려서 샛길로 많이 샜기 때문에...하하. 지금은 다른 데로 옮겼습니다.

일본에도 바둑도장이 여기저기 꽤 있습니다. 기쿠치 선생이 만든 녹성학원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표적인 도장이고 후지사와 슈코 선생의 아들인 후지사와 8단이나 미무라 9단 또한 치바에서 크게 하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타도, 홍도장!’ 소리를 들을 만큼 일본의 대표도장으로 자리했다던데요, 그렇다면 돈 좀 벌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부모님 호강도 시켜드리고...^^

(홍시범) “돈, 안 벌었기 땜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지. 원생 40명에 사범만 5명이랍니다. 남는 게 있으면 인재를 못 만들어낸다니까요. 저흰 국물 얻어 마실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아직 어림없죠. 완전 건달이에요. 이름이 잊혀질까봐 이런 바둑대회도 하는 거지요. 승부사는 지면 아프지만 잊혀지면 슬픈 겁니다. 샘이가 리그진입만 하면, 초등부 대회는 이번에 했으니 그땐 학생부 대회를 해주고 싶죠. 그런 걸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 모름지기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자식을 번듯이 키우고 나서도 끝까지 한발 뒤에 물러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날 하루쯤은 멋진 양복 한번 입을만하건만 홍시범 감독의 복장은 늘 그렇듯 청년처럼 자유롭다. 자식은 번쩍번쩍 빛나는 양복을 입혀 내세우고 부모는 대회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무대 뒤에서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는다.

-하하, 은근히 부담을 안기네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토너먼트 승부 쪽으로도 여전히 의욕이 식지 않았을 텐데?

“명인전 최종예선까지 올라갔죠. 일본은 최종예선을 본선으로 여깁니다. 이번에도 명인전 최종예선에 올라가 이 달 말 둡니다. 리그 진입이 목표입니다.”

-요즘 한국바둑이 중국바둑에 연일 난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침체기에 접어든 일본바둑이 그랬던 것처럼 8강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깥사람이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 보나요? 한국에서 바둑을 배웠고 일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누구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봅니다.

“한국바둑을 공부해 왔기에 이 점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색깔이 많이 없어진 듯하다는 거...친구들이 도장을 하니 많은 도장에 가 보는데 다 비슷비슷하더군요.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애들이 적어졌어요. 신진서나 색깔이 나오는데, 한국은 전통적으로 수(양)보다 톱(플레이어)이, 스페셜리스트가 나와 몰아쳐야 되는데 이렇게 자기색깔이 사라지면 앞날을 기대하기 힘들겠죠. 일본은 도장마다 색깔이 있습니다. 사범들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한국에선 이렇게 두면 안되는 것도 허용하고 지켜봐 줍니다. 물론 당장의 승부에서는 지겠죠. 일본에선 바둑 배우는 인구가 줄고 침체기에 들어 지금은 세계무대에서 확연히 밀리고 있긴 합니다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겁니다. 창의적인 발상을 키울 수 있는 공부가 아쉽습니다. 책도 좀 읽히고 시야를 넓게 해줬으면...”

홍맑은샘 2단에게 어린이대회-특히 자기이름을 걸고 만든 이런 대회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초등1학년 때 부산 이붕배에 참가하기 위해 3등기차인 비둘기호를 타고 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 가난하다 보니 하룻밤 숙박비를 아끼려고 아빠는 서서 가고 자신만 간신히 누워가던 그 밤은 왜 그리 긴지. 부산역에 도착해 세수할 때 화장실 세면대에서 느꼈던 그날 찬물에 대한 기억은 몸속 세포로 기어들어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때 잘나가던 맹지민의 형 맹지헌과 을조에서 만났고, 어렸지만 죽을힘을 다해 뒀던 기억. 초등3학년 때는 갑조 우승을 했는데(대 안달훈), 그때도 죽을힘을 다했다.

이번 맑은샘배의 우승상금이 500만 원인 것도(어린이 단일대회 우승상금으로는 상당한 액수다) 그때 이붕배 을조 우승상금으로 받은 게 50만 원이었기에 최소한 그 열 배는 되어야 보답의 뜻을 담을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단다.


▲ 아내(사토 카나코), 아들과 함께. 인연이란 운명적인 것인지, 세계아마바둑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때 홍2단의 부인이 계시원이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일본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데도 둘의 끈이 맺어졌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치수는 6점이라고 한다.

도일 후, 일본기원이 발빠르게 홍맑은샘 같은 한국기원 연구생출신 이무기들이 입단할 수 있는 여지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관서기원의 배려로 프로가 되기까지 5년을 인내하는 데엔 어릴 때의 처절한 경험과 치열한 연구생경쟁에서 맛본 좌절이 큰 힘이 돼주었다. 어차피 더 내려갈 바닥은 없었다. 이름값을 하라고 지어준 이름이 맑은샘이었다.

프로가 되었지만 연수기사라 해서, 정기사에 비하면 대우가 굉장히 안 좋았다. 기사긴 기사인데 이겨서 살아남지 않는 이상 정기사가 될 수 없는 기사였다. 정기사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의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본 기전에서 20승을 거둬야 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기전 제한이 있어서, 홍2단 같은 나이대의 경우 1년에 7번 정도 출전할 수 있는데 관서기원의 랭킹 20위권은 결코 만만한 기사들이 아니다. 이런 기사들을 헤치고 전국무대를 나가야 한다. 이에 앞서 연수기사끼리의 별도 선발전을 거쳐 살아남아야 하는 건 필수고. 20승을 채워 정기사가 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그나마 이런 연수기사제도 윤춘호까지 두 명을 허용하고선 중지해버렸다. 이 이상 받으면 한국에서 계속 올 것이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홍시범) “2001년인가요? 그 무렵 샘이가 한창 잘 나갈 때 한 해 획득한 우승상금이 3천700만 원이었습니다. 그때 프로기사 수입랭킹 10위를 보니 김영삼 사범이 딱 그 정도 액수를 벌었더군요. 그건 대국료 집계였지 최종 결승까지 치고 올라가 받는 상금집계가 아니었지요. 비록 아마추어가 아마대회에서 올린 상금이긴 해도 샘이가 얼마나 잘 나갔고 많이 벌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획득한 상금은 3분의 1 이상 다 풀었습니다. 인심을 잃지 않았기에 아직도 팬이 많고 저에게도 폭넓은 도움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렵던 시절 받은 이붕배 상금이 엄청난 힘과 용기를 주었듯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저희가 받았던 혜택을 갚을 때라 생각했습니다. 언제 합니까?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그때 하겠다는 것은, 절대 못합니다. 받았으면 돌려줄 줄도 알아야죠.”

아버지 홍시범 씨를 바둑동네에서 부르는 호칭은 ‘감독’이다. 어찌하여 감독 소리를 들을까? 전에는 맑은샘 아빠로만 통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 불린다. 프로 아들보다 훨씬 팬이 많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번 더 하기로 한다. 바둑대회, 무대 뒤에서 주연들이 마음껏 기량을 겨룰 수 있게 애쓰는 조연들의 얘기는, 요석만큼이나 충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다.



▲ 한국기원 직원조차 프로, 아마 통틀어 이렇게 많은 화환이 쇄도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맑은샘배에는 바둑계는 물론 각계의 성의가 전달되었다. 홍시범 씨의 인맥과 성품, 그간 쌓아온 관계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 맑은샘배의 우승, 준우승 상패는 홍맑은샘 2단이 가장 잘 나갈 때의 포석, 이른 바 샘류, 샘포석으로 불리는 기보를 크리스탈에 새겼다(기보는 2000년, 이창호 9단과 프로아마대항 1위전의 포석단계). 홍2단은 지금도 백을 들었을 때 고목-외목 포석을 구사하고, 흑번일 때는 외목-화점 포석을 애용한다. 이 포석을 고수하는 이유를 묻자, "요즘은 다들 하도 공부를 하니까 평범한 포석으로는 승산이 없어서..."라 말하며 웃는다.


홍맑은샘 2단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 아래 플레이! (동영상 제공 / 바둑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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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도장 |  2013-08-20 오후 12:41:00  [동감0]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읍니다. 홍 감독님.
왕냐옹 |  2013-08-19 오전 10:18:00  [동감0]    
홍맑은샘 잘 생겼다.
유경민 |  2013-08-19 오전 12:24:00  [동감0]    
샘아 애들 데리고 가고싶었는데 다른거랑 겹쳐서 못갔다 근데 이거 치루시고 또 울진에서 홍감독님(?)ㅎㅎ 일하시는거보니 미안한 맘도 들고 역시 수를내서 갈걸싶드라 그동안 너 열심히 한다는 얘긴 지겹게 들었으니 이제 여유있게 즐기면서 하고 우리애들 실력좀 늘면 한번 데리고갈께~잘지내고 다음에 오면 한잔하자^^
조명인님 |  2013-08-17 오전 8:45:00  [동감0]    
보은이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의미있는 대회를 창설하다니 대단한 일이다.이 대회가 미래의 꿈나무를 키워나가고 더욱 성장하길 기원한다.
철권미나 |  2013-08-17 오전 7:00:00  [동감0]    
흠.. 머찐 아빠세요. 쉑쉬하시고^^*
바둑정신 |  2013-08-17 오전 12:35:00  [동감0]    
그래요.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맑은샘보다 홍시범님의 팬이 더 많군요....시범님의 마음가짐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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