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토요일아침.

휴일이니까 늦잠을 자도 되지만 이상하게도 휴일일수록 일찍 눈이 떠지고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일은 일요일...시간여유는 많습니다.

속옷바람으로 6층베란다에 앉아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 오릅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입니다.

공업계열이었으므로 실습이 많았습니다.

실습이 끝나면 항상 정리정돈과 청소를 깨끗이 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었지만,야단을 맞으면서도 좀처럼 몸에 익혀지지를 않고 언제나 그렇듯이 삼삼오오로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종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늦게까지 혼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S형 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S형은 우리들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습니다.

학교다닐때는 몰랐으므로 그냥 이름을 막 불렀습니다.

S형은 언제나 다정하게 웃으면서 우리들을 대해 주었습니다.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면서 S형과는 부서가 달랐으므로 실습때는 같이 하는 시간이 별로없었지만 같은 학과이므로 교실을 사이에 두고 자주 만났습니다.

대개 학교에서는 친한 친구들끼리 작은 그룹을 만들어서 행동합니다.

나는 학업성적면에서 상위그룹으로 이른바 모범생그룹이었습니다.

S형과는 특별히 친하지는 않았지만 형의 다정함에 끌려 무척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전체가 같이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청소도중에 형이 나를 실습장 한쪽 귀퉁이로 데리고 가더니 내 양손을 꼬옥 붙잡고 기도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놀랐지만 그렇다고 뿌리칠수도 없었으므로 그냥 눈을 감고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다른말도 없었고 특별한 친분도 없었습니다.

3학년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항상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교회에서 화동회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친구도 한 두번 밖에 안 갔지만 혼자가기 쑥스러웠던지 나를 끌어들인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S형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모여서 화동회를 하는데 학생부의 선배로서 오는 신입생들을 다정하게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부의 회장이 아니었습니다.

학생회회장을 하고 물러났는지 그냥 직책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목자의 모습을 연상했습니다.

형은 내가 교회에 온 것을 무척 기뻐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의 겨울이란 그렇게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형을 다시 만난 것은 어영부영 3년을 보내고 군대영장을 받고서였습니다.

육군입대통지서를 받았는데 입대 두 달을 남겨두고 갑자기 해병대로 가고 싶어서 지원을 했습니다.

신체검사와 간단한 면접을 보는데 특수기술직이어서 그런지 경쟁률이 3배였습니다.

면접보는곳에 행정병으로 형이 방위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면서 또 다시 임시막사 뒷편으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그 때 기성교회쪽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형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산역 바로 뒷편이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형은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눈을 감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분정도 내 손을 꼬옥 붙잡고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덕분인지 해병대는 떨어졌습니다.

두달 뒤인 5월 중순,나는 논산훈련소에 입소를 했습니다.

그리고「13특」이란 주특기를 받고 광주 상무대 포병학보에서 사격지휘 후반기교육을 7주동안 받았습니다.

이른바 포병의 꽃,133(하나삼삼)입니다.

제대후 나는 형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군대에서 사고없이 무사히 지낼수 있었던 것은 형의 기도덕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회계열인 침례병원에서 2년 가량 근무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두번째 기도를 받은 날로부터 33년이지났습니다.

그 날이 형을 본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미안해 형,나는 지금 형의 기대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것 같아...

고등학교 졸업성적이 그럭저럭 괜찮았던 탓인지 부산의 석유회사에 입사를 했습니다.

3교대였는데 같은 조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하는 선배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3교대를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다음 근무 돌아올때까지 시간이 제법 여유가 있습니다.

그것도 4조3교대라면 말입니다.

그 선배님은 나를 보면 항상 꾸짖듯이 또는 약간은 무시하는듯한 어조로 내게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내가 이단종교에 몸담고 있는 것이 불쌍하다고,가엾어서 내가 잘 되기를 기도한다고...

일곱명되는 조원들은 오후근무가 끝나고 다음 근무로 바뀔때마다 자주 회식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내가 그 선배님에게 노골적으로 설교를 듣고 있을때에는 다른 조원,특히 조장이 나를 많이 옹호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선배님이 이상하다고...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선배님이 오히려 잘못 알고 있는것 같다고...

그 선배님은 회식자리에서 술을 입에 대지 않았지만 나는 신앙심도 별로였고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라 같이 술을 마셨습니다.

조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서로 집을 방문할때에도 그 선배님집에는 방문을 삼가했던것 같습니다.

기독교집안인지라 술도 없고 담배도 안되고...한 달에 한두번은 밤샘을 하는 조원들이 놀 분위기가 아니었던 탓이겠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조원들과 조금 거리아닌 거리를 두고있던 선배님이었으므로 내게 특별한 애정을 보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때의 S형처럼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진 않았지만 나름 애정을 갖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후배가 애처로웠던지 기도를 해 주겠다고 하던 선배님..

그 이후 기술연구소에서 인력지원요청이 왔을때 근무환경이 좋은곳으로 가는 듯도 싶었지만 고급 인력속에서 홀로서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고등학교 3학년말이었습니다.

대학입시 예비고사를치르고 결과통지서를 받는데 내 것만 없었습니다.

1기생이었으므로 선생님들도 경험이 없어서 통지서를 한꺼번에 받아와서는 교무실 책상위에 올려 놓고 수업이 먼저 끝난 사람부터 찾아가게 했는데 600명분이 뒤죽박죽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마침 청소당번이었는지라 청소마치고 늦게 가서 찾았으나 통지서는 없었습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적을 한 두명은 만들었겠지요...

아니면 600분의1의 나쁜 운으로 내 것만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침울한 기분으로 교육위원회에 가서 재발급을 신청했더니 학생증만으로 된다고 한 것이 본적지에 가서 호적초본까지 떼어오라는 것이 아닙니까?

감수성이 예민했던 때인데다가 일년전에 도서관에서 새 실습용구가 든 가방을 잃어버린 기억이 겹쳐 떠올라 그만 다운되고 말았습니다.

나의 운명은 더 이상의 진보를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 해.

부산대학교 공과대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미달이었습니다.

죽은 듯이 몇 달을 보냈습니다.

큰형이 돈 만원을 쥐어주면서 일주일간의 교회수련회에 보내주었습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저의 신앙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 이후에도 교회에도 가고 수련도 받고 교회에서 결혼까지했지만 신앙의 깊이는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 나를 형님은 교회에 끌어들인 책임을 갖고 또 기도를하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 그만두고 일본여자 만난김에 일본으로 간다고 가서는 어렵게 살고 있는 동생이 애처롭겠지요.

예상못한 갑작스런 국제결혼으로 많은 가정이 파탄난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형님의 기도또한 절실한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주 들르는 바둑사이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호회회원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바둑을 두고 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교회이야기를 하십니다.

이른바 정통이라고 하는 종파였습니다.

사실 저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의 사상도 이해를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때는 피곤하기만 합니다.

이 날도 제가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저의 종교를 말했더니 예의 그 이단...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저는 제가 몸담고 있는 종교를 옹호할만큼 열성적이지 못합니다.

교리를 이해는 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다가 남에게도 무리하게 설득시킬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한 시간 정도 메모를 주고 받다가 약속이 있어서 나왔습니다만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충고를 듣다시피한 대화였기 때문입니다.

그 동호회원님은 그 이후에도 가끔씩 제게 지나가는 말로 그 종교 그만두라는 투의 말을 하십니다.

좋은 분 같은데 왜 그런 종교에 몸담고 있느냐고요.

아마 저를 위해서 기도도 하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