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초등1학년)의 학교 에서 꼭 읽어야하는 <지정도서> 를 사기위해 책 도매서점이 모여있는 동대문에 들렀다.

동대문이 어떤곳인가.

내가 바둑에 미쳐, 아니 내기바둑에 빠져, 인터넷 바둑이 생긴것을 알게되기까지 그 짜다는 인천의 기원보다 떠 짤것만 같던 <중앙기원>에서 마귀같던 고수님들에게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연신 얻어터지던 기원이 자리잡고 있는곳이지 않던가.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대로 지나칠수가 있을까.

나는 필요한 책을 손에든채 <중앙기원>의 문을 들어섰다.

오랜만에 들른 탓일까..모르는 얼굴도 눈에 띄었지만 예의 그 마귀같은 내기고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장님의 반가워 하는 웃음소리와 어서오라는 소리에  일제히 내가 들어서는 문을 쳐다보는 눈빛들...

이어서 경계의 눈초리가 "물주왔다"하는 듯한 반가움의 미소로 바뀌며 서로들 옆자리로 오라며 손짓들을 한다.  (이럴때 별 기분은 좋지않다..아직 물로보고있다는 증거니까^^;;)

하긴 한참 그 기원을 드나들때의 나의 기력은 오로에서 3급정도를 둘때였으니..그 기원에선 제일 하수였고 맞둘 상대조차 없었다.  그저  저사람에겐 석점 이쪽사람에겐 다섯점  그리고 저 귀퉁이 고수에겐 아홉접...

그렇게 깔고 두던 실력이었을뿐.

그곳의 내기꾼들은 자신이 불리한 치수의 바둑은 절대로 두지를 않는다.

그래서 매일오다시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기에 상대를 안하는게 대부분이다.

어쩌다 나같이 허구헌날 지면서도 좋다고(?) 덤비는 하수가 나타나면 양팔걷어붙이고 두려고 애를쓰는데 하수는 그저 "이번에는 틀림없이..." 이길거라 굳게 믿고 또 다시 덤비게 마련이다.  왜냐...

이길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만 교묘하게 이기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것을 알게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했던가.

아련한 아픈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았다.

더불어 그때의 아픔을 되돌려주고픈 승부욕이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왜 이렇게 안보였어?"

"예..먹고살기 바빠서요..하하"

"한판해야지..언능 앉아"

행여 물주가 다른자리로 갈까 강제이다시피 앞자리에 끌어다 앉히는데 못이기는척 자리에 앉았다.

"치수가 다섯점이었지?"

"네 그렇긴한데 요즘 워낙 바둑을 안둬서.."

"자전거 안탄지 오래됐다고 자전거 못타나?   언능 깔어봐 다섯점!!

흐흐흐 ...속으로 "한번 당해봐라"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상대는 그 기원에서 그리 고수축에 끼는 사람은 아니다

당시 그 기원 최고 고수에게는 내가 아홉점을 깔고 공이를 오히려 20개를 받고 바둑을 두면서도 내가 잘 이기지 못할정도의 고수도 있었다..물론 지금이야 그럴리 없다 . 오로 물5단이긴 하지만 왕별하고도 석점에 버틸것도 같고 네점이면 지지 않으리라는 신념도 있으니까.

다섯점을 깔았다.

바둑판이 온통 시커멓게 보였다.

야구선수가 컨디션이 좋을때 투수가 던진공이 수박만하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바둑판이 온통 흑돌로만 메꿔져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터넷으로만 두다가 바둑판에 돌을 직접올려놓자니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그 느낌이 참으로 좋았다.

상대는 정석을 완전히 무시한채(물론 접바둑이니 그럴수밖에 없었을것이다)  함정수 비슷한 무리수의 연속이다.

<예전에 이런수에도 당했었군..참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차분하게 곱게 응수했다.

바로 바로 응징했다간 바둑 한번 안뒀다는 것이 금새 탄로날 테니까..

두텁게 두텁게 ..그러나 어디하나 추궁당할 곳 없이 응수를 해나가고 끝내기에서 많이 당하긴 했으나,

무난하게 한방승! (물론 방내기다)

세판을 두면서 한방, 두방, 네방을 차례로 이겼다. 상대는 얼굴이 붉어지고 말수가 급격이 줄어들었다.

"뭐야..이거 어디서 순 바둑만 뒀나봐..그렇치?"

"그냥 인터넷 바둑 가끔 둔것 밖에 없습니다,,하하"  (약 만이천판 밖에 두지 않았다,,ㅡㅡ;)

"근데 어딜가 더 둬야지!!!"

"약속이 있어서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 나 이런~~"

못마땅해하는 상대의 기료를 내주며 (이긴사람이 기료와 음료수 값등을 내주는 것이 보통이다)  기원문을 나섰다.

급소한방 멕였을 때 나오는 멘트 <통렬하다!!>가 이럴 때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

딸아이 책값을 상쇄하고도 꽤 짭짤한 부수입이 생겼다.

내가 중앙기원에 갖다바친 돈보다야 천분의 일 만분의 일에도 못미치는 미미한 액수이긴 하지만 꼭 금액이 커야 기쁨도 큰것은 아닌가 보다.

그날 하루 입에서는 룰루랄라가 연신 나왔고, 아이들 주전버리까지 잔뜩 사들고 희희낙낙하고 있자니,

집사람이 의아해 하며 묻는다.

"여보야~  책사라고 내보냈더니 길에서 옛날 애인이라도 만난겨???"

"웅, 옛날 애인좀 보듬어주고 왔지...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