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을 하러 갔다. “반달 푸트라”라는 조그만 상가거리에 위치한 미용실이다. 중국여인이 주인인데 그녀의 이발 솜씨가 인도인이 운영하는 이발소보다 더 나은 것 같고 실내도 깨끗하여 5년 이상을 단골로 삼고 있다. 항시 손님이 붐비어 기다릴 때가 많아서 미리 여주인에게 전화를 한 뒤에야 가곤 하였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주인뿐만 아니라 종업원들도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두 여인은 새로
들어온 종업원들인 모양이다. 그 중 한사람이 도구를 들고 내게로 닦아왔다,

“뻐름뿌안 베트남, 디아 빤다이 군띵 람붓(베트남 여자인데 이발 기술이 좋습니다)”

“어, 베트남 사람?” 스물 대여섯으로 보이는 그녀는 중국 여인 얼굴 모습이었다. 다만 눈의 반짝거림이 옛 추억을 일어나게 하였다.

“베트남 어디에서 왔지?”

“호지민” 그녀는 말레이어를 나 정도는 한 것 같았다.

“아, 사이공?”

“사이공을 알아요?” 그녀가 반색을 한다.

“또이 비억 마. 본쭉바이남 쯔억 또이 다 어 퀴녕.(알고말고, 47년 전에 나는 퀴논에 있었지)”

그녀가 깜짝 놀라는 것 같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말이라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해가며 띄엄띄엄 말했는데도 그녀는 이국땅에서 한국인으로부터 자국어를 듣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운 모양이다. 의자에 앉아 있던 동료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퀴녕? 냐 또이 어 퀴녕(퀴논? 저희 집이 퀴논에 있어요.)”

오히려 내가 놀랐다. 베트남 중부지역인 퀴논에서 외국 그것도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를 오다니...? 퀴논은 1965년부터 1973년도까지 한국군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하노이나 호지민처럼 국제공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도 지극히 불편한 지역인데 어떻게...? 한국에 온 월남 난민들을 상당히 봐 왔지만 그들도 퀴논 근처에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집이 퀴논이란다.
   
“옹 람 지? 바오 러우 어 베트남?(월남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오랬동안 하셨지요?)”

두 사람이 한꺼번에 질문을 하였다. 손님이 없는 터라 주인은 물론 다른 종업원들이 주위를 둘러쌓다.
 
여기에서 나는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지금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고 K-pop이 베트남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파월장병과 몇 년 동안 총부리를 겨누었던 베트남 공산주의자(베트콩)에 의해 통일이 된 나라가 아닌가?  파월 장병이었다, 라는 대답은 적절치 않을 것 같았다. 

“또이 람 어 꽁띠,  키 투엇 지아(민간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햐였지.)”       

어떻게 회사란 말과 기술자라는 말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문제는 6성이 있는 발음이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 아, 키 투엇 지아!”

그녀가 알아듣고 고쳐주었는데 투엇(術 字)이 여우 낭(낭 聲)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태어나지도 않는 시대의 

일에 대하여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몇 년 지기를 만난 것처럼 들떠서 묻지도 않는 신상이야기를 하였다. 자기는 26살이고 23살에 결혼한 남편을 따라 이 나라에 왔으며 지금 남편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중국회사에서 중간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사이공에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나이가 65살이라고 하면서 나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단어들이 새삼스러웠고 내가 그것을 알아듣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퀴논이 집이라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소파에 놓여있는 잡지를  뒤적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한 때 고향에 있었다는 한국인 늙은이의 대화에 대하여 귀를 세우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소대는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있었다. 멘 앞에 내가 고용하여 데리고 온 “깐”  “껀” “라오”가  아름들이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있고 그 사이사이로 가시덤불과 잡목들이 빽빽이 들어찬 밀림을 뚫고 잘도 올라갔다. 그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이념도 모르는 공산주의 통일을 위해서 베트콩 생활을 하던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곳 지리와 산타기에 능숙할 수 밖에. 그래서 그들에게 베트콩 복장을 입혀 첨병 대신 소대를 안내하게 한 것이다.

나는 그 뒤를 따르며 소대가 대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속도를 줄이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따라 오르기가 어려운데 비상식량과 수통 침구 무기 실탄 등등 모두 40키로 이상을 짊어지고 익숙하지 않는 밀림을 해쳐나가기란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대는 열심히 따라 붙었다. 다른 때 같으면 동굴이나 은거 가옥을 찾아 해매야 하는데 이번에는 이미 그러한 장소 및 무기고까지 알고 있는 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으니 잘만 따라 붙으면 커다란 공적도 새울 수 있는 것이다. 하사가 된지 꽤 오래된 분대장은 첨병을 제쳐두고 바로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물이 메마른 지 오래된 계곡이 바위와 자갈들을 들어 내놓고 왼쪽으로부터 굽어 들어온 곳에 도달했을 때였다.  내가 왼발을 들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려는데 내 발밑에서  다급히 분대장 J하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오른발을 옮겨 놓았고 내 몸은 이미 언덕의 능선에 올라와 있는 상태. 나는 순간적으로 오른쪽 서너 보 남짓한 거리에 서있는 두 아름도 넘는 나무 뒤로 스라이딩을 하였다.  그리고 둔탁한 CKC 총알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쉬웅, 탕 탕 탕”         

뒤이어 위에서 응사를 하는 “깐” 과 “껀”의 M16총소리.

“따다다당 땅”

“저격병이다, 공격, 공격!” 

나는 소대장을 대신하여 소리를 질렀고 J 하사를 비롯한 분대원들이 내 옆을 지나쳐 뛰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시야는 안개가 내린 듯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버렸다.   

연기가 걷힐 때쯤 나는 나를 피신케 한 나무를 살펴보았다. 밑 둥으로부터 가슴 높이의
기둥에 정확히 세 발이 들어갔고 그 곳엔 선홍색 수액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가 내 대신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나저나 저격을 받고도 살아났으니 전우 신문에 날 일입니다.”

상황이 끝난 뒤 소대장이 내 곁으로 와 농담을 걸었다.  

“J 하사 덕분입니다.”        
   
저격을 한 장소는 계곡이 시작되는 낭떠러지 언덕이었고 그 곳에는 필연적으로 대상자가 오르게 되는 나무 옆의 언덕이 등고선처럼 잘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세 명의 저격병들은 불의의 포위를 당한 주력부대원들의 도주를 위해 포위 속도를 조금이라도 저지해야하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야에 어찌된 일인지 검정 색깔의 배트콩 복장을 한 동지들(?)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부 부(암호)?”   

J 하사가 들은 목소리.

“..........”

순간 위장포를 둘러쓴 한국군의 철모가 나타났고 그 인영은 나무쪽으로 미끄러진다. 상황을 알아채자마자 그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신 고이 다우(머리를 감으십시오)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베트남어를 하고 있는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석양의 햇살이 유리창 안으로 엷게 들어오고 있는 세면장으로 들어갔다.