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1일..

가을이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뜻하고.. 그렇지만 찬바람이 제법 매섭다.

결혼식 이야기로 바둑리그 서울투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인사하기 바빴던 은하는..

대국실로 피난(!)을 와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남은 시간엔 행사장 이곳 저곳 구경을 할 생각이었는데..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인지.. 벌써 조금 지쳤다.

오늘 최소한 계시 두 판은 해야 하는데.. (결국 세 판을 다했다 ㅜㅜ)

아무래도 구경보단 미리 쉬어두는게 낫겠다 싶어.. 구경을 포기하고 대국장 앞에 마련 된 쇼파에 앉으니..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

서울투어 개막식을 앞두고..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낸다.

저 쪽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다가온다.

KIXX팀의 박승철, 이희성 사범님..

벌써 여러번 KIXX팀의 회식자리에 함께 했던 후라 자주 마주친 반가운 얼굴^^

은하 : 오늘 이희성사범님은 첫 판이네요?

이사범님 : 그러게.. 아~ 은근히 덥네 여기..

은하 : (맞다.. 말놓기로 했었지..) 나 오늘 부채 여러개 가져왔는데.. 빌려줄까?

이사범님 : 땡큐지! ^^

예전에 나도명강사 게시판에 이벤트를 하며.. 오로 식구들께 약속한 싸인부채..

이를 위해 서울리그 며칠 전에 인사동에 가서 부채를 잔득 사왔다.

'오늘은 꼭! 싸인부채를 만들어가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부채를 여러개 챙겨 온 은하.

'이 부채는 이희성사범님이 대국 중 썼던 부채에요~'라는 메세지도 동봉하면.. 울 오로식구들 더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에 절로 신이난다.

이런 은하의 음모(!)를 모른 채.. 부채를 냉큼! 받아드는 이희성 사범님.

은하 : 박승철 사범님두 부채 빌려드릴까요?

박사범님 : 저는 오늘 바둑 안둬요^^

아! 맞다..ㅋㅋ 그것도 잊다니.. 나 계시원 맞어?

가만..! 박승철 사범님은 오늘 대국이 없다고..? 그럼 여유가 있다는거네~~

오예~~ 그럼 싸인받아야겠다 ^^

지난 경주투어 이후.. 사범님들께 싸인을 받을 노트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간밤에 열심히 만든 싸인북을 꺼내들었다.

싸인이 구겨지지 않도록 표지도 두툼하게 만들고..

비닐 포장도 하고.. 은하 사진도 붙이고..

그리고 첫 장엔 한상훈 사범님의.. 둘째 장엔 박영훈 사범님의 싸인을 붙여놓았다.. ^^

은하 : 사범님~ 저 싸인 해주세요^^ 글도 써주시구요~~

박사범님 : 그래요. 와~ 노트 이쁘네요.. ^^

무뚝뚝해보이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눈 웃음이 매력적인 박승철 사범님.

지난 광주 투어 때 뒷풀이로 함께 노래방을 간 적이 있는데..

노래 선곡부터 가창력까지..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

준비해간 싸인북과 붓펜을 받아 든 박사범님.

붓펜을 왼손으로 쥔다.

은하 : 어? 왼손! 바둑 두실 땐 오른손이었던 것 같은데.. ^^

박사범님 : 씨익~ ^-----^

박사범님의 왼손 표 싸인.

힘이 느껴진다.

꾹꾹 눌러 쓴 싸인.

두꺼운 재질의 종이인데도 뒷장까지 붓펜 잉크가 뭍어 날 정도로 힘 주어 쓴 필체가 인상깊다.

그리고 남겨준 한 마디.

"항상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아요"

왠지 모르게..

앞으로도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어야 겠다는 책임감(!)이 마구마구 들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이희성 사범님.

사진기를 만지작 거리는 은하를 보고 빙긋 웃는다.

이사범님 : 내가 찍어줄까?

은하 : 응! 센스쟁이~ ^^

그런데 사진기를 받아 든 이사범님..

전원버튼을 못찾고 헤맨다.. 그러고보니 어째 손도 떠는 것 같다..

은하 : 뭐야! 손떠는거 아니야?

이사범님 : 아니거든!! 나 사진 잘찍거든!!

은하 : 아 불안해~~~

이사범님 : 둘이 좀 친하게 찍지? 표정 굳었거든? ㅋㅋㅋ

은하 : 안굳었거든~~ 제발 알아볼 수 있게만 좀 찍어죠~ 기념사진이라구~~~

그러나 은하의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

은하가 찍은 여느 사진보다 멋져보인다.

맘에드는 사진..

은하 : 감사감사~~ 당신도 싸인을 하시오!!

이사범님 : 난 대국 이기고 할께 ^^

은하 : 죠아써! 내 부채덕분에 이길꺼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 이사범님은 지셨다.

아.. 왠지 죄송.. ㅜㅜ

그렇게 1국이 끝났다.

은하가 맡은 대국은 이창호vs목진석 사범님의 바둑이었는데..

이창호 사범님의 승리..

계가를 마치고 승패가 확정 된 후..

돌을 거둔 목사범님.. 은하에게 조용히 목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 쓸쓸한 뒷모습에 가슴 한켠이 시렸다.

이 순간 만큼은 승자와 패자를 동시에 봐야 하는 내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말하자면.. 계시원의 숙명인것을..

승리를 했지만.. 표정으론 승패를 짐작하기 힘든.. 무표정의 이창호 사범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다 말고 두리번 거린다.

가방을 찾으시나보다.

대국 시작 전.

빈손으로.. 혹은 부채를 들고 나타나는 다른 사범님들과 달리 이창호 사범님은 작은 가방을 들고 나타나셨다.

자리에 앉아 이창호 사범님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에서 얼린 손수건을 꺼내 반상 옆에 놓기.. 그리고 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그리고 가방은 의자 옆에 놔두었는데.. 그걸 본 스텝분이 은하에게 손짓을 했다.

카메라에 걸리니 가방을 좀 치워달라는 뜻..

그래서 은하는 이창호 사범님의 가방을 은하 가방과 함께 계시 책상 밑에 넣어두었었다.

은하의 커다란 가방과 이창호 사범님의 조그만 가방을 포개어 두니.. 그 크기 차이가 마치 엄마랑 아기같아 슬핏 웃음이 나왔다.

은하 : 가방 여기있어요 ^^

이창호 사범님 : 감사합니다.

은하 : 승리 축하드려요~

이창호 사범님 : ^^

이창호 사범님의 눈이 살짝 반달이 된다.

좀전까지의 무표정보다 훨씬 보기 좋다. 

아참! 명해설자님이 이창호사범님 싸인을 받고싶다고 했었지!

은하 : 저기.. 많이 피곤하시죠?

이창호 사범님 : 아니에요. ^^

은하 : 그럼.. 음.. 싸인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니.. 싸인 두개.. ^^  제가 아는 분도 받아다달라고 하셔서요..

이창호 사범님 : 그래요..

붓펜과 부채를 받아 든 이창호 사범님..

펜 뚜껑을 열고.. 부채를 잠시 바라본다.. 부채 어느 부분에 싸인을 할 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은하 : 크~~게 해주세요.. 부채에 꽉~ 차게 가로로..

그러나 은하의 말과는 달리 정 가운데에 세로로 싸인을 해주시는 이창호 사범님.

이창호 사범님 : 이렇게 하는거에요.. (하고는 멋적다는 듯 은하를 본다.)

은하 : 어! 이렇게 하니 더 이쁘네요 ^^  제 싸인북에도 부탁드려요~ 한마디도 남겨주시구요..

은하의 싸인북을 받아들고 싸인을 하는 이창호 사범님.

사진 찍어도 되냐는 은하의 말에 카메라를 쳐다보는 센스까지 ^^

그리고 어떤 글귀를 남길까 잠깐 고민하는 찰나에.. 갑자기 들어온 방송스텝.

승자인터뷰를 해야하니 나오시라고..

그래서 안타깝게도 글귀는 못받았다는.. 흑흑 ㅜㅜ

그래도 이창호 사범님의 사진과 싸인이 남아서 너무너무 좋다 ^^

사진 함께 찍고 싶었는데.. 하필 이때 대국장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ㅜㅜ

아래는 오로식구 명해설자님께 전해드린 부채와 KIXX팀 마크.

KIXX팀 마크는 이창호 사범님이 옷에 붙였던 것인데..  예전에 스튜디오에서 계시할 때 얻어온 은하의 보물.

이날도 이창호 사범님이 붙였던 마크.. 얻어오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깜빡 잊었다..  

이날은 무려 3판의 대국 계시를 연속으로 했는데.. 마지막 계시까지 마치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마치 체력장을 끝낸 듯.. 목과 어께가 뻐근하다.

어께를 두들기며 대국장 밖으로 나오니 최철한 사범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늘 밝은 표정과 환한 웃음에 귀여운 덧니는 옵션^^

독사라는 별명이 정말 안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겸둥철한 사범님..

최사범님 : 저녁먹으러 가야죠!

은하 : 그러게요~ 배 너무 고파요!!

최사범님 : KIXX팀이랑 갈꺼죠? 나도 갈껀대.. 우리 같이 빈대(!!!!)붙어요 ㅋㅋㅋ

은하 : (졸지에 빈대가 된 은하ㅋㅋ) 죠아요! 빈대 두마리 출발~~~ ^^

이사범님 : 그래그래~ 그게 재밌지~ 얼른 가자가자~

은하 : 그래 가자! 고고씽~!!

어느새 다가온 이희성 사범님까지 합세..

그러고보니 KIXX팀 선수들이 다 모여있네..

이희성 사범님은 오늘 패배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듯..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속상할텐데.. 그래도 티 내지 않으려는 듯 애써 밝게 웃는 어른스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면 자존심이 상하겠지?

이희성 사범님은 프로니까..

은하는 그냥.. 평소처럼 명랑하게.. 그렇게 이희성 사범님을 대하기로 했다.

은하 : 자아~ 출발!!!

이사범님 : 출발~~~

그런데...

아차! 우리는 어디로 갈지 모르지~~

아직 출발하면 안된다! 정말 중요한 그 분!! 대장님(백감독님)이 빠졌다구~~

대장님(!)을 기다리며 수다에 빠진 세 명.. 아니, 빈대 두 마리와 사람 한 명?

은하 : 철한싸부~~ 희성싸부~~  나 싸인싸인~~

이사범님 : 다음에.. 이기는날 해줄께~ 흑 ㅜㅜ

은하 : 죠아써! 완젼 그날을 기다리구 있을께~ ^^  철한싸부~~ 싸인싸인~~

최사범님 : 오케이! 오~ 노트 이쁘다.. 근데 어디서 하지? (두리번 두리번)

셋은 두리번 두리번 싸인 할 곳을 찾기 시작..

행사장 한 가운데 있는 테이블을 발견.. 화분을 위해 가져다 둔 모양이다.

정성스레 싸인을 시작한 최철한 사범님.

그리고 벌써 사진기를 들고 옆에서 대기중인 센스쟁이 이희성 사범님.

사진 속 표정이 너무 맘에 든다.

사진을 찍어 준 이희성 사범님. 너무 멋진 표정과 포즈의 최철한 사범님..

무한 감사를 전합니다!!!!

그러나!

이희성 사범님!! 사진 흔들렸다고요~~~~!!! 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