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딸하나, 아들하나가 있다.

아내는 첫아이가 딸이니, 둘째도 딸이길 원하였다.

자신이 오빠들 틈에서 외동딸로 커서인지 같은 동성이라야 느끼는 교감이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둘째는 아들을 은근히 바랬고, 결국 나의 뜻(?)대로 이루어 졌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금상첨화가 아닐까^^;;

난 삼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남정네만 셋이니 재미가 있을리 없다.

부모님이 외출하고나면 형들은 나에게 엄마화장품을 찍어바르고, 치마를 입히고,,그 곤욕을 안당해본사람은

그심정 모른다.

세월이 흘러 큰형이 장가를 가게되었을때,

작은형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무조건" 딸을 낳아야 찾아간다고 했을 정도다.

사내조카를 둔다는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흘러 내가 장가를 가고, 원하던 첫딸도 얻고보니, 은근히 아들 욕심이 생기는거다.

키우는 재미야 딸이 훨씬 좋겠지만, 아들놈 붙잡고 목욕탕 같이 한번 가고픈 마음이 간절해 지는거다

사람마음이 이리 간사해질 줄이야 ㅡㅡ;

얘기가 옆으로 샛다.

어쨋건 난 두녀석중에 한놈이라도 프로기사가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였다.

어릴때일수록 좋을것 같아서 딸아이가 다섯살일때 바둑돌을 쥐어주고 포위해서 따먹는거 알려주고,

요것이 땅이요 집이고 요렇게하면 따먹고,,열심히 가르쳤는데,,이녀석 지루한지 곧 알까기로 돌입한다.

그래서,,,포기했다.

그리고 삼년이 흘렀다.

내가 컴퓨터 켜놓고 바둑을 두고 있는데 딸아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횐돌이야?"

"웅"

"아빠가 이기고 있어?"

"웅"

한참 중앙 공방전이  얽혀있어서  성의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때였다.

"조거 잡아묵어야지! " 하며 날일자 씌움을 가리키는데..

그때의 놀라움과 가슴뜀을 어떻게 설명하랴.

정확한 급소의 자리였다.

상대는 움직이기 곤란하고, 내말은 도망갈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일석이조의 한수,

딸아이가 그것을 알고 이야기 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주 우연히, 정말 대충 찍어준 착점자리란 예상을 하면서도,,

내 핏줄이라는 단하나의 이유만으로,

"기재"가 있어보였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깨우친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요근래 들어서 바둑두기 힘들만큼 옆에서 감놔라 콩나라 잔소리(?)도 부쩍 많아졌고,

그래서,,,

다시한번 바둑을 가르쳐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5살때 가르쳤던건 좀 무리였을것이다.

바둑에 관심을 보이고 나이도 이제 8살이니 알맞을것 같았다.

바둑판을 꺼냈다.

요것은 "귀"라고 하고 요것은 "변" 요것은 "중앙" 이며, 같은 알수로 같은 두집을 지을때 귀에서 짓는것이

훨씬 알수가 적게 들며, 그담은 변이고,,중앙이 제일 많이 들어간단다.

하며 예를 보여주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딸아이는 조용히 묵묵히 나의 열띤 강연(?)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장차 루이를 누르고 여류 국수에 오르는 달콤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림이면 그림 공부면 공부, 피아노면 피아노, 못하는것이 없다고 칭찬이 자자 하지 않던가.

똑똑한 만큼 기재도 출중하리라 믿고 또 믿었다.

"자! 그럼 실전을 한번 해보자 "

하고는 25점을 깔게하고 딸아이와 역사적 첫 대국을 갖었다.

포위해서 따먹는것도 알려주었고 두집이 나야 사는것도 알려주었으니 아주 승부가 기대되는 한판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녀석,

몇수 두더니, 바둑돌로 쭉 연결하는것까지는 좋았는데 나중에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히히 아빠 요게 우리집이다^^"

"............"

아무래도 우리딸은 프로기사보다는 화가로 키우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