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으로 바둑을 두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분명 모양의 급소였는데 실은 보태주는 수가 된다던지, 공격의 급소라고 덮어 씌웠는데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수가 되었다던지하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하다.
프로들의 바둑에서도 그러하거늘 아마추어의 바둑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감각을 무시할 수도 없다.
기력이라는 바둑 내공에 감각은 당연 으뜸요소가 된다.
해설하는 프로가 감각적으로 여기 두고 싶군요라고 말하는데 나의 감각엔 그런 수가 없을 때 기력차를 느끼는 경우가 그것이다.
결국 감각은 기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상수의 감각과 하수의 감각은 그 질과 양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삶을 사는데도 감각은 당연 존재한다.
공장에서 기술자가 예민한 차이를 찾아내거나, 숙련된 화이트칼라가 문서나 서류의 오류를 발견하거나, 의사가 정밀검진을 하지 않고도 질병을 예견하는 데도 감각은 우선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엄청난 화근을 가져오게 된다.
바둑의 경우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거래처에서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크레임을 걸고, 괜히 트집을 잡는다는 보고가 있어 거래처를 찾았다.
분명 무언가 있는 듯한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필링이 왔다.
거래처를 찾아간 지도 오래 되었고 식사를 함께 한 것도 기억이 가물거렸다.
내가 너무 소홀히 했구나하는 생각이 감각적으로 온 것이다.
헌데 이게 엄청난 실수였다.

원론적으로 돌아가서 크레임은 그 원인을 정밀 분석하고 나쪽에서 문제가 없나를 곱씹어야 하는데 상대방에게서 원인을 찾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물론 억지로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평소 나와 절친하게 지내던 이 사람이 나의 잘못된 감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래중단을 요구하고 나왔다.

그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
크레임을 걸었으면 그에 따른 대책이 나와야하는데 그게 없다는 것이 그 하나며, 오히려 밥이나 얻어 먹을려고 한 것처럼 오해를 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것이 그 둘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내가 당황하는 사이 그 사람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민망함은 둘째고 미리 엉뚱한 짐작을 해서 그를 모욕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괴롭혔다.
다시 그를 붙잡고 변명이나 늘어놓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모욕감을 주는 것 같아 그냥 사무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아니, 속된 마음으로 살아온 나의 삶의 감각이란 것이 너무도 미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 거래처가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지만 더 이상 그를 모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고민을 하다 편지를 쓰듯이 공문을 만들었다.
통상적인 사무적인 공문으로는 그에게 나쁜 기억만 줄 것이고 그러면 뒤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래처는 잃어도 그를 잃을 수는 없었다.
매니아광장에 글을 올리듯 그렇게 만든 공문을 직원을 시켜 보내고나니 한숨만 나왔다.
아니 거래처를 잃은 것보다 그를 모욕했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며칠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게 보냈다.

퇴근하는 길.
동으로 출근해 서로 퇴근하는 나는 아침녘엔 일출을 보며 출근을 하고 저녁엔 낙조를 보며 퇴근을 한다.
진해 안골로 향하는 차창에 낙조가 깔렸다.
열기를 잃고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낙조를 보니 왠지 헛 살아온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그라고 해도 그렇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고, 중요한 거래처마저 잃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아파왔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차였다.
기다리다 보니 배가 고프다는 그를 보니 마음에서 울컥한 그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당황해 하는 나를 보며 그가 한마디한다.
" 내 태어나서 그런 공문 보내는 사람 또 처음 봤네, 하여간 소갈머리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