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의 연휴

일본의 일반회사에는 일주일정도의 대형연휴가 일년에 세 번 있다.

첫번째는 연말연시, 즉 12월의 마지막 주말경부터 다음해까지 대략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그리고 두 번째는 5월달에 들어서서 3일이 헌법기념일, 4일이 신록의 날, 5일이 어린이 날로 연이어 있으므로 일찌감치 4월 마지막주말부터 또 일주일정도를 쉬어버린다.

세 번째는 양력 8월 15일.

일본은 메이지유신과 함께 달력을 태양력으로 바꾸었으므로 보름달과 함께 지내던 추석도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는 보름달도 없는 추석을 성묘를하며 지낸다.

연휴는 8월 15일을 전후해서 일주일정도이다.

추석을 일본에서는 오봉(お盆)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불교의 우란분「盂蘭盆」에서 온 말이다.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선행을 한 날이 7월 15일이었는데 이 날을 기해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것이 이후 농작물의 수확기인 8월15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반 기업은 연휴이지만 공무원이나 은행은 달력대로이므로 아이들의 휴일에 맞추어서 계획을 잡다보니 자연히 5월 연휴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 제한을 받는다.

올해는 일본의 서쪽지방 이시카와(石川)현으로 방향을 잡았다.

10여년전에 「풍운아 케이지（花の慶次)」라는 만화로 시작해서 빠찡꼬, 드라마등 일본전국을 전국시대의 무장열풍을 불게 한 「마에다 토시마스(前田利益)」의 본거지이다.

「마에다 토시마스＝마에다 케이지」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00만석을 주겠다는 것을 한 잔 술로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는 풍운아이다.

나고야에서 한인모임에 참석한후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네비를 잘못입력하는 바람에 쿄토쪽으로 가서 비와코주변을 돌아가는 루트로 되어버렸다.

시간도 있고, 경비도 넉넉했고... 또 언젠가 한 번은 바닷가를 달려보고 싶었기에 그냥 출발했다.

바닷가라는 것은 동해를 말한다.

시가현을 지나 후쿠이현으로 접어들무렵 산중턱에서 비와코(琵琶湖)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휴게소가 있었다.

비와코는 일본에서 제일 큰 민물호수이다.

지역 주민들은 바다라고 부른다지만 산중턱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그런대로 절경이었다.

산과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잘 어울려 있었다.

터널을 나오자마자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놓치지만 않는다면 한 컷의 멋진 풍경으로 손색이 없었다.

호쿠리쿠도(北陸道)는 연휴중인데도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나고야에서 출발할때 네비를 잘못입력해서 잠깐 후회했던 기분이 풀렸다.

처음에 갈려고 했던 직선코스는 중간쯤에서 일차선으로 바뀌는데 밀린다는 것이었다.

카나자와(金沢)의 직전, 토쿠미츠(徳光)휴게소에서 모래사장을 밟으면서 동해를 맛보았다.

이 곳은 참게와 해산물이 유명한 곳이다.

동해쪽을 바라보니 듬성듬성 모래사장이 있고 각진 콘크리트로 방파제를 쌓아놓았다.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

조금전 비와코를 보고 온 지라 바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넓은 호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멀리로는 울릉도도 독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는것이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뭔가를 기대하고 찾은것은 아니지만 한국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가 보일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고향쪽을 향해서 절을 한다는 그 심정을 조금 알수 있었다.

저녁 7시에 카나자와에 도착했다.

사우나온천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예정을 잡았는데 인터넷에서 찾은 두 군데 모두 엄청나게 붐볐다.

처음 고속도로에서 내린쪽은 주차장이 꽉차서 포기했다.

두 번째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요금은 심야요금 합쳐서 일인당 2000엔정도.

2000엔정도라고 한 것은 다음 날 나올때 저녁 식사비를 함께 지불했는데 웬지 계산보다 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우나는 요금이 후불제였다.

이런 경우 예외없이 나쁜 꾀를 떠 올린다.

카운터에는 신발장열쇄만을 맡기고 욕실이용키를 받는다.

그리고 요금은 나올때 계산한다.

물론 시설내에서 이용한 식사나 각종 서비스요금도 욕실키로 확인만하므로 후불제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공짜로 이용할수 있다.

이야기 할까 말까...

사우나를 이용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를 챘을것이다.

신발장열쇄를 두 개 뽑는 것이다.

그리고 별볼일없는 신발장열쇄를 맡기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서비스받고 하고는 다음 날 단체등 다른 손님들과 적당히 어울려 있다가 같이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응? 정말로 그래도 되냐고?

절대로 하지 마시라.

카메라로 전부 녹화하고 있다.

일본의 녹화기술?

나고야 중부공항의 주차장은 들어갈때 표를 뽑고 나올때는 공항안의 여러곳에 있는 정산기에서 정산하면 출구에서 표를 건네고 하는 수고도 없다.

들어갈때 카메라로 번호를 찍어서 기억했다가 나올때는 그냥 통과인것이다.

지금은 얼굴인식기능도 들어 있으므로 감도가 더 높아졌을것이다.

하지마소, 하지마소, 제발 하지마소...

저녁은 고급 소고기덮밥을 먹었다.

밥에도 조금 양념이 되어 있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인도요리는 진짜 인도요리사가 요리했고, 아카스리(때밀이서비스)에는 한국사람이 근무했다.

이 날은 연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아서 가면(仮眠)할 장소조차 없었다.

일인용으로 누워 쉴 수 있는 안락의자는 오후8시경에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임시 가면장소로 공개한 두 개의 휴게실도 발딛을 자리만 빼고 사람들이 일렬횡대로 질서있게 누워있었다.

쉴새없이 돌아다닌 끝에야 밤 12시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운좋게 좌석 두 개를 확보하고는 아이들과 교대로 쉴 수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슬비가 내렸다.

올해는 카나자와성의 켄로쿠엔(兼六園)을 볼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므로 조금 비가 내린다고 해서 포기할수는 없었다.

비가 내리다가 말다가 했으므로 비닐우산을 하나만 샀다.

이 날은 중국관광객들이 많았다.

일본식의 아기자기한 인공정원은 중국인들에게 인기인가 보다.

미리 조사를 하고 왔는지 쏼라쏼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일본의 3대 명원(名園)은 오카야마(岡山)현 오카야마시의 코오라쿠엔(後楽園), 토치기(栃木)현 미토(水戸)시의 카이라쿠엔(偕楽園), 그리고 이 곳 이시카와현 카나자와시의 켄로쿠엔이다.

모두 물을 끌어들여 연못과 호수를 조화시킨 정원으로, 크기로 치면 도시공원으로서는 카이라쿠엔이 뉴욕의 센터럴파크공원에 버금가는 세계2위를 자랑한다.

아담하고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은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서 운치가 있었다.

삼국시대 백제, 그리고 신라에서도 물이 흐르는 인공정원을 만들고는 둘러앉아서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였다고 하니 일본문화라고 해서 남의 것이 아닌듯한 생각도 든다.

1박 2일간의 짧은 여행.

네 끼를 밖에서 해결하니 고속도로 요금과 기름값을 카드로 지불했건만 제법 두툼했던 지갑이 비어 버렸다.

선물로는 지역특산물인 게를 가공해서 만든 과자와 건어물, 그리고 티탄으로 만든 한국식 젓가락, 또 마눌에게는 사바에(鯖江)지역의 선그라스를 선물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여행이었다는 생각에 돈 아까운 줄은 몰랐다.

큰 놈과 둘째놈이 사회인이므로 같이 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것이다.

5월의 연휴는 자유와 낭만과 설레임이 있는 여행이었다.

몇 년간 혼자서 라면과 사과 몇 개만 가지고 경차를 끌고 방황을 했는데 올해는 가족이 함께 한 여행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기도 하다.

몇 십년을 기계공장에서 일했더니 이제야 철(鉄)이 조금 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