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꺼져있어 소리 샘으로……’

 “이상하네.”

 기영이 핸드폰을 닫으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무슨 일인데?

옆자리에 있던 진호가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그냥 뭘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몇 시간 째 전화기가 꺼져있네.”

“그래? 누군데?”

진호가 눈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바둑 선생님.”

“아, 급한 일이야?”

“아니 그냥, 사실은 인터넷에서 바둑 입문을 위한 온라인 강좌를 하나 봤는데 내가 그걸 보면 수업진도도 빨리 나갈 수 있고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런 건 물어보지 말고 몰래 봐야 제 맛이지.”

“왜?”

“그래야 선생님이 네가 바둑에 재능이 많다고 생각할 거 아냐.”

“하지만……”

“김 대리님, 팀장님이 찾으시는데요?”

기영이 얘기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이 주임이 말을 전했다.

“나 가봐야겠다. 나중에 얘기하자.”

“응. 행운을 빌어.”

“팀장님 찾으셨어요?”

“네.”

“팀장님 저번 일은......”

“저번 일은 박 대리님이 새로 맡기로 했습니다.”

팀장이 기영의 말을 단호하게 끊으며 말했다.

“팀장님”

기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으며 단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다.

전에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김대리님은 그 일이 아니더라도 하던 일이 많으니까 우선은 거기에 더 집중하도록 하세요. 앞으로도 큰 일은 계속 생길 테니 조바심 갖지 말고 더욱 자신을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 법이라는 걸 명심하시구요.”

기영이 말을 잇지 못하자 팀장이 어린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기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만 전화 좀 받을게.”

기영이 진호와 얘기하다 말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빠! 전화 괜찮아?”

전화기 너머 지영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오빠 오늘 저녁에 안 바쁘지?”

“진호랑 한 잔 하러 가기로 했는데, 왜?”

“그래? 둘이서?”

“응”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될까?”

“잠시만”

기영이 진호를 쳐다보자 진호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지영씨야?”

기영이 핸드폰을 닫기 무섭게 진호가 물었다.

“응. 무슨 일 있나 본데? 원래 이렇게 갑자기 보자고 하는 일이 잘 없거든.”

“지영씨는 너랑 안 닮았지?”

진호가 기대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일은 다 마무리 된 거야?”

기영이 진호의 질문을 못 들은 척, 자리를 정리하면서 물었다.

“응, 가면 돼.”

진호가 허리를 뒤로 젖혀 크게 기지개를 펴며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빠!”

요란한 음악과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영이 뒤를 돌아보니 지영이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진호 라고 합니다.”
지영이 다가오자 기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김지영이에요. 오빠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지영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 했다.

“저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진호가 궁금하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대학 시절부터 마음도 잘 맞고 해서 가깝게 지낸다고 했었어요. 특별한 얘기는 아니죠? 뭐 기대한 얘기라도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근데 오늘 어쩐 일이야?”

지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영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나 아주 좋은 소식이 있어! 오빠한테 먼저 자랑하고 싶었거든.”

“뭔데?”

“나 드디어 취직했어!”

지영이 자신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어디에?”

“놀라지마, 휴….심호흡 좀 하고……어디냐 하면……”

“야, 뭘 그렇게 뜸을 들여? 얼른 말해봐.”

“선진 문화일보”

“정말? 그럼 기사 쓰는 거야?”

“물론이지! 아직 어느 부서로 가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잘 됐네! 축하해, 예전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잘 됐다.”

“지영씨 축하해요.”

옆에 있던 진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오빠.”

“고맙긴, 우리 축배를 들어야지?”

기영이 자신의 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당연하지!”

진호와 지영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뒤따라 잔을 들었다.

“지영이의 험난할 기자 생활을 위하여!”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