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軍鷄

“쪼금 배웠다고 설치는 귀관들은 말들이 너무 많아,

군인은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 따윈 내팽겨 치고 포탄이 쏟아져도

가라면 가는 거야. 그게 군인인 게야.

귀관이 내 상관인가?

맞을 이유를 차트라도 그려가며 설명해야 되나.“

불편한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날린 주먹이

또 눈 등에 불을 번쩍이며 지나갔다.

장교들과 동렬처럼 비쳐 보이는 교육대 출신 신임하사들이

은연중 내비치는 학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열등감.

명령복종을 거부하며 이유를 들고 나오는 수하에 대한 적개심.

갈수록 떨어지는 권위에 반항하는 요소를 제공하는 모든 변화.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딱 집어 내지 못하고 뒤 전으로 밀려가는

자신에 부족한 학식과 능력을 향한 무한한 분노 심.

그 모든 것을 싸잡아 한꺼번에 불이 붙은 화증은

학식에 비해 냉철한 이성과 격식을 갖추려 늘 애쓰던 평소에

박 상사의 품격 있는 모습을 간데없이 지워 버리고 말았다.

번개와 천둥을 미친 듯 쳐대도 지나가는 나그네 비는 오래 가지 않는다.

잠시만 참고 비굴한 웃음을 보이면 이 위기를 모면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가져온 미제 과일 깡통 몇 개와 눈 딱 감고 손바닥을 열나게 부 벼 대면

이 난국의 순간을 분명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꼬리를 내리고 배를 하얗게 까 내민 강아지의 모습으로

처참한 굴욕을 인내하기엔 그 때의 젊은 내 피는 너무 뜨거웠다.

“엎드려!!”

명령이 다시 떨어 졌지만 따르지 않았다.

어차피 피가 터지며 시작된 일이다.

두려움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다시 부동자세로 물었다.

“잘못이 정당 하다고 느껴지면 때리시는 대로 맞겠습니다.

하지만 맞아야 하는 이유가 정당한지는 꼭 말씀해 주십시오“

박 상사 눈가에 스쳐가는 활화산 같은 분노도 내 것처럼 커보였다.

함께 터져 버리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솟구치는 불길을 막고 잠시 기다려 본다.

“좋다!

그렇게 이유가 알고 싶다면 알려 주마.

부대 내 청결 상태가 너무 불량해 점검 시 쓰는 흰 장갑조차 필요가 없었다.

길바닥에 거지새끼들도 그렇게 해놓고는 살지 않겠다.

청결에 책임이 있는 귀관이 응당 제재를 받아야 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반론이 있으면 말하라.“

확 달려들어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

귀관이라고 부르지 마라.

차라리 이새끼 라고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 말하라.

남한산성에 간다고 다 죽지는 않는다.

솟구치는 전의로 주먹을 막 뻗으려 하는 순간 뒷말을 이어왔다.

“불복 한다면 좋다

다시 한 번 준비할 시간을 주겠다.

시간은 한 시간을 준다.“

교활하다.

드물긴 하지만 혹간 병사에게 맞는 장교의 선례가 말하듯

타 부대에 있다가 부대를 옮기면 계급이나 선임에 관계없이

터줏대감의 드잡이 질은 암묵적인 묵계에 의해 우물우물 허용된 일이다.

꼭 집어 김 하사의 구타를 들추지 않는 박 상사.

늙은 생강은 역시 매웠다.

박 상사의 영악한 제안에 따르자면 늘 부족한 잠에 빠져

지금쯤 깊은 꿈속을 헤맬 부대원들을 전원 깨워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을 깨워 날이 새도록 털고 닦아도

박 상사를 만족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악랄한 교활함에 치가 떨려 이가 부서져라 악 다물었지만 눈물이 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이어령 비 어령의 이놈의 군대. 진저리가 난다.

인질로 잡아 놓은 부대원들을 버리고 내 기분에 휩쓸리면 안 된다.

참자!

곧 죽어도 내무반원들의 방패가 돼야 하는 반장이 아니더냐.

하지만 분통 했다.

천지가 떠나도록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엎드려서

박 상사에 매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승리의 비열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박 상사 앞에 꼬리를 내리고 눈물을 감추고 엎드리고 말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면 용서를 빌어라!

아니면 비명을 질러라 그러면 용서해주마!“

차라리 맞다 기절하는 일이 있어도 용서를 구하는 일은 기대하지 마라.

“뻑 뻑!!”

행정반에 고요를 깨며 허벅지와 엉덩이를 쓸고 침대 마후라가 춤을 춘다.

몇 대 맞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축축 하다.

아마 터진 모양이다.

감정이 실려 있는 매질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지만

분노로 활활 타오른 내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아픔보다 더 심하게 밀려오는 모멸감이었다.

탈출구를 잃어버린 쥐는 고양이도 물 수 있다.

작은 권력을 무도하게 휘두르는 저 軍犬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돌발적으로 솟구친 끝없는 정의감은 청춘을 걸고라도 그를 제거해야 했다.

군 교도소가 있는 남한산성행을 결심하고 포대장 관물 함 위에 걸려있는

대검을 뽑아 박 상사를 찌를 작정으로 막 몸을 일으키려는 찰라 다.

“똑 똑”하는 노크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 들어섰다.

침대 마후라를 높이 들었던 박 상사가 입구를 향해 소리쳤다.

“어떤 새끼냐!!”

창끝 같은 박 상사에 목소리가 쏘아져 나갔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욕설이다.

행정반 안에 퍼져있는 광기는 나 혼자 쏟아낸 게 아니다.

파국으로 치닫던 사태는 예기치 않은 일로 잠시 멈추어 섰다.

박 상사의 목소리를 받으며 행정반 안으로 들어선 것은

놀랍게도 김 하사였다.

                                                               -끝-

그때의 댓글입니다.

조아해유 ｜ 2010-12-11 오후 12:18: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등이닷, 흐미 무시무시허당 ,담편이 빨리 나오기를 기두리잣

一圓 갑자기 훈련소에서 선착순 하던 생각이 나네요 막사 좌에서 우로 3명~~고맙읍니다

꿈속의사랑 ｜ 재미있습니다...

一圓 지나와 생각해보니 꼭 꿈속의 일만 같읍니다 고맙읍니다

月谷川 ｜아...공포 공포 공포.빳다 맞기전의 소름끼치는 공포.막상 맞을때보다 더심한 두려움.아이고 왜 내엉덩이가 움찔움찔하지

月谷川 군대의 야전침대 마후라를 몽땅 플라스틱으로 바꾸라! .나는 수송부에 기름넣을때쓰는 자바라로 맞았습니다.자바라의 착착감기는 그고통 너무나 끔찍합니다

一圓 자바라 참 오렌만에 듣네요 그땐 그렇게 때리던 놈 만나면 죽일것 같더니 제대하고 하교대 향도를 만났는데 왜 그리 반갑던지 밤새 술 마시던 기억이 월곡천님 글을 보니 떠오릅니다 고맙읍니다

가능동아이 ｜보통 인사계는 공포의 대상.

제 군생활때의 인사계가 생각나네요.

그래도 박상사의 포스는 너무 후덜덜하네요.

아이구 무서워~~~~

一圓 악역 담당이 부대에 한 사람씩 있었죠 추억도 그분들이 많이 주셨고요 고맙읍니다

홍선비 ｜음~~ 다 주것다~~

一圓 선비님이 함께 해주시니 글 쓰는일이 즐거움이 더 합니다 고맙읍니다

당근돼지 ｜우리 주임상사님은 당시 장기를 잘 두셨는데..........장기로 인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一圓 백도 깡통 걸고 두면 10통 사드리고 어쩌다 1통 정도나 먹었을까 저희 부대 인사계님도 잘두셨던 기억이 저도 납니다

팔공선달 ｜근데. 인사계는 보통 보편적으로 뚱뚱하죠. 왜 그렇죠? ^^&

무섭고 인자한 것도...^^

一圓 저는 깡 마르고 크신 분이셨는데 참 카랑카랑한 분으로 기억이 납니다 좀 특이한 분이 아니셨나 기억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