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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제 4 회>

2008-12-18 오후 11 조회 5391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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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3월의 봄이 찾아왔다.

막 집을 나온 현욱은 여느 때처럼 아이팟을 귀에 꽂았다. 아직은 쌀쌀한 봄기운에 외투 주머니에 절로 손이 갔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만지작거렸다. 아마 쓰레기나 영수증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무심히 꺼냈다.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꾸깃꾸깃한 만원짜리 지폐였다. 현욱의 표정은 자연스레 밝아졌다. 구겨진 지폐를 고이 펴서 지갑에 넣고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역은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늘도 대략 40분 동안 많은 사람들 틈에 가야 할 생각을 하니 한숨만 터져 나왔다. 이내 지하철이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이 하차했고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승차했다. 다행히 손잡이는 잡을 수 있었다.

지하철은 다시 출발했다. 다음 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왔다. 그때 앞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은근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임산부는 물론 노약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을 필요 없이 당당하게 앉았다.

개강 첫 날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만 원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탔던 지하철… 아니, 지옥철에서 생전 처음 앉아서 한가롭게 등교까지… 연이은 행운에 현욱은 연신 신났다. 게다가 언제나 대학교문에 들어서면 달갑지 않았던 오르막길도 오늘은 가뿐하게 올랐다.

사회과학관 건물로 다가가자 2학년부터는 전공수업 중심이라 그런지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게다가 개강 첫날이라서 1교시부터 시작되는 강의에도 강의실은 많은 학생들로 활기찼다. 물론 현욱도 다른 학생들의 기세에 질세라 교수의 말 한마디에 집중했다. 반면 그의 단짝 영섭은 약간의 눈의 출혈과 곤죽인 모습이었다. 강의가 끝나서야 기지개와 하품을 동반하며 칭얼댔다.

“정말 1교시 수업은 너무 힘들다, 힘들어! 오늘 하루만 1교시 수업이라면 내가 어떻게 버텨볼 텐데… 목요일 빼고 다 1교시라니… 정말 환장하겠네!”

현욱은 그의 불평에 익숙해진 듯 어깨를 토닥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들 1교시부터 나와 수업 듣고 싶겠어? 2, 3학년 때 빡세게 학점 채워놔야 4학년 때 취직에만 올인할 수 있잖아. 어서 다음 강의실로 가자.”
“누군들 그걸 모르겠어? 그러니깐 더 짜증이 나는 거라고! 암튼 다음 강의실로 가자! 근데 이번엔 어디야?”
“308호!”

현욱의 대답에 영섭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 정말 내가 너 없었으면 어떻게 학교 다녔을지 상상만 해도 갑갑하다.”

현욱은 피식 거렸다.

“그러냐? 나는 너 만나는 바람에 학교 다니는 게 더 갑갑한데?“

영섭은 발끈하며 현욱의 목을 장난스럽게 조였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내가 네 도움을 많이 받는 건 인정하는데 너한테 술이랑 밥도 자주 쏘잖아! 벌써 잊었냐? 그리고 너는 내 도움 평생 안 받을 줄 알아? 두고 봐! 너도 내 도움 받을 일이 필히 있을 거라고! 그러니깐 너무 건방떨지 말라고! 알았어, 신현욱?”
“그래, 그럴 날이 꼭 오길 바란다!”

현욱과 영섭은 계속 티격태격하며 308호 강의실로 들어섰다. 이미 다른 학생들로 드문드문 자리가 채워졌고 언제나처럼 맨 뒷자리에 앉았다. 영섭은 책상 위에 가방을 두고는 마치 베개 삼아 머리를 맡겼다. 반면 현욱은 교재, 노트를 펴고 필기구까지 가진런히 꺼내 강의에 임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때 강의실로 한 무리의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 여학생들 중 유독 현욱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노란색 니트도 아니고 붉은 체크무늬 치마도 아니었다. 보라색 코트 차림이었지만 뽀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에 검은 생머리까지… 게다가 어느새 쿵쾅대는 현욱의 심장을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그녀였다.

한혜린…

현욱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영섭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뭐야?”

영섭의 말과 시선에도 현욱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갔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오늘 운이 좋긴, 좋은 날인가 보네.”

그의 뜬금없는 말에 영섭은 당연히 반문했다.

“뭐? 운? 무슨 말이야?”

현욱은 계속 말을 이었다. 여전히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왜 내가 전에 말했지? 정말 예쁜 사람을 봤다고…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봤다고… 근데 그 사람이 지금 내 눈 앞에 있어! 내 눈 앞에 있다고!”

영섭은 깜짝 놀라며 얼른 고개를 들었다.

“뭐? 누군데?”

현욱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계속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저 보라색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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