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바둑 (상)
대통령과 바둑 (상)
[바둑수첩] 정용진  2017-05-04 오후 03:55   [프린트]
▲ 1992년 3월 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만16세의 이창호가 바둑계의 전설, 린하이펑 9단을 3대2로 물리치고 최연소(정확히 16세 6개월 만에) 세계챔프에 오르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해 노고를 치하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절대 자기 속내를 비치는 법 없이 의뭉스럽게 기다리는 정치를 구사한지라 ‘강태공 스타일’인 이창호 9단의 바둑에 비유하곤 했다.


정치판과 바둑판은 닮은 데가 많다.정치가 본시 인간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일이고 바둑을 일컬어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였으니 교집합적인 요소가 있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다.

신문에서 뽑아내는 큼직큼직한 제목에는 의외로 바둑용어가 많다. 특히 정치면이 더욱 그러한데 이는 정치판이 바둑승부와 흡사한 면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승부수, 국면타개, 자충수, 악수, 묘수, 장고, 사활 등등의 낱말은 우리가 흔히 대하는 용어이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정계가 소용돌이 칠 때는 더 자주 눈에 띈다.

바둑이나 정치나 무리수는 통하지 않는다.

바둑의 원리는 ‘순리’다. 바둑판 위에서는 무리수가 통하지 않는다. 진로배에서 9연승 신화를 일궈낸 서봉수 9단은 승리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마음을 비우고 대국에 임했을 뿐”이라고 했다.

일찍이 한국바둑계의 대부 조남철 9단은 기력향상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런 비법이 있으면 오히려 내가 돈을 줄 테니 가르쳐 주시오”라고 우문현답했다.

의원 나리님들, 자칭 타칭 정치9단들 중 바둑을 즐기는 분들이 많다. 19대 대선에 나선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만 해도 유단급 실력이다. 설령 바둑을 모르는 후보일지라도 바둑 한판을 두면서 ‘두 집을 내야 대마가 살수 있는’ 기본원리 정도는 잘 아실 거다. 다른 거 없다. 부디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민주주의의 원칙,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이런 기본이 바로서고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명국(名局)’이다.

5월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역대 대통령들의 바둑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 삼아 소개한다. 원래 ‘정치판 바둑판’ 총 6편으로 풀어쓴 것을 상,하 두 편의 만화로 압축한 것이다. <1998년 '월간바둑가이드' 7,9월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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