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연 ' 나는 승부사다!'
조혜연 ' 나는 승부사다!'
수필집 '프로기사, 캠퍼스를 걷다' 출간
[신간] 김수광  2012-01-18 오후 04:10   [프린트]


수술을 앞둔 외할아버지께서는 병상에서 유언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혜연이가 루이나이웨이를 이기는 걸 보고 죽어야 할 텐데…”
어린 조혜연은 물었다.
“루이나이웨이가 누구에요? 제가 못 이기면 할아버지는 영원히 사시는 거예요?”
갓 바둑을 배운 조혜연은 프로기사가 뭔지 몰랐다.

11살 입단한 그해 조혜연은 루이나이웨이가 누군지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루이를 보해배 여자세계대회에서 처음 봤다. 추첨식에서 손으로 뽑아든 사람이 루이였다. 혜연은 졌다. 루이는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혜연은 그토록 멀고 길 줄 몰랐는지 모른다. 루이라는 대가와 같이 떠나는 여행이.

“한국팀은 조혜연이 빠졌으므로 이기기 수월하다.”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중국대표로 출전한 루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혜연이란 존재를 인정하는 좋은 의미일 수 있었던 이 언급은 심하게 비틀리더니 급기야 팬들의 원성을 촉발했다.
“이스라엘의 神을 위해 조국을 버릴 거냐”“개혜연”“미친년”

혜연은 팬들을 향해 썼다. ‘제게는 모든 대국이 동일하게 귀하며…’
그러나 심신은 피폐해져 갔다.

결국 바둑을 완전히 떠나기로 했다.

학업으로 전향하니 이번엔 주변인이 됐다. 바둑, 학교 어디에 속해도 눈총을 받았다. 생채기에 채찍질이 가해지듯 통증이 더했다. 정상급 기사라는 의미는 어느새 무색했다.

귀에 통증을 느껴 의사를 찾으니 ‘감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몸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하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약으로 고칠 수 없다고.’

그랬다. 감성에 상처가 깊었다.

혜연은 본디 상처에 강하지 못한 체질이었다.

5살 시절, 유치원 선생님은 혜연을 가르치길 포기했다. 혜연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몇 달째 책만 읽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폐 진단을 권유했다.

커서, 홍꽃노을 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땐 슬픔 못 이겨 망자를 대진표에서 더듬어 찾았다. 토하다 병원에 실려가곤 했다.

루이 9단에게 당한 패배의 아픔, 팬들의 공격으로 상처 입고 어지럽혀져 괴로워진 마음은 글을 쓰며 달랬다. 온몸으로 사활을 창작하고 학업에 몰입했다.

처절하고 잔혹한 승부의 본질과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사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 간극에 혼란스러워 몸을 뒤치었다.

그래도 바둑은 여전히 잊히질 않았다.

영문블로그를 만들었다. 외국인들이 바둑에 조금이라도 친숙해지길 바랐다. 음악 거장의 짧고 강렬한 연주를 들으면서는 ‘내 저렇게 바둑을 탄주하리라’고 다짐해버리곤 했다.

바둑을 배운 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조혜연은 자신이 둔 기보를 손수 기록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숭고미 같은 걸 찾으려 했었다. 그 미학적 측면은 수줍은 첫 사랑이었다. 동시에 좌절되고 전치된 욕망의 표기(signifier)였다.

그럼에도 기보 너머에, 기보가 본래적으로 담을 수 없는 ‘대국이 두어진 내적 시간과 장소’를, 애달파했다. 진정성 없는 기술성의 한계에 아쉬워했다.

기보 아니 기록은 자크 데리다(Jacquew Derrida)가 말했던 단지 ‘대리보충’일 수밖에 없는 건가. 노력해봤자 ‘위험한 대리보충’ 쯤인가…. 마침내 해체적 읽기를 향해 도전한다.

이 해체는 뼈대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뼈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힘들게 찾아나서는 인내의 작업이다. 그렇게 소극적 수용을 넘어설 때 시적(詩的)순간을 맞이하게 되며 그것은 장엄하다고 그녀는 믿는다.

“조혜연의 신간 ‘프로기사 캠퍼스를 걷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혜연은 서문에서, 욕심과 이기심이 승부사란 이름으로 용서받고 있었고 영혼은 덕지덕지 비곗살이 붙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책 말미에 그 기록은 욕망의 표기였다고 과감히 지적한다. 이제 그녀가 그리워하는 건 새벽처럼 맑은 영혼이다.

수많은 패배를 안겨준 루이, 백발 성성하도록 동행할 것 같았던 루이는 자신의 은인라고 용기 있게 말한다.

혜연은 지난해 학업을 계속하지 않기로 했다. 승부로 돌아오기엔 늦었다고 충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온다.

고스트바둑왕에서 ‘신의 한수’를 추구한다면 조혜연은‘장엄한 시적순간’을 찾아 나선다. 다시 돌아온 조혜연은 승부사다.

<프로기사, 캠퍼스를 걷다>
지은이 : 조혜연
출판사 : 창작사활 출판사▶ 바로가기 클릭
분량 : 292쪽
정가 : 10,000원

※ 한국기원 1층 판매장과 창작사활 출판사 홈페이지(http://www.hylifeproblems.com/)에서 구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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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리 ｜  2012-01-18 오후 5:54:00  [동감1]    
진짜 승부에 전념해 보시겠다고요? 대환영~
혜연사범님의 진가를 보고 싶어요~~~
하니리 ｜  2012-01-18 오후 5:04:00  [동감0]    
바둑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숙명.장엄한 신의 한수.그 의미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잇템플러 ｜  2012-01-18 오후 5:13:00  [동감0]    
대학도 졸업했고 이제부터 바둑에 올인하실 모양이군요.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
노깽이 졸업이 아니라 휴학같은데 졸업이면 그나마 공부 맘껏했다하겠지만 중도포기라서 바둑도 공부도 이도저도 안되는거는 아닐지 암튼 조9단 선택은 존중함  
북두5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는 것으로 압니다.  
나잇템플러 대학원 포기했다고 하는 거 같던데요. 그래서 바둑에만 전념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不滅★ ｜  2012-01-18 오후 5:57:00  [동감0]    
루이는 40대인 현재도 아직 세계 정상에 있는데요.
조9단 아직 늦지 않았어요. 승부사 조혜연 화이팅!
안데스의꿈 ｜  2012-01-18 오후 8:42:00  [동감0]    
조 혜연 프로님 사람은 아픔이 있었기에 더 성숙해지며 사는것이 아닐까요?
그간 마음 고생 많으셨습니다.허나 조 프로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는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앞으로 좋은 명국 기대 하겠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 프로님.꼬복
무구 ｜  2012-01-18 오후 9:22:00  [동감0]    
김수광기자의 글솜씨가 좋네요. 체력이 문제겠지만, 열심히 해서 남자기사들과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不滅★ 맞아요. 조혜연 사범 넘 앉아서 머리 쓰는 일만 하지말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길러야 세계최고기사 됩니당^^  
캐쉬리 ｜  2012-01-19 오전 12:13:00  [동감0]    
닥치고 주문!
도라온맹호 ｜  2012-01-19 오전 11:12:00  [동감0]    

김수광기자님.
문장이 감칠맛이나고, 단어선택이 신선하군요.
세큼한 와인맛의 글.. 잘 읽었습니다. ㄳㄳ
늘하늘 저도 동감입니다.상큼한 느낌의 글 감사합니다..  
종현아부지 ｜  2012-01-19 오후 1:03:00  [동감0]    
인생을 이렇게 어렵게 살필요가 있나요???
제주짠돌 ｜  2012-01-19 오후 2:19:00  [동감0]    
혜연아! 인생은 항상 2진법인 것같아.이걸 선택할 것이가 저걸 선택할 것인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그 결과는 자신의 몫인 거지. 그 선택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삼촌인 나도 비평은 할지라도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내가 내과 레지던트 2년차땐가 혜연이가 프로가 되어 대국이 중계가 될떄면 병원을 나와 바둑 중계를 보기위해 헤메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를꺼다. 네가 많은이 에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 지
수정돌 글쓴이 삭제
toronto2 ｜  2012-01-19 오후 2:20:00  [동감0]    
늘 말없이 기대하고 성원하는 팬의 한사람으로
출판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돼지곱창 ｜  2012-01-19 오후 3:06:00  [동감0]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적 사고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우리의 행태를 반성해야 겠습니다.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를 외치는 소수의 의견과 발언권을 존중해 주는 성숙한 시민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지7 ｜  2012-01-19 오후 3:16:00  [동감0]    
혜연아, 그래 너는 승부사의 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기고싶던 루이를 네가 2003년대구에서 여류명인전 우승하며 타이틀을 따내던 그날이 생각나는구나. 그날은 내가 너와 어머니에게 축하도 했지만, 타이틀을 잃어버린 루이가 그날따라 감기가 심해서 대국후에 휴지가 널부러진 채로 망연히 앉아있는 모습이 안스러워서 루이아줌마 (?)를 위로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해는 여류국수도우승하여 루이가 어느
안지7 ｜  2012-01-19 오후 3:23:00  [동감0]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조혜연이가 가장 두기힘들고 어렵다는 말도 했었지...초등학교5학년때인가, 대구에에 내려와서 내가 몇번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네가 타고난승부사란 걸 았앗지... 그래 혜연아 너는 천생승부사다. 다시한번 너의 힘을 보이고 부활하기 바란다. 화이팅 조혜연~~ 그리고 이지현이 최홍윤이도 다같이 화이팅했으면 좋겠구나~~! <<대구 안지김원장씀>>
백만기가 ｜  2012-01-19 오후 4:44:00  [동감0]    
그래요...바둑에 올인해주세요....방황하지 마시고....여류계에선 1인자 될겁니다..
문인 ｜  2012-01-19 오후 7:52:00  [동감0]    
조혜연 9단이 승부사로 돌아왔다니 기쁘다. 그런데 주일 시합이 있을 때 바둑을 둘 것인지가 궁금하다. 몇 년 전, 주일에는 바둑을 두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고 주님께서 조혜연을 프로로 만들어 주신 것은 주일에 일정이 잡히면 바둑을 두어도 된다는 뜻일 터이니 그냥 바둑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프로란 전문직업 아니던가? 주님께서는 누구가 되든 건전한 전문직업에 성실히 임하라 하실 것이다.
불꽃검신 ｜  2013-01-07 오전 11:13:00  [동감0]    
조혜연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저는 자칭 독실한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10계명중 제 3계명을 지킵니다. 특별히 주일미사를요...엄청나게 지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일하는 것은 관대하지요... 원래는 쉬어야 하지만... 저도 주일대국 고사가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혜연양의 뜻을 알고 감탄했어요...존중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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