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변산 쪽을 여행하다가 반도남단의 내소사를 지나게 되었다.

산사 초입엔 비가 내려 안개가 산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내소사 초입에서>

여행지의 수묵화에 세필을 들고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려 드는 것은 도저히 성미에

 맞지않다. 더구나 술 한잔 취해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하라해도 못한다.

소싯적에 잠깐 배우다가 만 서예를 수십년 지나서 붓을 드니 손은 떨리고 실력도 딸린다. ㅡ.ㅡ

그냥 대강 그려놓고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 차분히 다시 한번 그려볼 기회 되면 이창호 정석,포석, 오청원 신포석, 사까다 중반, 맥점,

유창혁 공격, 월간바둑 6월호 이세돌. 마법의 뒤집기 끝내기책 다 갖다 놓고 참고해서 그릴 것이다.  ㅎㅎ

변산 반도의 산중을 거닐다 야생 난을 발견했다.

이병기 선생은 난을 두고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微塵도 가까이 않고 雨露받아 사느니라."고 노래한 바 있다

바위틈에 피어난 난은 예로부터 선비의 기상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석난은 선비의 기상이 아니라,
한 취중 나그네의 술 취한 바위와 잡초일 뿐이다.

이 날 어느 시골을 지나다 본 이름모를 작은 폭포를 하나 그려봤는데
내가 봐도 정말 잘 되었다. 어디 전시회에 출품해도 될 정도로 ...
나중에 그걸 찾으니 어디 뒀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두서가 없는 것은 취중 화선지 위의 호작질과 비슷하다.


언젠가 밀양을 지날때 이십여년 전에 놀러갔던 적이 있는 긴늪이란 곳을 찾았다.

그 때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긴늪이 어떤 곳인지 판단하고 자시고가 없었다.

요새 본 긴늪은 그냥 조경 평범한 송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 광경을 묘사하던 중 갑자기 취기가 오르는 바람에 강 중간에 뭔가를
더 넣으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산수화는 여백을 남겨 놓음으로서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에 이대로 넵두기로 했다.
이런다고 머라 하실 분, 님, 귀하, 선생님, 짭새, 오로 겐세이 등 아무도 없기에... ㅎㅎ



몇년 전 가을에 홀연히 집을 나서서 단양 팔경을 구경 갔었다.
말이 팔경이니 어쩌니 하지만 왕년의 수려하고 멋진 단양 경치는
없어진지 오래다.

아무개 네 고향 뒷산보다 더 못하니... 이게 다 사람들이 충주댐 인지 뭔지 땅을 훼까닥 파 놓은

탓이다. 예전에 흐르던 우르릉 탕탕~~!!  하는 가슴 진탕시키는 물줄기와 굉음은 하나도 없고

이끼 낀 추레한 바위만 폐수같은 물사이로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으니 산천은 의구하단 말도 말짱

헛거다.

 * 물줄기 모으는 작은 댐하나에도 이 모양 요 꼬라지이니...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대운하를

  파면  환경이  엉망진창 될거라는 저자의 확실한 해설 참고도임 

  ( 2008년 5월 27일 저자 주 : 본 글은  오로 사이트의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혼자 강력히 떠듬 ) 

암튼.. 그래도 단양군은 아직 한국 지도 명승지에 그 이름 있다고 떠억~ 자랑하고
가는 곳마다 주차료, 입장료를 씩씩하게 받아 챙긴다.

아...... 산허리에 맑은 물 우르르릉 탕탕! 하던 옛 시절 그리워...

(월악산의 달빛 대밭)

그래서 그날 저녁,

건천으로 변해 쪼그라든 한국 산하(山河)에 뿔따구 나서 어느 시골 주막에서 막걸리를 들이켰는데
아...!  그것은 슈퍼 소매용 막걸리가 아니라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전통 밀주였다.

집에서 담근 밀주... 누룩과 고두밥으로 빚은 동동주...

왕년에... 

30여년전  DMZ에서 군바리 시절  철책 근무하러 나갈 때,

즉, 오로의 은빛하늘씨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아니 아직 잉태 되지도 않았을 때 ...

인근 농가에서 빚어 두었다가 군바리들에게 맛보여 준 알딸딸 쌉싸름한 밀주의 맛 그대로 였다.

명월은 커다랗게 월악산 허리에 떠 있고
나는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대청마루에 앉아 아마득한 밀주를 마시니
그날 단양의  잡친 기분이 저절로 스르르 풀려 졌다.

달빛 아래 대나무는 그래서 화가 난듯, 그러나 뭔가 기쁜 호기를 부린듯 하다.

이상, 여행지의 호작질 2 였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