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만 인간은 아마도 익을수록 더욱 고개를 쳐드는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순리로 스스로 서는 독립심에 따른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공과 대학을 갓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 직급은 4급 사원이었다. 당시 공고를 나와 5급 사원으로 입사한 직원들은 나 보다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 났다. 내가 그들 보다 직급이 높음에도 그들을 통솔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 하면 내가 그들 보다 회사 업무를 잘 모르기에 내 지시가 그들에게 먹힐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업무 파악이 되기 까지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가진 지식을 흡수하며 배우는데 심혈을 기우렸다. 그리고 일단 업무를 익혀 서서히 내 자리에 잡혀 가면서 드디어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내가 많은 지식을 가르쳐 준 부하 직원에게는 내 지위를 이용해 그를 함부로 대하지를 않았다.

탁구를 30여 년 동안 치면서 소위 제자로 삼아 키워 준 후배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약 2, 3년간은 내 말을 잘 따르면서 탁구 기술을 열심히 연마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에 오르면 어느 순간엔가 고개를 빳빳히 쳐 들며 대들며 대꾸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그들에게 매우 서운한 감정을 느꼈었다. 물론 처음에는 제자 수준의 실력이었지만 지난한 노력으로 나중에 나의 실력을 능가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일취월장한 실력에 편으로는매우 대견스럽게 생각들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 구석으로 그들에게 섭섭한 감정을지워 내기 어렵다.

허긴 건달이나 깡패 조직사회에서도 우두머리로서의 실력이 부치면 미련없이 그 조직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떠날 때 서운한 감정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것이 사회의 질서이다. 그러나 탁구 사회에서는 탁구를 떠나는게 아니라 그들과 일정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것이다.

탁구를 함께 치면서 눈길이 많이 가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탁구 기술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의욕을 느끼게 된다. 애정으로 탁구를 가르쳐 주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선의의 내 가르침에 토를 달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나는 그를 더 이상 제자로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을 그로 부터 닫기 시작한다.

마음을 닫지 않으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짝사랑에 불과할 뿐, 제자는 가르침이 아닌 잔소리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가 깊어지면 질수록 더 이상의 사제 교류는 상호간에 마음의 상처를 입히게 된다.

탁구를 약 36년간 치면서 나는 몇 차례나 이런 대우를 겪었었기 때문에 나는 이를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편이다. 탁구를 치고 있는 한 언필칭 애정을 느끼는 제자를 만나기 마련이고 열심히 그들을 가르쳐 주는 행위는 거의 본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나는 후배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되 제일 먼저 탁구 예절을 가르쳐 주는 편이다. 그러나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 후배는 반드시 내 가르침에 고개를 드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그러면 그와 이제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순간에 이르렀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고개를 쳐든 순간 나는 그들을 애정어린 후배에서 등급을 낮춰 평상의 후배 위치 대열에 자리 매김을 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순리로 받아 들여야 할 것 같다. 허기사 자식도 머리가 커지면 더 이상의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