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설(積雪)


까치까치 설날은...

어릴때에는 설날에는 당연히 눈이 내리는줄 알았다.

책이나 그림엽서를 보아도 눈속에서 썰매나 팽이치기를 하는 풍경이 많았다.

눈이 드문 지방의 사람들은 눈내린 풍경을 보고 낭만을 느낀다.

마당도, 지붕위에도,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그리고 산과 들이 온통 흰색인것을 보고는 강아지도 좋아 날뛴다.

일본은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해지방은 일년에 눈이 한 두번 내릴까 말까이다.

그 조차 금방 녹아버리고, 5센티정도만 쌓여도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일본에서 눈이 제일 많이 내리는 곳은 「키타 알프스」의 북부이다.

유명한것이라면 뭐든지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일본인인지라 알프스의 이름까지 도용하여 자기네 산에 붙였다.

남(南)알프스의 생수라길래 진짜 알프스의 만년설생수인줄 알았으나 역시 옆동네에서 채취한 계곡수였다.

「키타 알프스」의 북부란 나가노현의 북부 지방에서 니이가타현, 그리고 야마나시현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으로, 동해에 가까우며 북서 계절풍이 직격하는 지역이다.

특히 호쿠리쿠(北陸)지방의 산간부의 계곡에는 눈보라와 눈사태등이 겹쳐서 30미터이상 쌓이는 때도 있다.

이렇게 쌓인 눈은 한여름이 되어도 녹지 않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흰 강이 흐르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야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치를 느끼겠지만, 나같이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살만한 곳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적설량은, 백 년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11미터를 넘는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니이가타현에 8미터를 넘는 기록이 있다.

이걸 보고 놀라서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유키구니(雪国)를 썼대나 뭐라나...

이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이유는 동해의 온난해류가 원인이다.

시베리아에서 불어 오는 북서 계절풍은, 원래 건조기후이기 때문에 한반도까지는 호된 추위를 가져다 준다.

이것이 동해를 건널 때, 한겨울에도 북위 38도에서 섭씨10도의 수온을 유지하는 청조(青潮)-쯔시마해류에서 다량의 수분을 흡수해서, 태평양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을 동서로 길게 가르고 있는 세후카(背深)산맥에 걸려서는 엄청난 양의 눈을 뿌리는 것이다.

남으로는 톳토리현, 효고현의 산인(山陰)지역,그리고 중부의 쿄토, 후쿠이현, 이시카와현, 토야마현, 나가노현, 그리고 북부의 니이가타현, 야마가타현, 아키타현에 이어, 청조의 수온이 떨어지는 아오모리현에 이르기까지, 일본열도의 서쪽은 그야말로 눈의 천국이다.

특히 호쿠리쿠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는 이유는, 이곳에 3천미터급의 높은 산맥이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나가노현은 산세가 험하고 비교적 인구가 적기 때문에 눈에 의한 인적 피해가 적지만, 니이가타현에서는 해마다 적설피해가 보도되고 있다.

집은 보통 2층으로 지어져 있으며, 겨울에는 일층은 아무래도 사용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이층에 따로 출입구가 있어서 이층에서 사다리를 사용해서 아래로 내려온다.

도로 양쪽으로 2미터나 되는 눈의 계곡을 버스가 달리는 풍경도 이 지역에서는 드문일이 아니다.

눈의 비중은 0.3.

즉, 눈이 1미터 쌓이면 입방미터당 무게가 300킬로그램이라는 계산이다.

길이가 10미터인 지붕이라면 3톤, 게다가 폭이 4미터라면 무게 12톤의 눈이 지붕위에 올라 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지붕위의 눈을 제때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를 초래한다.

「겨울의 풍물시」도 이지역 사람들에게는 참을수 없는 존재의 성가심이다.

동해의 온난해류는 38도선을 넘으면서 일본에 또 하나의 선물을 준다.

3월.

각지에서 봄의 전령들이 바쁘게 소식을 들려주는 시기에, 자오(蔵王)산의 정상은 요정들이 분주하다.

자오산은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그리고 야마가타현에 걸쳐 있는 산이다.

평소에는 「아오모리 분비나무」라는 소나무과의 침엽수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이 시기에는 이상한 모습을 한 괴물들이 군상을 이루어 서 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괴물, 「아이스 몬스타」이다.

눈앞에 키가 10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설인이 걸어가고 있다.

둘러보니 한 두명이 아니다.

꼼짝없이 둘러싸였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움직이지 않는다.

걸어가다가 벌을 받았는지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는 설인도 있다.

또 다른곳에는 보름달을 보고 울부짖는 늑대같은 형상을 한 것도 있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하다.

마치 동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다 놓은듯한 광경이다.

뭔 소릴 하고 있느냐고?

수빙(樹氷)이란 놈이다.

전세계에 수빙의 스폿이 여러군데 있지만 일본에서는 자오산 꼭대기가 유명하다.

수빙이란 나무에 얼음과 눈이 겹쳐서 부착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얼음으로 만든 물체같이 되는 현상으로, 나무의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수빙은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동해를 건널때 발생하는 증기 안개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바닷물에 닿으면 급격한 증발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증발한 수분은 일본의 서쪽지방에 엄청난 양의 눈을 내리게 한 뒤, 더욱 더 상승해서 섭씨 마이너스 20도의 과냉각수적으로 바뀐다.

여분의 수분을 떨어뜨린 과냉각수적은, 섭씨 마이너스 20도의 기온에서도 얼지 않고 안개 상태로 이동해서, 물체에 충돌하면 얼어 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매년 1월 중순경, 동해에서 수증기를 듬뿍 머금은 안개가 불어 날려서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에 옷을 입힌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 겨울.

몸은 뼛속까지 얼어붙어 있는데 2월 중순까지의 한 달동안 나무는 얼음옷을 입고 또 입는다.

이렇게 완성된 몬스타는 3월 말, 봄의 전령이 얼음옷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길때까지 한 달 반동안 멋진 수빙의 광경을 연출한다.

자연이 만든 멋진 메르헨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