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빅이벤트가 두건이군요.

지금 진행되는 농심배 이창호와 창하오 대전과 저녁시간에는 남북 축구대결이 있군요.
여하간 한국이 이겼으면 하는 바램이야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한가한 오후 사무실에서 끄적끄적 몇자 적어 봅니다.

바둑을 둔지 어언 40년이 가까워 오나 봅니다.

둔한 머리 탓에 나이 30이 훨씬 넘어서야 세칭 얘기하는 1급이 되었고,
지금은 온라인 바둑사이트에선 5단정도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오로에야 저보다 훨씬 더 고수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오랜 취미인 바둑에 대해
한번은 적고 넘어 가 보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적어 봅니다.

글재주 없는 저는 그저 잡설 위주로 한 5회 정도로 연재해 볼까 합니다.

1.바둑이야기 - 첫번째

<바둑의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하면 자칫 개념글에 머무를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을 그저 생각나는대로 휘갈겨 볼까 합니다.

독설가 서봉수는 바둑이란 "흰돌과 검은돌을 나무판자위에 번갈아 놓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만 과연 그 다운 명쾌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이란 돌을 번갈아 두어 서로 많은 집을 차지하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죠.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던가 바둑의 각 착수점은 우주를 형상화하여 천원은 하늘,
화점은 땅을 지칭한다던가 하여 바둑을 "신선놀음"화 하려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바둑은 명쾌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바둑은 흑과 백의 대결, 즉 생존경쟁 게임입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결과인 <집>의 많고 적음으로 그 승부를 가리는 것이죠.

역시 독설가인 서봉수는 이런 바둑의 요체를 일찍부터 갈파하여

"흔히 바둑을 두고 조화니 화합이니하는 말들을 하지만 바둑은 외려 대립과 투쟁
전쟁 이런 말들에 가깝다" 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잠시 서봉수 얘기가 나온 김에 그에 대한 얘기로 한번 빗나가 보죠.

서봉수가 조훈현에게 연전연패하던 어느 즈음, 한 바둑 관전기자가 그에게 해외여행을
권합니다.

서봉수는 분위기 전환겸 호주등으로 약 2개월에 걸쳐 해외여행을 하게 되죠.

그런데 이 해외여행이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야급니다.

국내에선 어딜 가도 서봉수란 이른 석자로 대접을 받던 그, 나름대로 오만과 자아도취에
쌓여 있던 그가 외국엘 나가 보니 그 자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겁니다.

영어를 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나? 바둑외에 다른 걸 아는게 있나?

비로서 서봉수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 온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국어사전을 사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물의 가장 근원적인 근본 뜻을 알기 위하여......



잠시 얘기가 어긋났습니다만 바둑의 본질에 대한 얘기로 돌아와 보죠.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이창호의 등장은
바둑의 개념을 바꾸는 혁명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소년기사가 파죽지세로 중견기사들을 꺽고 국내 1위로
등극하자 "바둑의 道가 실종되었다"며 개탄한 분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녹아 있지 않은 바둑은 바둑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실 만큼 바둑을 일종의 道로 해석하고 계셨던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러한 바둑에 대한 개념은 급변하여 바둑은 스포츠로 분류되어
체육부에서 관할하게 까지 됩니다.

스포츠로서의 바둑은 기존의 道 나 藝로서의 바둑개념을 일거에 무너뜨리게 됩니다.

작금의 바둑이 너무 이기기 경쟁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저는
현재의 바둑조류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15년전쯤 제가 처음 하이텔에서 온라인 바둑을 두던 시절.

요즘이야 마우스로 그냥 착점하면 되지만 그 당시에는 착점을 하자면 15,P, 혹은 3,D
이런 식으로 좌표를 직접 입력해야만 할 정도로 번거롭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통신으로 바둑을 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는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내 통신바둑에 흠뻑 빠져 모뎀을 사용하던 당시 전화요금이 20만원에 다다라
와이프에게 매일 닥달을 당하는 통신바둑 광이 되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도 통신바둑을 두게 되면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대국자에게
투혼을 불태우는 저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곤 했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투쟁의식이 생기는 것일까?

저는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시 바둑은 스포츠로서의 시합에 가까웠고, 권투시합을 앞둔 파이터들이 상대를
쏘아 보듯 저 역시 모니터 앞에서 미지의 상대에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걸 저 역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왜 바둑 상대에게 투쟁심이 불타 오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이 글
연재가 끝날 때까지 제가 찾아 보아야 할 명제가 아닐까 합니다.



후기) 간략히 워밍엎을 끝낼까 합니다만 연재 처음 글 치고는 알맹이가 영 없는듯 하여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저 심심풀이로 읽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