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는 10간(干)과 12지(支)의 60갑자에 의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은 것 같다. 십간(十干)은 하늘을 의미하며, 음양오행설에 따라 5가지 색(10간을 음양으로 나눔)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12지는 땅을 의미하고 12개의 짐승을 의미하며 우리가 난 해의 동물 띠를 나타낸다. 즉 동물에 색을 입힌 형식이다.

천간의 10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이다. 양은 '갑병무경임'이 양이고 나머지 5가지가 음이다. 색으로는 갑을(청색), 병정(적색), 무기(황색), 경신(백색), 임계(흑색)이다.  금년은 을미(乙未)년이고, 청양의 동물 띠이다. 지난 해는 갑오년이었으니 청말의 해였었다.

전달 크리스마스 다음 날은 무척 추었웠는데 지인과 송년회 겸 술자리가 있었다. 나는 추위에 민감해 냉장 안 한 병맥주를 시켰지만 추운 날씨 탓에 전혀 둘의 온도 차이가 없었다. 여러 병을 마신 탓에 그 다음 날 바로 몸살 감기 기운을 느껴서 이내 동네 의원에 들려 주사를 맞고 감기 약을 먹기 시작하였다.

탁구운동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목 감기에 차도를 덜 느껴 12월 31일에 다시 의원에 들렸다. 의원에게 현재 가래도 진하게 나오는 편이며 평시 손발에 자주 쥐가 일어 난다고 말해 주었다. 의원은 가래약과 쥐 경련 치료제라며 마그네슘을 처방하여 주었다.

두어 차례 약을 복용하였는데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면서 식욕이 떨어져 새해 아침부터 점심도 굶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한 순간은 먹은 것도 아무 것도 없었는데 구토가 심하게 일면서 마치 위장이 꼬인 것 같은 느낌에 순간 죽을 병이 든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느꼈다.

예전 같으면 사나흘이면 거뜬히 나서 다시 일어서곤 했었는데 이제 세월 앞에 나이를 속이기 힘든 모양이다. 2주에 걸쳐 자리에 누워 있다 보니, 어깨 쭉지 근육도 꼬여 쥐가 나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내 식욕을 일깨우진 못 했다. 

을미년 새해인지라 평소에 연락 없던 지인들까지 휴대폰에 새해 문안 인사를 해오는데 일일이 보지도 못 했고 답변을 줄 그럴 건강상태가 아니었다. 평소 아내와 서로 각방을 사용하기에 다행이지 한방을 썼더라면 내 앓는 신음소리에 아내도 편히 한숨을 못 잤으리라. 

어제 아내와 딸래미 생일(아내와 같은 날짜 임)로 외식하기로 하였단다. 내 마음 속으로는 나 빼고 다들 다녀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 때문에 생일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사나흘을 자리에 누워 있어 내 몰골은 초췌해져 눈가에는 다크서클도 지어졌다. 일단 몸을 추스려 이발부터 산뜻하게 했다.

외식과 귀가하여 케이크 컷도 진행하고 외손주의 생일 축하송도 들었다. 하루 생사를 마치고 저녁 잠을 청하는데 방바닥에 자는 내가 침대에 뉘인 양 침대가 거실 밖으로 움직이는 사몽에 몇 차례 잠을 깼다. 몇 해 전에 죽은 누이가 사몽으로 보이는 것도 같았다.

아침에 아내의 기척에 잠에서 깨니, 일찍 가면 국제시장이 싸단다. 나는 잠결에 강남시장 가면 될텐데 국제시장이란 재래시장이 생긴 모양이구나 했다. 아침식사 전 이발 한 후 깔끔해진 모습을 보아서인지 조조영화보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내의 이 말에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한참 건강 회복에 매일 복용하던 천식약도 안 먹으면서 한참 온몸의 내공을 끌어 올리는 중인데 찬 댓 바람에 무슨 영화냐고 하였다. 새벽 댓 바람에 아내가 흘린 '국제시장'은 영화 제목이란다.

아내의 말은 내가 야속하게 들려졌다. 모든 것을 약자의 편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 65세 이상은 조조든 심야든 관계없이 언제고 그냥 반값이기 때문이다.

아파 누워 있으면서 막간에 미생(未生) 드라마 10회, 11회, 12회를 보았는데 비규정직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로서 내용이 상당히 재미 있었다. 나는 '미생'이란 드라마 제목에서 바둑 용어를 떠올렸는데, 나 보다 한 급수 아래인 바둑 3급의 지인이 '바둑 용어'가 아니란 주장에 어의를 상실했었다.

그는 미생이란 단어에 불교를 떠올렸다고 한다. 미생이 아니라 생불이면 모르겠다고 하였다. 생불(生不)도 불교 용어가 아닌 중국인들의 '불생불숙(不生不熟)'의 줄임말로 '미숙하다'는 뜻 일 뿐이다.

사위의 귀가 길에 80이 다 되어 얼마 전 사업에서 은퇴하신 바깥사돈 소식을 물으니 바둑을 배우러 복지관에 나가신단다. 우울증에 걸릴까봐 중국어에 도전하신다는 소식을 접했었는데 다소 무리로 여겨져 선택 과목을 바꾸신 모양이다.

바깥사돈은 바둑 7급을 두신단다. 그래서 내가 안 쓰고 그냥 가지고만 있는 다리 달린 두꺼운 바둑판을 드려도 되겠느냐고 여쭤보라고 사위에게 권했다. 사위가 전화를 걸어 보고 나더니 가져가시겠다는 대답 끝에, 만 4년 된 외손주가 일어나 바둑판에 비닐봉투를 씌우려는 행위가 몹시 귀여웠다.

바둑판이 비닐봉투에 들어 갈 리도 없지만 들어 가도 찢어질 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보고, 딸은, '우리가 도둑놈 아들을 키우고 있고만!' 이란 말에, 우리는 모두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