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회사 안나가??"

뜬금없는 초등 일학년 딸아이가 묻는데 말문이 막혔다.

안정된 은행을 나와서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야심 만만하게 들이대다가, 손해만 막심하게 떠안고서는

그렇치 않아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담뱃값 받아 쓰는 불쌍한 처지에,

두눈 동그랗게 뜨고서, 왜 놀구있냐는 물음에 뭐라 이해를 시켜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그러니까 말야,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심신을 충전해야할때가 있는데, 지금이 고때야"

"충전이 먼데??"

"음,,힘을 비축한다,,뭐 그런거야,,너 나이땐 너무 많은걸 알라고 하면 안돼"

딸아이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녀석 태어날때만 해도 무엇이든 다 잘할것만 같았고, 무엇이든 다 잘될것만 같았고,

세상이 다 내것인냥 그저 행복감에 도취되곤 했는데..

그땐 참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막상 딸아이가 어느정도 커가고 대화가 많이 늘어나게 된 이때에

나는 딸아이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니..

학교에서 아빠는 무슨일을 하시니? 하고 물어볼까 두렵고,

친구들과 얘기나눌때 아빠를 어떻게 얘기할까..하는 생각만 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못마땅하기만하다.

딸아이와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아내가 웃으면서,

"지희야, 아빠 회사다니던거 기억나??"

"웅, 양복 입고, 넥타이 메고..나 자는데 깨워가지고 회사간다고 뽀뽀하고..히히"

"아빠 집에 있어서 좋지 않아?"

"좋긴한데..."

말끝을 흐리는 딸아이.

이녀석이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자 줄이고자 하던 담배 하나를 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라고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닿는 감촉이 좋았으나..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학교에서 <우리가족 이야기>를 만들어 오는 숙제를 내준 모양이다.

가족 하나 하나 그림을 그리고, 소개를 하는...

애휴,,,드디어 올것이 왔구만.  나는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녀석 아빠를 어떻게 표현할까...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햇다.

집에서 놀구 있는 모습을 그렸을까,,아니면 누워서 티브이 리모콘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을 그렸을까...

숙제 다했다며 티브이 봐도 되냐는 녀석의 말을 듣고도 쉽사리 그 숙제를 어떻게 했을까, 쳐다보기가

망설여졌다.

심호흡 한번 하고 녀석이 한 숙제를 봤다.

  -   행복한 우리 가족 -

블럭으로 뭐든지 잘만드는 귀여운 내 동생.

요리를 잘하셔서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바둑을 너무도 잘 두시는 우리 아빠^^*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쓰기가 고민되서 궁리를 했을까...

그림은 또 왜그리도 멋지게 아빠를 그렸을까...

녀석, 참으로 절묘한 맥점을 찾아 냈구먼,,^^;;

양곤마가 되어버려서, 어느 하나 꼴까닥 할 처지에 놓인 아빠에게,

아직 "패"가 남아 있다고 기운 내라고 하는 소리는 아닐까....

이제 여덟살난 딸아이가 그토록 고맙게 느껴진 하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