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터인가 한 겨울인데도 집 안에 날파리가 수없이 날아 다니기 시작했다. 슈퍼에 가서 살충제를 사다 한 개를 거의 다 뿌렸는데 날파리의 시체는 한 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통상 살충제를 뿌리면 모기나 파리는 바로 바닥으로 떨어져 뒤집어져서 배를 내놓고 발버둥치며 죽어 나자빠졌어는데 날파리에게는 전혀 이 살충제가 통하지를 않았다.

아내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설탕물에 식초를 담은 비닐 랩을 씌운 종이 컵에 자그마한 구멍을 내어 여러 방향에 진을 펼쳐 놓았지만 거의 효과이 없었다. 그래서 날파리 퇴치에 실패하자 한 겨울에 파리채를 꺼내 타격 필살전법으로 육박전을 벌였지만 날파리가 장소를 이동하며 옮겨 다니는 바람에 극소수만을 때려 잡았다.

여러 방법이 통하지 않자 아내는 아주 추운 날을 택해 거실을 모두 활짝 열어 놓잖다. 거실의 화초가 얼어 죽을까봐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영하의 추운 날씨에 약 3시간 가량 거실 앞뒤 문을 모두 활짝 열어 놓았다. 그래도 날파리의 시체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매일 날파리와의 전쟁을 치루는 중에 부엌 거실 한 군데에 상당량의 물이 쏟아져 있어 물걸레질로 닦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보니 다시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거실 수도 배관이 터진 것 같아 너무 걱정이 앞섰다. 물이 떨어지는 근원지를 상세하게 살펴 보니 빨래대 옆 작은 냉장고틀  아래에서였었다.

냉장고는 약냉의 상태로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니까 전혀 열리지가 않았다. 주로 냉장고 문에 얼움이 얼어 붙어 안 열릴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우선 냉장고의 전원을 꺼놓았다. 날파리와 전쟁 중에 엎친데 덮친 격이었지만 거실 바닥이 아닌 거실 위에서의 낙수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어도 거실 바닥을 뜯어내야 하는 대공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임시방편의 조치로 빨래대로 연결 되는 수도관을 찾아 수도꼭지 두 군데를 모두 잠가 놓았다. 아마도 수도의 연결관이 냉장고 뒷편을 통해 지나 가는 것으로 어림해 보았다. 그리고 냉장고의 전원을 꺼버렸다. 비록 일요일이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현장 확인을 시켜 보니 수도 쪽이 아닌 소형 빌트인 냉장고쪽의 문제란다.

유사시에는 다음날 월요일에 냉장고 수리기사를 불러 볼 생각을 하였다. 임시 조치 후 일단 마음이 느긋해져 아내를 불러 체육관에 함께 들려 같이 운동을 하였다. 저녁으로는 모처럼 아내와 외식으로 오리고기와 더불어 맥주 한 병으로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였다. 

귀가 길에 아내는 머리를 짜르러 미장원으로 향하였고 나는 귀가해 냉장고 문짝을 열어 보니 쉽게 열리었다. 냉장고 안 검은 봉지에서는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서랍형 냉장고 안틀 양면에는 두꺼운 얼음이 얼어 붙어 있었다.

냉장 맨 위에 놓여 있는 한 음식통 덮개를 열자 아뿔싸! 날파리가 득실득실 하였다. 나는 어릴 적 후각을 잃어 냄새를 맡지 못 한다. 한 눈으로 보기에는 깻묵이거나 된장 정도로 보였다. 나는 미용실을 즉시 찾아가 아내에게 보여 주니 그냥 내용물을 버리란다. 아마도 그 안에 날파리 유충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냉장고 안이면 비교적 추운 온도일 것인데 날파리의 생명력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것 같다. 냉장고틀 바닥에서의 낙수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낙수로 인해 냉장고도 다시 활용 가능해졌고 고민거리 날파리를 퇴치할 수 있었다.

이는 정말 전화위복이요 일거양득이 된 셈이었다. 겨우내내 날파리와의 동거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정말 끔찍한 일상이다. 이제 남은 날파리 잔병 20여 마리 만 인내심을 가지고 타격으로 퇴치시키면 만사 그만이다. 이래도 탁구로 무려 36년 이상을 다진 내 몸이 아니던가. 탁구채 대신 파리패로 날파리에게 그 위용을 떨쳐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