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겨울을 나는 제비 

겨울의 폭설은 모두에게 너무나 큰 피해를 안기고 간다

몸이 근질거리는 겨울 일꾼들에게는 일감을 제공하는 고마운 공급처가 되기도 하지만

대충 들쳐 업은 아이의 팔이 밖으로 삐져나와 퍼렇게 찬바람에 시려가는 것도

눈치 챌 경황이 없는 새댁의 암담한 표정과 이까짓 것 쯤 별거 아니라며

애써 제 마음을 감추고 아내를 달래는 젊은 가장의 숨겨진 안타까움을 안고

양계장 비닐하우스 3동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참한 잔해를 남기고 부서져 있어

차량을 소지한 인부가 있다면 오지 않아도 좋았을 현장을 떠나며

차안에 잔뜩 실린 우울함으로 아무리 히터를 올려도 돌아오는 길은 춥고 멀었다

갑자기 힘겹고 지루한 동면을 깨치고 싶은 성급한 마음으로 흐르는 강물이 보고 싶어졌다

강변길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강둑 아래까지 내려가 봤지만

아직 강물은 수면 위를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돌아온 것은 자신의 계절이 허물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운 겨울이

봄을 향해 흐르는 강물을 막아서며 강 표면 아래로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얇아져 가는 江의 남은 얼음을 힘겹게 뗘 받치고 있는

앙상한 겨울의 어깨와 돌아서다 녹지 않은 얼음위로 또렷하지 않고 희미한

명섭氏의 얼굴이 일순간 떠올랐다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것만을 보았다

강둑을 떠나며 표면부터 생겨날것 같은 얼음은 보이지 않는 수중에서 부터 먼저 얼어야만

다시 표면으로 올라와 江을 얼리는 얼음의 생성 과정이 불현듯 생각났다

빙점(氷點)을 지나온 사람의 대한 그리움도 江과 같은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중에서 생겨나 얼어오며 마음 표면으로 떠오를 쯤엔

이미 자신이 마음대로 흘려 보낼수 없는 얼어붙은 마음의 江처럼

얼굴을 마주하며 부대끼고 살때는 전혀 깨닫지 못한 그의 대한 연민은

헤어진 다음에야 수중에서 떠올라 표면을 덮은 얼음 처럼 겨울의 늦 손님이 되어

내 마음 한켠을 두텁게 얼리고 떠나지 않고 있었음을 알았다

명섭氏는 보이지 않았지만

간간히 들어오는 일을 기다리며 방구들에서 등을 뗀 일꾼들이

하나둘 비어있던 의자들을 채우며 모여들기 시작하자

명섭氏에 대한 소식의 조각들도 하나둘 모여 들고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마누라가 왜 폐암으로 죽어가야 되나며 사흘을 징징 울어

내게도 적지 않은 돈을 가불 형식으로 가져간 후 입원한 부인의 병간호로

통 얼굴을 볼수 없던 처음 그를 데리고 일을 나갔던 수택동 박氏가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며 그의 행적을 추측케 하는 단서를 한 가닥 안고 나왔지만

오히려 그의 대한 의혹만을 증폭 시키며 나를 미궁 속으로 더욱 깊숙이 밀어 넣고 말았다

“그렇게 가까웠음시로 뭔 소장이 인부들과 연락도 않되고

허는일이 으째 요러코롬 시원치 않타요!"

병간 하느라 통 먹지 못했다지만 소주 한 두병에 취할 만큼 박씨의 주량은 작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면 일꾼들과 연락이 함께 끊기는 인력 사무실 생리를 잘 알면서도

공연히 건주정을 부리며 소식 타령을 하던 박씨가 털어놓은

명섭氏의 얘기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은 황당하기 까지 했다

밀려있던 병원비 300만원 돈을 치루지 못해 슬슬 피해 다니던 원무실에서

호출을 하도 계속해대는 통에 할수없이 내려갔다가 박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었다고 얘기를 전하며 목이 메더니

밀려있는 병원비 계산을 훌쩍 넘는 1.000만원을 원무실에 맡긴 바람에

동반 자살까지 생각했던 우리 두 부부를 살렸다고

아무런 생색도 안내고 문병을 태연히 하고간 명섭氏를 말하며

박씨는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흘려내는 눈물을 굳이 닦으려 하지 않았다

“동기간들도 그렇게는 못헐것이요 암만 이지라!

그 사람은 우리 부부 헌티는 은인이요 은인

소식 닿걸랑 내게도 연통 넣는것 잊지 마시요 꼭 이요 꼭!“

몇 번을 신신 당부하며 박씨가 떠난 뒤에도 나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인연이라곤 아무리 꿰맞춰도 함께 일 다닌것 말고는 끄집어 낼것 없는 박씨에게

그 작지 않은 돈을 숨어서 선뜻 주고간 그는 도대체 무슨 사람일까?

무얼 하던 사람일까?

추리가 불가능한 수수깨기를 푸는 답답함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날이 지나며 하나둘씩 늘어만 갔다

동대문 시장에서 재단을 하다 막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덕소의 영환씨는

급성 폐렴을 앓던 아이의 수술을 명섭氏의 도움으로 치뤘고

사채업자에게 도박 빚을 얻어쓴 아들 때문에 길바닥으로 내몰렸던

동구능에 사는 임씨도 수업료가 밀려 학업을 중단했던 양씨의 아들도

모두 명섭氏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소리 내지 않고 그가 도와준 사무실의 나오는 일꾼들은 그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였다

서로간의 말들을 추리다 모든 일들이 그가 사라지기 직전에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찾았지만 엉킨 실타래를 푸는 끄나풀은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주섬주섬 모아보니 그가 쓰고간 돈은 거의 3.000만원에 육박하는 큰돈으로 불어났고

불어난 금액에 비례헤 내 궁금증도 더 부풀어갔다

머리를 어지럽게 휘져대는 추측의 난무로 봄을 준비하며 거래처를 늘려야하는

바쁜 시기의 내 발길을 의문에 밧줄로 꽁꽁 묶어 놓쳐버린 일손과 함께

멍한 공황상태의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던 어느날

지리산 천왕봉에서라고 쓰여진 꽤나 두툼한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보낸 이는 한동안 나를 의혹의 미로로 몰아넣었던 명섭氏 그 사람 이였다

꽤 많은 분량의 글은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 않은 왼손으로 쓴듯

똑 바르진 않았으나 읽기에는 불편하지 않게 잘 정서되어 보내진 것임을 알수 있었다

봉투를 열고 봤던 구구한 인사를 생략한 그의 글은

내가 할수있는 상상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본인은 담담하게 풀어내려 하고 있었지만 보통 지나는 흔한 일로 치부하기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의 유별난 행동이 보여 주었던것 처럼

말머리의 적혀 있는 그의 글도 나를 너무도 놀라게 하며 이렇게 시작 되고 있었다

“나는 제비 였습니다

제비는 쓰리꾼인 소매치기를 이르는 은어이기도 하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