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현 하마마츠

토쿄를 출발해서 나고야로 갔다.

국도 1호선을 달렸다.

대명행렬이 오사카에서 에도로 이동할 때 사용된 동해도(東海道)이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너구리가 일본 전국을 통일했을때 당시에는 아직도 각 지방에 힘을 가진 대명들이 자기 지역을 마치 왕처럼 다스리고 있었다.

막부는 이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2년에 한 번씩 에도(江戸;지금의 토쿄)에서 근무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대명을 비롯, 한 번(藩)의 행정부가 송두리째 이동하는 것이므로, 적게는 수백명, 많을때는 수천명이 이동했다.

먼 지역은 이동하는데만도 몇 개월이 걸렸다한다.

물론 경비도 엄청나게 들었으므로, 결과 지방의 대명들은 막부에 대항할 세력을 키우지를 못했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츠(浜松). 

해가 질 무렵이었다.

옛날 동해도옆에 바이패스도로가 바닷가를 달리고 있다.

잔잔한 바다위에 오렌지색 석양.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서 일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꿈은 4년뒤에 이루어졌다.

바다거북의 일종인 붉은 바다거북, 일본말로 「아카우미가메」.

시즈오카현의 「엔슈나다」해안에서 아이치현 「아쯔미」반도의 「오모테하마」에 이르기까지 100킬로의 모래사장이 산란지이다.

해마다 약 천마리의 어미거북이 상륙해서 각각 12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태평양을 빙글빙글 도는 흑조를 타고 대해양을 헤엄쳐서 유일하게 일본의 해안에서만 산란하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새끼거북의 생존률은 천분의 일 정도라던가?

바다를 향해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새끼거북을 새가 와서 잡아먹고, 겨우 바다로 들어 가면 이번에는 물고기에게 먹히고...

그러나 이 곳 엔슈해안과 오모테하마는 바다의 레저스포츠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곳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백사장을 사륜구동 자동차가 사정없이 질주한다.

그 때문에 차에 치어서 죽은 새끼거북이 가끔 발견되어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

새나 물고기에 잡아먹히는 것에 비하면 그 수는 미미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2005년, 산란기간인 5월에서 8월에 걸쳐 모래사장에 자동차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볼란티어 단체의 사람들이 어미거북이 밤사이에 낳은 알을 눈에 잘 띄게 표시를 하여 특별보호하고, 알의 갯수, 부화일등을 기록하여 바다로 보냄으로써 생존률을 높이고 있다.

그 뿐, 다음은 대해양을 헤엄쳐서 20년후에 다시 와주기를 바랄뿐이다.

그 바닷가 옆에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다.

도로만 건너면 끝없는 백사장이다.

한 때 점심시간에는 매일 백사장을 걸었던때도 있다.

노리꼬.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던, 김을 좋아하던,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던, 노리꼬...

집에서 회사까지는 자동차로 50분정도 걸린다.

바닷가쪽으로 달리면 국도 1호선의 넓은 도로와, 아침에는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오메가 태양을 보며 출근하고, 저녁에는 붉은노을을 보며 퇴근한다.

꿈같은 출퇴근을 3년동안 맛보았다.

지금은 좀 더 거리가 짧은 산길을 이용하지만, 바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다.

겨울에는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시각이 출근시간과 비슷하므로 일출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여름에는 두 시간이나 빨라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섯번째 직장은 하마마츠였다.

경차를 만드는 스즈키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지금껏 겪은 일본의 여느 직장과 다를바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일이 지나면서 이 회사는 조금 다른것을 느꼈다.

일본은 오랜세월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나라였다.

각 번의 대명은 세습제였으며, 그 곳의 왕이나 마찬가지였고 일반 농민은 다른 번으로 이주할 수 없었다.

즉, 대명이 지배하는 지역은 하나의 작은 국가와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외부인은 경계와 무라하찌부(마을에서 집단으로 따돌리는것)의 대상이었다.

이곳 하마마츠는 웬일인지 대명이 외부에서 파견되어 왔다.

대명이 바뀔때마다 종자들이 같이 따라 오므로 자연히 외부인을 대하는 경계심이 타지역보다 덜한것이다.

텃세와 일본인의 곤조(根性)때문에 여섯번이나 직장을 옮겨야만 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라고 생각될만큼 자유로운 회사였다.

집은 아이치현의 토요하시(豊橋)시에 있다.

현에서 운영하는 아파트이다.

시영이나 현영아파트는 소득에 따라서 월세가 해마다 변동한다.

일반 부동산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면 월세 8만엔 이상은 내야 할 것을, 신축으로, 그것도 3대1의 경쟁율을 뚫고 걸린것이 최하위등급인 2만5천엔이었다.

물론 소득이 높은 사람은 최대치인 8만엔 가까이 내야 하고 그 이상인 사람은 입주자격을 잃고 나가야 한다.

운이 좋았던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일반가정보다 자녀수가 한 명 더 많았기 때문에 우선점수를 얻은것 뿐이다.

하마마츠는 스즈키자동차의 본고장이며, 오봉(일본의 추석)도 타지역보다 한 달 빠른 7월 15일이다.

덕분에 타지역에는 없는 4일간의 연휴가 한 번 더 있다.

일본인의 정신적지주인 후지산도 반은 시즈오카현의 소유이다.

이번의 회사에서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내 임무를 익혔다.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이므로 간섭도 없이 마음편하기만 한 줄 알았으나, 직급상 윗상관의 지시를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뭐도 모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때는 울분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그래서 한국 궁중드라마는 몸으로 공감을 한다.

얼마전에 드라마「동이」를 보았다.

궁중에서 서열높은 상궁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약한 궁녀의 입장이 절절하게 전해져 왔다.

궁안에서는 미움을 사면 목숨이 걸린 일이고, 나는 싸움질이라도 하면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다.

어쩌다가 남의 땅에 와서 외국인이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할때에는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참으로 서럽게 느껴진다.

그것이 아직도 밤에 이불속에서 「벙어리 바이올린」을 듣게 만드는 원인이다.

한 번 면접을 간 곳의 사장이 한 말이 기억난다.

현지인은 급할때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지만, 외국인은 그러지를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줄려고 노력한다는 말이었다.

고마웠다.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직원들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를 박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서글퍼진다.

국제사회에서 힘을 얻을려면 이런점에서도 소홀히해서는 안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