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었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초췌한 걸승 한명이 찾아 들었다. 걸승은 추운 겨울 한철만 같이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절의 모든 승려들은 꾀죄죄한 그의 행색과 몰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승려들이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걸승은 ‘불목하니’를 자청하고 나섰다. 밥을 짓고 나무를 해다 나르는 ‘부목’이란 말에 그 절의 승려들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받아 주었다.

걸승은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이 맡은 부목 일만을 묵묵히 했다. 시간은 지나 어느덧 동안거가 끝나는 해제 날이 되었다. 그 절의 모든 대중들이 법회가 열리는 법당으로 모여 들었다. 주장자를 높게 치켜든 그 절의 큰스님이 일갈했다.

“동안거 동안 깨달은 자 있으면 나오라! 이 법단에 올라 그 법을 설하도록 하라!”

감히 앞으로 나오는 자가 없었다. 법당은 찬물을 끼얹은 듯, 긴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맨 말석에 앉아 있던 걸승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법단으로 올라가서 큰 스님의 주장자를 받아 들었다. 많은 대중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걸승이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장자를 받아든 걸승이 세 번 내리친 후, 큰소리로 말했다.

“이곳의 지명 이름이 ‘보은’인데, 이곳 주민들에게 공양을 얻어먹고 진정으로 보은 한 자 있으면 일어서라!”

힘이 실린 걸승의 목소리는 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걸승은 또다시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친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이곳의 산 이름이 ‘속리산’인데, 진정으로 속세를 떠난 자 있으면 일어서라! 마음은 콩밭에 있으면서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었다고 다 속세를 떠난 것은 아니리라!”

이번에도 일어나는 대중은 아무도 없었다. 싸늘한 눈길로 대중들을 한 바퀴 둘러본 걸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의 절 이름 또한 ‘법주사’인데, 불가에 귀의하여 불가의 법에 정통한자 있으면 일어서라!”

법당은 온통 쥐죽은 듯 조용했다. 대중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을 한 바퀴 휘둘러보던 걸승이 다시 한 번 주장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런 버러지 같은 중놈들을 등 뜨시게 쳐 먹이려고 내가 겨울 한철을 쓸데없이 정성을 다하였구나!”

라는‘ 말을 남기고 걸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을 총총히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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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누구나 다 알 듯 선험 즉, 깨달음의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학문은 경험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학문은 그저 경험으로 가는 방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 불교의 작태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자꾸 겉치레의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심지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거나, 나이 사십이 넘으면 아예 승려로 받아주지도 않지 않는가 말이다.

요즘은

속세에서도 능력이 아닌 학벌만으로 판단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이 심한 마당인데, 더욱이 그런 속세의 폐단을 근절시켜야할 종교에서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땡초들이 있다면 목탁으로 대갈통을 확 뿌셔버려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알량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만약 다른 종교와 담론이 벌어졌을 때든지, 포교에서 유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또는 불교는 학벌이 높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기준을 만들었겠지만, 그것은 불교를 중흥 시키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불교를 고사시키는 한심한 작태이다.

또,

수행자들의 학벌을 높여 경험 즉, 깨달음은 뒤로하고 종교를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본질을 변질 시키는 해악이다.

이러한 작태를 부리는 승려들은 붓다의 옷을 입고, 붓다의 방애 앉아 붓다의 경을 외지만 붓다의 제자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붓다도 그런 제자는 원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