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軍鷄

인사계가 당직을 하는 날이면 평생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신주 모시듯 해도 될까 말까한 그 귀하고 소중한 물건을

오줌 싸고 간수가 잘됐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저녁이면

내무반원 모두가 청소를 하느라 미친년 널뛰듯 했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겨 독이 오른 홀어미 시집살이의

새 색씨 살림 솜씨도 이보다 더 청결하고 깨끗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죽어라 잘 닦고 걸레질한 창틀과 총기보관대, 관물 함

구석구석에서 까만 먼지를 절묘하게 찍어내는 박 상사의 하얀 장갑은

긴 겨울밤을 재 점호 재 점호로

쓰레질과 걸레질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게 하는 공포로,

내무반원들 저마다 가슴에 깊숙이 새겨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귀신들은 뭘 먹고 사는지 박 상사는 오늘도 흰 장갑을 끼고

눈앞에 말짱하게 서있다.

국내 토종귀신들과는 분명 모종에 막후협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우리는 그 때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숱한 원망과 저주에 악담을 귓등에 매달고 살아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결근으로 얼굴을 안 비추는 기쁜 날은

꿈도 꾸지 못했으니 말이다.

의견이 분분해지고 외국 귀신을 초빙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때는 있는지도 모르던 낯선 이슬람교 신도에 건의를 받아 들여

노랑머리 파란 눈에 귀신은 다소 이질감이 들었지만 초빙하기로 하고,

열심히 포대 대원들이 기도를 드렸지만 아랍 쪽 알라신 계열의 귀신들은

낯가림이 심했는지 성사는 되지 않았다.

불행이도 "신에 뜻에 따르겠습니다 "라는 “인샬랴” 와 "알라" 외에는

아랍 말에 깡통인 황 상병의 기도는 중동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작고 희미해서 잘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한국말을 아는 아랍 귀신은

하나도 없었는지 박 상사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달라는

그 애절하고 간곡한 우리의 기도는 한 번의 응답도 듣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 말았다.

오!

알라神 이시여 응답해 주소서!

S.O.S!!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뻑 하면 흔들던 흰 장갑을 조용히 벗고

평소에 박 상사답지 않게 간략한 지시사항만을 하달하고

행정반으로 박 상사가 내려갔다.

무슨 심산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점호는 끝났고,

내무반원 모두가 뿜어내는 안도의 한숨은 막사를 들었다 놓았다.

더욱 불안에 떨어 줘야할 나를 열외 시키고,

어머니가 면회 오시며 들고 오신 떡을 나누어주고

새로 나왔다는 태양(sun) 담배를 맛보라고 한 개비씩 나누어 주었더니

취침 전 포대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일발 장진한 담배연기로

막사는 불난 호떡집을 방불케 하며 자욱한 연기 속에 파묻혀 있다.

내 가슴속에 피어오른 연기도 함께 따라 올라갔다.

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대범함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아까부터 귀는 박 상사가 있는 행정반에 가있다.

그렇다고 무게 없이 초삭 거리며 김 하사에게 인사계가 뭐라 하더냐고

물어보기도 체면 안서는 일이라 목에 힘은 주고 있었지만,

맞은 턱주가리가 툭 튀어나와 큰 바위 얼굴이 되어 꺼멓게 멍든

김 하사의 턱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은 긴 시간이 지났다.

애절한 트럼펫 선율로 졸병들 집 생각에 눈물깨나 찍어 내며

담요 깃을 적시게 하는 취침나팔 소리가 들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인사계님이 내무반장님 빨리 내려오시랍니다”

야참 라면을 들고 갔던 당번병이 박 상사의 호출명령을 들고

호들갑스럽게 돌아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문을 열자 매섭고 차가운 기운이 먼저 얼굴을 찔러온다.

신형으로 지급된 벙커C유 난로로 늘 후끈하던

행정반 주번사관 당직실은 오랜 시간 불이 꺼져 있었는지

냉랭한 기운을 쏟아내며 인사계 박 상사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손도 대지 않고 식어가는 라면과 함께 살벌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방한모의 끈도 묶지 않고 양 옆으로 축 늘어뜨린 큰 덩치의 박 상사는,

적 참호로 각개전투 돌진을 앞둔 앞에 총 자세로

조립식 야전침대에서 뽑아낸 침대 마후라 한 개를 들고

전방을 야수의 눈으로 쏘아보며 장승처럼 서있었다.

70년대 초를 기점으로 육군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 장교 식당에서 내버린 짬밥 통에서 밥찌꺼기의

물기를 쥐어짜 몰래 먹기도 한 병사가 수두룩했던 군수체제는

변함없이 빈약 했지만 무학자도 징집을 당해 입대했던 학력 체계에는

대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3~400명의 부대 인원 중 대학물을 먹은 병사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고

중졸 이상이면 무조건 행정병으로 직행하던 관례가 무너진 것이다.

학력이 필요 없는 군 경력을 우선으로 한 병 출신 자대진급자 들과

중졸이면 지원이 가능했던 현임 하사관들은 고졸 이상 대학재학이나

대졸의 학력을 가지고 새로이 임관해온 하사들을 까닭 없이 경멸했다.

두 집단은 학력에서 오는 우열감 으로 기름과 물처럼 잘 섞이지 않았다.

말석이긴 하나 하사관이면서 오히려 R.O.T.C 젊은 장교들과 죽이 잘 맞는

젊은 하사들을 인사계 박 상사는 거의 병적으로 미워했다.

학력이 미천하고 군번도 없는 켈로 부대에서 6.25전쟁을 맛봤고

전쟁이 끝난 후 병에서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른 박 상사다.

많이 배운 놈들은 잡다한 이유가 많아 실전에서는 결코

강인한 전사가 되지 못한다고 굳게 믿는 구시대적 사고에 박힌 그다.

중학교 졸업에 소년병 출신인 김 하사를 자식 감싸듯 아끼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데 그런 자식 같은 김 하사를 구타한 사건을 뇌물인 미제 과일

깡통 몇 개로 가볍게 넘길 박 상사가 결코 아니다.

경례하는 손이 다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엎드려!” 하는 소리가 총알처럼 날아왔다.

얼마나 벼르고 벼른 자리인지 진한 먹물 같은 박 상사의 울화가

온 몸을 까맣게 적셔왔다.

쉽게 끝나지 않을 불길함이 팍팍 밀려온다.

참새도 죽기 전에 짹 소리 한마디는 남기고 죽는다는데,

맞아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그대로 맞을 수는 없다.

“뭘 잘못해서 맞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 주십시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별이 번쩍였다.

침대 마후라를 던지고 박 상사가 주먹을 날렸다.

정년퇴임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운동을 즐기는 50살도 되지 않은

박 상사의 주먹은 젊은이 못지않다.

앙다물지 못했던 입속이 터져 핏물이 입안에 가득 고였다.


                                              -끝-

보충한 글로 글이 늘어난 까닭에 이번 회는 댓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