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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유치원 ‘놀이바둑’10년, 아이들에게 키워준 ‘지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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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해달유치원 강당에는 바둑돌이 경쾌하게 놓이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서구에 자리 잡은 이 유치원 강당에 지난 10월 18일, 바둑TV캐스터로도 잘 알려진 고윤서(21) 프로가 일일 바둑선생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고사리 손으로 바둑돌을 집어들어 바둑판에 놓았다. 송선자 해달유치원 원장은 이날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서 아주 좋아해 주셨다. 용기를 낸 아이들은 일일 바둑선생님과 직접 대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달유치원은 전국 최초로 바둑프로그램 ‘놀이바둑’을 도입했다. 생각의 힘과 인생의 지혜를 길러주는 바둑을 어린이들에게 교육해 온 지 10년이 되었다. 도입 당시는 유아 교육계가 속도전에 몰입하던 시절이었다. 더 빨리 한글을 깨치고 더 빨리 숫자를 세고 더 빨리 영어를 말하는 것이 교육이 성과를 증명하는 척도처럼 여겨졌다. 교육 시장의 거센 물결은 모두 조기 선행학습이라는 한 방향으로 쏠려 있었다. 그때 해달유치원은 낡고 무거운 돛처럼 보이는 ‘바둑’을 들어올렸다. 전국 최초 놀이바둑도입이라는 짧은 기록 뒤에는 철학의 무게가 실려 있다. 유행을 따르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찰한 결과로 나온 적극적인 선언이었다. 해달유치원이 개원 이래 추구해 온 교육 철학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이다.    ▲ 프로기사 고윤서(21) 초단이 일일 바둑선생님으로서 해달유치원을 찾아 아이&학부모와 바둑수업을 함께했다.
 ▲ 송선자 해달유치원 원장.
원장은 아이들의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중, 바둑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했다. 원장은 “우리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바둑이 아이들 집중력이나 사고력 향상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바둑교육과 관련된 수업을 알아보다가 놀이바둑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놀이바둑’은 개념조차 생소했다. 모두가 속도를 외칠 때 해달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생각의 깊이’를 선물해주기로 결심했다. 이 선구적인 결정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역량이 무엇인지 예견한 혜안이었다. 현재 해달유치원은 ‘AI 로봇 코딩’, ‘K-POP 댄스’ 등 최신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가운데서도 아이들의 사고와 인성을 다져온 놀이바둑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 ‘놀이바둑’이 가져온 변화 “아무래도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조절이 쉽지 않은데 바둑수업에만큼은 앉아서 끈기 있게 바둑을 두어나가는 걸 보면 신기하다. 일부 유치원에서는 ADHD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증세가 완화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원장의 말이다. 상대와 수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충동을 제어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지고 나면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어느새 상대를 향해 “잘 배웠습니다”라며 고개 숙이는 아이로 성장한 사례는 이곳 교사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풍경이다. 원장은 “하나의 바둑돌에서 아이의 우주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 학습에서 놀이로-세계사이버기원에서 시작된 유아형 바둑 어른들에게도 복잡하고 어려운 바둑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답은 ‘놀이’라는 옷을 입히는 것이다. 놀이바둑은 세계사이버기원㈜이 개발한 ‘생각의 힘, 놀이바둑’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바둑교육 요소를 재구성한 것이다. 딱딱한 바둑용어는 ‘활로(活路)’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돌이 숨 쉬는 구멍’으로 설명된다. 반상에서 돌이 숨을 쉬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는 순간 아이들의 눈빛도 달라진다. 해달유치원에는 연령별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원장은 “5세 반은 노래·율동 위주의 바둑수업으로 친근하게 접근한다. 6세~7세 반에서는 조금씩 바둑 규칙 설명을 심화해 나간다. 놀이바둑 교재의 구성 자체로 그렇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놀이의 형식으로 다가가 바둑은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닌 ‘기다려지는 놀이’가 된다. 사고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기다려지는 바둑수업.
■ 성장을 여는 열쇠들 놀이바둑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편적이지 않다. 인지·정서·사회성·인성·학습동기까지 전인적 성장을 촉진하는 종합적인 과정이다. 우선 인지발달을 들 수 있다. 바둑은 사고력을 기르는 더없이 좋은 장이다. 한 수를 두기 위해선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단련한다. 훗날 수학·과학 등 고차원 학문을 위한 사고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바둑을 두면 실질적으로 수리적 판단과 공간능력이 증대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어 왔다. 아이들은 바둑에서 작은 인생을 경험하기도 한다. 361개의 교차점으로 이뤄진 반상에서 아이들은 이기는 기쁨과 지는 아픔을 모두 경험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승패가 명확한 게임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대국이 끝난 후엔 복기를 해보면서 함께 문제점을 찾아나가는 과정 또한 최고의 인성교육이다. 점수와 등수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경쟁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아이들은 바둑을 통해, 자신이 가져야 할 태도를 갖추게 된다. 놀이바둑의 교육적 효과는 교사들의 체감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 2015년 KBS는 유아 500여 명을 8개월간 조사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바둑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언어·인지 능력은 물론 정서가 안정되고 사회성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도했다. 연구에 참여한 김바로미 아동학 박사는 “바둑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교감하며 욕구와 충동 제어를 반복하게 돼 유아의 자기조절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놀이바둑의 흥미로운 효과는 교실 밖, 가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가 이것이다. “아이들이 아빠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스마트폰은 잠시 제쳐둔 채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서 아이와 부모, 심지어 조부모까지 3대가 어울리는 일이 연출된다. 세대 간 간극을 바둑이 메운다. 바둑은 소통의 창이 되고 있다. ■ ‘놀이’가 바꾼 어린이 바둑교육 지형 해달유치원을 시작으로, 지난 10년 바둑교육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초기 50여 개 시범 유치원에서 시작된 ‘놀이바둑’은 이제 전국 수백여 곳으로 확산되며 하나의 교육적 흐름을 자리 잡았다. 단순히 새로운 교육 콘텐츠 하나가 성공한 사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다. 지식의 양을 늘리는 속도 경쟁을 넘어 아이들 내면의 힘을 기르는 교육은 얼마든지 바둑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송선자 해달유치원 원장은 “앞으로도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아이들이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에 꾸준히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 해달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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