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돌을 던진게 아니라 돌을 놓은 거에요..

형세판단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어려운 바둑.

그리고 너무 재미있는 바둑.

바둑이 계속될수록.. 나도 모르게 최철한 사범님을 응원하게 된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수 한수.. 남은 힘을 쥐어짜듯 응수하는게 눈에 보였다.

한시간이 지나고.. 삼십분이 더 지났다..

두 선수의 싸움은 그칠줄을 모르고..

은하도 긴장감에 피곤함도 잊고 반상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최철한 사범님이 반상을 손짓하며 이세돌 사범님께 말을 건다.

손을 따라가보니 좀 전에 사범님이 한점 따낸 곳.

시합 중 선수가 반상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한다...? 어? 혹시..?

판단이 안된다.

이어폰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던지나요? 

해설자님도 갸우뚱한듯.

이때 최철한사범님이 사석을 집어 반상 귀퉁이(변 1선)에 올려놓는다.

아.. 최철한 선수 던졌네요.. ... ...

해설이 이어진다.. 총평을 하는듯..

스튜디오 밖 스텝들의 목소리.. 정말 어려웠어.. 사범님들 대단해~ 하는 소리들이 이어폰을 타고 전해진다.

드디어 이 힘든 싸움이 끝난건가?

그런데 이상하다.

대국장안의 공기가 이상하다.

최철한 사범님의 눈빛도 이상하다.

평소같으면 계시기도 정리하고.. 게시판도 정리할 은하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해서.. 분위기에 눌려서.. 꼼짝도 못하고 최철한 사범님을 쳐다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계시원.

역시 움직이지 않는 두 선수.

이 상태가 계속되자.. 밖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이어폰을 통해 “던진겁니다. 계시도 멈췄잖아요..”라는 말이 들렸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냐.. 던진게 아냐..

내려놓았던 초시계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런 은하를 흘끗 본 최철한 사범님..

이내 태연히 흑돌을 집어 반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랬다.

돌을 던진게 아니었다.

승부를 끝낸 눈빛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얼른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읽기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맞는 말인건지.. 이래도 되는건지..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두 사범님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마이크를 통해 내 말이 들렸는지.. 웅성웅성대던 바깥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된 것 같았다.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그 순간 많이 당황했다.

침착해야해.. 침착해야해..

되뇌며 초읽기를 했다.

그랬더니.. 초읽기를 침착하게 했다.

아.. 침착한 초읽기.. 너무 침착해서.. 느.렸.다. (죄송합니다..)

episode 6. 승패는 결정되었지만..  

반상위의 전쟁은 계속되고..

결국 최철한 사범님이 돌을 던졌다.

두 선수가 복기를 한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복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반상앞으로 다가갔다.

은하 : 아까 다들 당황했어요.

이사범님 : 아~ 그거요? 헤헤헤^^

은하 : 두 분이 얘기를 막 나누더니.. 최사범님이 사석을 들어서 반상에 올려놓는 거에요.. 깜빡 속았다구요~

이사범님 : 그거 떨어진걸 올려놓은 거였어요~ 그래도 둘이 상의를 해야 올려놓지요.

은하 : 저한테라도 좀 들리게 상의를 하지.. 너무 소곤소곤이었다구요. 그럼 돌이 떨어져서 사석통에 들어간거에요? 아님 일단 사석을 올린건가요?

이사범님 : 나중에 복기해보면.. 사석갯수 나오겠죠.. 괜찮아요~ 한점인데.. ^^

최사범님은 말이없다.

표정이 좋지 않다.

많이.. 지쳐보였다.

이럴땐 어떤 말도 위로가 안되겠지..

실은.. 할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해본다..

은하 : 사범님.. 죄송해요~

최사범님 : 아니요....

말을 잇질 못하고 그냥 고개를 떨구는 최철한 사범님.

이때 스탭분이 와서 대국이 길어져서 시간이 너무 없다고.. 승자 인터뷰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세돌 사범님이 일어서고.. 최철한 사범님도 일어선다.

은하도 함께 밖으로 나왔다.   

episode 7.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論語) 옹야편 18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학창시절 벼락치기로 암기과목을 해결하곤 해서.. 사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얼마 없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싫어하던 한문책 한 귀퉁이에 있던,,이 구절이 생각났다.

대국 전에도.. 대국 중에도..

이세돌 사범님.. 시종일관 즐거워보였다.

어쩌면 쉽게 끝낼수도 있는 모양에서도.. 실수인듯 어려운 모양을 만들곤 하는 이세돌 사범님.

나는 결코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 그런 마음 아니였을까..?

그는 승부를 즐긴다.

아니.. 승부를 떠나 바둑을 즐긴다.

진정으로 바둑에서 즐거움을 얻는 이세돌 사범님..

그가 정상에 설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대국 내내 고심하고 고민하던.. 최철한 사범님의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즐기는 者의 표정은 아니었다.

큰 승부를 두고 즐길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욕심을 가져본다.

언젠가.. 樂之者 최철한 사범님을 반상 앞에서 만날 수 있기를 말이다.

아.. 은하는 반상 옆에서 만나겠구나.. ^^

최철한 사범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정말로 멋있었어요..

(최진용 바둑리그 전속기자님이 찍은 사진.. 정말 언제 찍어서 기사화를 시키신건지.. 흑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